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근원을 고친 소금(왕하 2:19~22)
(왕하 2:19)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왕하 2:20)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왕하 2: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왕하 2:22)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서론)
2016년 마지막 예배입니다. 1년이라는 것은 사람이 만든 것이 같지만 사실 하나님이 만드신 시간의 단위입니다.
하나님이 1년을 만드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피조물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이고 또한 사람이 다시 시작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은 겸손과 용기 입니다.
반복 되는 하루 하루 속에서 유한함과 겸손을 배우고,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 하루 속에서 다시 시작할 용기를 배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도시는 여리고였습니다. 이 여리고는 지금부터 8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세계에서 매우 오래 된 도시 중 하나입니다.
과거 출애굽 때 가나안 점령 당시,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저주했던 일이 있습니다.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여호수아 6:26)라고 했지요.
그래서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열왕기상 16:34)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그다지 선망할 만한 도시는 물론 아니긴 합니다.
그런데 엘리사 때에 그 오래된 도시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리고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의 양이 매우 적은 곳이기 때문에, 땅 속에서 솟아나오는 물의 공급이 항상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엘리사가 활동하던 당시에 그 샘의 물의 수질이 매우 좋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리고 사람이 말하기를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라고 했어요.
표준 새 번역이나 영어 성경을 읽어보면 훨씬 더 안 좋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물이 좋지 않아서, 이 땅에서는 사람들이 아이를 유산합니다."라고요.
아무리 여리고 평지가 넓고 주민이 많아도 물이 좋지 않으면 도시를 발전시켜볼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고대에는 물을 정수할 수 있는 현대과학적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엘리사가 선지자로 널리 알려진 후, 여리고에 방문을 하였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오래된 문제를 엘리사 앞으로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답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엇이든 원하시면 하실 수 있습니다. 때로는 자연의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셔서 자기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어쨌든 그들 중 믿음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문제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가져오라고 한 뒤, 가져온 소금을 샘의 근원으로 던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 그릇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의 “거룩과 정결함’을 상징하며 소금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의미하지요.
21절에 보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이 물을 맑게 고쳐 놓았으니, 다시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물 때문에 죽거나 유산하는 일이 없을 것이니라.'" 그리고 회복된 그 샘물은 지금까지...계속 좋은 수질을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왕하 2:22)=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고 했어요.
여기서 말하는 지금은 열왕기 하가 기록되었을 당시를 말하지만, 오늘날 현대에도 여전히 야자수 나무가 푸르게 우거지고 농사가 잘 되는 지역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 효과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인간이 볼 때는 너무나도 쉬운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들에게도 쓰고 나쁜 물의 근원이 저들의 심령 속에서부터 흘러 나옵니다. 시기 질투 살인 도적질 간음과 반역함 등의 근원이 우리들 심령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 한 방울이 똑 떨어지면 악의 근원이 선한 심령의 물이 흐르는 은혜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 고쳐진 여리고의 물이 영원히 고쳐졌듯이 영원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리고를 가보면 큼직한 야자나무도 많고 호텔도 있고 대체로 활발한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엘리사가 고쳐준 샘으로부터 다시 발전이 시작된 까닭입니다. 그 샘 때문에 여리고는 사해 인근에서 오아시스 같은 도시로써 교통의 요충지, 상업의 요충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결론) 우리의 삶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은혜의 시작점은 “하나님께 여쭐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됩니다. 엘리사가 사람들에게 수질을 바꾸기 위해서 가져오라고 한 것은 사람들이 가져오기 힘든 그 무엇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흔한 소금이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겸손과 용기가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참조: 보통사람 / 편집:익선 12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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