설교모음(Korean sermons)

택하심을 어떻게 아는가? (살전 1:1-4)

호걸영웅 2016. 11. 19. 01:27

택하심을 어떻게 아는가? (살전 1:1-4)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 시간에는 “택하심을 아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청년이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는지 목사에게 찾아와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는 “마음의 사명감이 있습니까? 사명감이 있다면 부르신 것이요, 없다면 아직 부르지 않으신 것입니다.” 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현명한 대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도 그렇습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그 비밀을 알 자 없지만 우리는 그 열매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여 부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구주 예수를 영원히 저버릴 수 없는 그런 믿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택 받은 자는 영원히 하나님에게 버리시지 않으시기에, 그 역시 하나님을 영원히 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넘어져도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하나님이 붙드시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마7:16-18에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벧후1: 10에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형상인 거룩과 사랑의 열매를 맺는다면 그는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데살로니가 교인들 역시 그랬습니다. 그들에게는 택함 받은 열매가 있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증거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1
=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 의 교회에 편지하노니”라 했어요.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인사 말씀에서 데살로니 가교회를 가리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즉 교인들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간단한 이 인사 한 마디 속에도 이렇듯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마 16장의 베드로의 신앙고백에서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16:15-18에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복 있는 하나님의 자녀이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일4:15에도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심이 분명합니다.


2.
 우리 영혼의 은혜 체험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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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하반절=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죠?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즐겨 썼던 은혜와 평강은 성령의 내주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우리 심령에 은혜와 평강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구원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 우리 영혼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을 때, 우리 영혼이 새로운 속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런데 성령과 그 성령의 선물인 은사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도움이지만 은사가 중생이 아니니, 따라서 은사 체험했다고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신령한 은사 외에 직분도 은사인데 직분 가졌다고 또 천국이 보장 되지 않습니다. 은사의 1차적 의미는 예수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주시는 성령의 선물이요, 2차는 사역을 위해 주시는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그 예로서 제자들이 아직 예수님이 누구신 줄 알지 못했을 때도 그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온갖 은사들을 보았고 체험했습니다. 즉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직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사울 왕도 은사를 크게 체험했지만 감동이 사라지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 목적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12: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은사체험은 옛사람이 완악하면 할수록 더 신비하고 강하게 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고, 돌아와도 완악한 마음을 깨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천국과 지옥도 체험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체험이 크다고 자랑할 것도, 체험이 없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안 하면서 체험조차도 없으면 부끄러워해야죠. 그러나 열심히 섬기는데도 안 주신다면 안 주셔도 잘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대부분이 그렇다는 말씀)

 

그럼 참 신자는 체험이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참 신자는  영혼에 은혜와 평강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 심령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 심령에 갈증이 사라진 사람은 선택 받은 하나님 자녀의 증거가 됩니다.


3.
선택의 증거는 성도의 교통으로 알 수 있습니다.


2
절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이라 했어요.

선택 받은 성도들은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 안에서 교통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동고동락하는 은혜 안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하나, 곧 한 몸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그래서 고전12:12-14에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했고, 26-27절에는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한 몸인 것을 영적 교통으로 알게 되면서 선택 받았음을 알게 됩니다.

 

4. 선택 받은 증거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3-4
절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여기서 믿음 소망 사랑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있는 기독교의 세 가지 보배입니다.


불신자들에게도 믿음 소망 사랑이 있는 것 같지만 그들의 것은 세상에 속한 것이고 헛된 것이고 유한한 것이며 희미하며 육신의 종말과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믿음 소망 사랑은 온전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2:11-13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태산도 절망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누구 앞에서 기억하면서 살았다 했습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었습니다. 즉 하나님 살펴보심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늘 예배하며 늘 사랑하며 늘 감사하며 인내로서 참고 소망 중에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이 모든 거룩함에 대한 삶의 노력이나 실천은 곧 선택 받은 증거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예수 믿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만세 전부터 선택하시고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여부는 겉으로 얼핏 보아서는 누구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 열매로써 택함 받았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확실하게 됩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 앞에서 은혜 가운데 거룩함을 성취하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모두의 감사가 될 줄 믿습니다.

오늘도 기도하는 가운데 더욱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믿음의 자녀가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참조: 한국강해설교연구원 / 편집:익선 11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