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의 아내, 고멜(호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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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
3. |
4. |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
5. |
6. |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
7. |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8. |
9.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
서론)
고멜은 호세아 선지자의 아내입니다. 고멜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완전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우상 숭배가 극심하였던 주전 750∼722년경 활동하였던 선지자였습니다. 호세아는 다른 선지자들이 ‘상징적 행위’를 통해 강력한 하나님의 예언의 메시지를 전하였던 것처럼, 자신의 삶 자체를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호 1:2)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음란한 여자 고멜과 결혼하였습니다. 여기서 음란하다(Harlotry-창기같이 행하는)는 것은 행실이 단정치 못하고 욕정을 잘 참지 못하며 남자들과 어울리기를 극히 좋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고멜은 호세아와 세 자녀를 낳았습니다.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땅에 흩어버린다>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 딸을 낳았습니다. ‘로루하마’라고 했는데, 이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 할 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세 번째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로암미’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세 자녀의 이름은 북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운명을 상징하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기원전 722년에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하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훗날 그들을 회복시키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오늘은 호세아 가정을 통해서 귀한 교훈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가)음란한 아내 고멜에 대하여
먼저 거룩한 삶을 추구해 왔던 선지자 호세아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호 1:2)고 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명예를 존중하는 사나이로서는 비통하고 창피한 일입니다. 하필이면많고 많은 여자들 중에 이미 온 동네에 여러 남자들과 나쁜 소문이 자자하게 난 음란한 여자를 택하여 결혼하고 또한 자식을 낳으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런데도 호세아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명령에 눈물을 머금고 순종하여 행하였습니다.
대물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의 죄는 대물림이 되기 쉽습니다. 어머니가 음란한 중에 자녀를 낳으면 그 자녀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고멜의 자녀들도 아마 음란히 행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언제인가 신문에 났던 사건입니다. 어머니가 딸을 목 졸라 죽인 사건입니다. 왜 사랑하는 딸 목을 졸라 죽였을까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딸이 외박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목덜미에 키스 마크가 있었답니다. 어머니가 캐물었습니다. 남학생과 함께 자고 들어 온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딸아! 우리 집안이 왜 그러니? 엄마도 중학교 때 너 같은 일이 있었단다. 좋지 않은 남자관계로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네가 꼭 엄마같이 행동하는구나!> 그러면서 어머니와 딸이 말다툼을 하다가 화가 끝까지 난 어머니가 딸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합니다.
이같이 대물림의 불행한 죄가 있기 쉽습니다. 호세아의 아내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대물림의 저주를 성도들이 끊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두 가지로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나)가문의 저주를 끊는 두 길
호2: 6,7절에=
6. |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
7. |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
하나님은 두 단계로 그런 저주가 그 가문에 흐르지 못 하게 하십니다.
제1 단계; 가시로 막는 단계, 제2 단계; 담으로 막는 단계입니다.
가시로 막든지, 담으로 막든지 하나님은 징계란 방법을 사용하셔서 대물림을 막기 원하십니다. 이것은 징계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선 가볍게 ‘가시’로 징계하십니다. 가시에 찔리는 것은 그리 심각한 상처는 아닙니다. 가시로 안되면 담을 쌓아 막는 방법을 쓰십니다.
하나님이 징계를 주실 때에 분노하거나 체념하지 말고, 징계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훈련시키려고 주시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롬’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최대의 노여움은 죄를 범하는 사람에 대하여 노여워하시지 아니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죄를 범한 인간에게 주는 최대의 벌은 제멋대로 하도록 방치하고 포기하시는 것입니다. 더는 부자관계가 아닌 것이 돼버리는 것이지요. 무관심이 가장 큰 형벌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이든 가시 같은 징계든 담장 같은 징계든 징계를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히 12:5~8= 증거합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경홀히 여기지 말며 그의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여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요나서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요나에게 풍랑을 주셨습니다. 요나는 동쪽 니느웨(북 시리아 쪽)로 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서쪽 다시스(오늘날 스페인)로 갔기에 하나님이 주신 징계였습니다. 요나는 왜 멀쩡한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는 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죄로 인해 풍랑을 일으키시는 것이라고 고백하며 뱃사람들에게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큰 물고기가 나타나 요나를 삼켰습니다. 그리고 3일 밤낮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요나를 물고기로 하여금 니느웨 쪽 해변으로 가서 토해내도록 하셨습니다(넒고 광대한 수많은 지중해 인근의 해안들이 즐비함에 불구하고). 그 결과 요나는 니느웨성에서 하나님의 멸망의 예언을 쏟아내었고, 결국 요나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로, 악하기만 했던 침략자들인 니느웨 성 사람들은 왕부터 백성까지 모두가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할렐루야!
노아의 홍수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는 사실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노아를 조롱하며 비웃어댔습니다. 결국 대홍수가 나고 비웃던 이들은 모조리 멸망하였습니다.
신약에선 바울을 향한 ‘가시의 징계’가 대표적인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계신 3층천까지 다녀오는 영적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몸에 가시와 같은 어떤 병이 있었습니다. 그 병을 낫게 하려고 여러 번 약을 쓰기도 하고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병을 고쳐 주십사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쳐주시지 않으시고 “내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 이는 네 능력이 약한데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병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병이 있어야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면 겸손하게 되고, 많은 은사를 받은 바를 자랑치 않게 되어 사도로서의 능력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생 가시와 같은 병을 그대로 가지고 순교할 때 까지 하나님 은혜 안에서 살았습니다.
징계는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매로 쳤다면 이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주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히 12:10-13=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의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좋지 않은 행실로 부터)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시편기자는 시 119:71에서 말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67도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고멜이 주는 교훈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우리 모두는 과거엔 고멜과 같은 죄인이었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린 누구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복있는 사람은 죄에서 빠져 나옵니다. 그러나 마귀의 사람은 죄 속에서 뒹굴며 살게 됩니다.
한번은 ‘죠지 워싱턴’이 길을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돼지와 양이 같이 진흙탕 구덩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양은 이렇게 저렇게 애를 쓰면서 기어코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더러운 데 있을 수 없는 천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돼지는 구덩이에서 뒹굴며 만족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아예 빠져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천성이 더러운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구원 받은 성도들은 양과 같은 천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고 죄 중에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은 돼지 같은 천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양의 천성을 주시고 죄의 구렁텅이에서 나오도록 하신 은혜에 감사하셔야 합니다.
2. 또 호세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입니다.
호3:1~3을 보면 이렇게 증거하였습니다.
1.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
2. |
3. |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고 하십니다. |
호세아는 해괴한 일을 또 당합니다. 호세아는 자식을 셋씩이나 낳은 고멜이 말없이 집을 나가, 다른 남자와 또 연애하며 살고 있었으되, 또 가서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다른 남자에게 주고 다시 데리고 옵니다. 보리 한 호멜 반은 은 15개와 같은 값이라고 합니다. 곧 은 30개를 주고 다시 사왔다는 것이지요. 그 당시 노예 한 삶의 가격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용서하고 같이 삽니다.
고멜과 같던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우상을 숭배하고 영적인 간음을 거듭 저질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돌아오길 바라시는 사랑과 용서의 남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거듭되었으되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용서하시는 사랑이 하나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날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가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계십니다. 은 30냥에 팔리우신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변함없이 크고 놀라운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게십니까? 그 분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징계를 통한 원망과 분노를 그쳐야 합니다. 그분을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하나님의 품을 사모하며 경외하며 감사로 섬기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참조:우림과 둠밈/ 편집: 익선 0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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