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 강해

여호와 삼마(겔 48: 30~35)

호걸영웅 2017. 3. 30. 05:12

여호와 삼마( 48: 30~35)

30.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쪽의 너비가 사천오백 척이라

 

31.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쪽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32.

동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 문이요 하나는 단 문이며

 

33.

남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 문이요 하나는 스불론 문이며

 

34.

서쪽도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문이요 하나는 아셀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 문이며

 

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이름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서론)
1.
본문은 에스겔서에서 가장 마지막 장 마지막 단락입니다.   40~48장까지 장장 9개 장에는 미래의 말세인 천년왕국 즈음에 세워질 성전의 크기와 규모 등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절기에 드릴 예물과 제사법에 대한 규례가 나오고, 새로운 땅에 대한 이스라엘 족속들을 향한 재분배가 나오고, 마지막 구절엔
여호와 삼마,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성전에 특별히 함께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부분에서,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피 흘리신 공로로 구원이 완전히 성취되고 복음이 온 세상에 퍼지고 있는데, 왠 뚱단지 같은 율법적 제사와 성전이 부활하여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2. 이 부분은 어떻게 대충 보면 매우 어려운 부분일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독하는 분들은 성경을 잘 읽다가도 여기서 흥미를 잃고 에스겔 읽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 3가지 점에서 먼저 여러분의 관점을 보충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1)먼저 대다수의 신학자들은 여기에 대해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이나 복음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념적 행위와 경배를 위한 제사이다 라는 점입니다. 이는 마치 성만찬을 우리가 교회에서 계속 유지하고 있는 바와 같다고 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2)그 다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성전은 인간이 지은 성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성전은 바로 하나님 당신께서 이미 만들어 놓으신 성전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성전에 대해 계시로 보여 주실 때, 이렇게 만들라는 말씀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에스겔에게 와서 보라고만 하셨습니다. 이는 인간 손으로 지어질 성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3)이스라엘엔 3가지 성전이 역사적으로 있어 왔습니다. 먼저는 솔로몬 성전, 다음 바벨론 포로해방 후인 스룹바벨 성전, 세 번째로 헤롯성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선 제 3성전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준비를 계속 해왔습니다. 그럼 헤롯성전은 뭘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헤롯성전은 새로운 성전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저 증축한 것일 뿐이라고 봅니다.  고로 그들은 두 가지 성전만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로 가까운 미래에 자신들이 새롭게 세울 성전을 제 3 성전이라고 부르고 성전에 들어 갈 모든 건축자재를 거의 대부분이 이미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아랍인들의 황금돔인 이슬람 사원이 모리아 산에 세워져 있어 아랍권과의 전쟁이 발발할 크 위험 때문에 건축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제3성전이 세워지려면, 시기적으로는 겔 38, 39장의 예언이 성취되고, 큰 지진으로 황금돔 사원이 무너져 내리면서? 아랍과 공산권이 매우 혼란하고 급격히 쇠약해진 패닉 상태에서 건설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오늘은 성전 관련 내용의 마지막 부분인 여호와 삼마 즉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내용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여호와 삼마의 의미
1.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이름들을 잘 이해 하면 더욱 정확한 믿음이 생기게 되고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이름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 이름만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다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의 여호와 삼마’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면 다른 곳에는 계시지 않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입니다. 물론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곳에는 안계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지만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어떤 장소나 어떤 사람에게 특별히 그리고 강력하게 주로 역사하시는 장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도 여기 저기 많이 다니지만 특별히 거하는 곳은 백악관인 것과 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 139편에 보면 시편기자가 하나님을 피해 보려고 했으나 실패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셨고, 음부에 자리를 펼지라도 하나님께 서는 거기 계셨습니다. 그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갈지라도 거기서도 하나님의 손이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못할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는 특별한 경우, 특정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로 함께 하신 경우를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1.
39장에 보면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3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디발이 보았다 했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23절에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이삭,다윗,모세,다니엘 등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형통했습니다.

)여호와 삼마의 은혜

1. 또한 하나님께서 특별히 함께 하시면 구원을 받습니다.
3장에 보면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괴로워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려가시 겠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특별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2. 다윗은 시 23편에서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주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목자 되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자신을 구해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3.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별명이 무엇입니까?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의 뜻이 무엇이지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 라’는 뜻입니다.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오셔서 특별히 죄인들과 함께 하신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구원자 되시는 아들 하나님께서 특별히 함께 하시면 함께함을 받은 자들에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죄인과 함께 하시면 죄에서 구원을 받고, 병든 자와 함께 하시면 병에서 구원을 받고, 어려운 환경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과 특별하게 함께 하시면 힘든 환경에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할렐루야!

4.
또 하나님이 특별하게 함께 하시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알게 됩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던 사람에게 빛이 임하면 길이 보이게 되는 것처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야 할 길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고로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막대기와 지팡이요 등불이라고 찬양하며 살았습니다.

5.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승리하게 됩니다.
41:10에 보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이스라엘에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승리를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수치와 패망을 당하며 악한 대적들은 패배하여 마치 바람에 날아가는 겨와 같이 된다 하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 때 하나님께서 나와 특별히 함께 하실까요?
1.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받아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고 그 일을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강제로 행치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우리들이 마음을 열고 모셔 들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요 1:12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어주면 들어오시고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아예 들어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노크하실 때 문을 여십시오. 활짝!!!!

2. 이 원리는 하나님의 일에도 마차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하라고 명하실 때, 우리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게 되지만,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없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명하실 때가 있습니다. 여리고를 점령하라든지 홍해를 건너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이 때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지만 불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축복도 하나님이 씨를 뿌리라고 하실 때 순종하여 뿌려야 합니다. 순종하면 때가 되어 열매를 따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지만,  불순종 하여 씨를 뿌리지 않으면 축복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왕상 17장에 보면 사르밧 과부가 받은 축복이 나옵니다. 몇 년간 비가 오지 않아서 양식이 다 떨어진 상태에서 하나님의 명령이 사르밧 과부에게 임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엘리야 선지자를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잔인한 명령 같습니다. 먹을 것이 다 떨어져가고 남은 것이라고는 한 끼 정도의 양식이 전부인데 그것을 하나님의 종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지면에 비를 내리는 날 까지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큰 복을 받았습니다.

4.
그 다음 기도해야 하나님이 특별히 함께 하십니다.
3:8에 보면 출애굽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시는 데, 7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이유를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라 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신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어 기도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장에 보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임하셔서 택한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전에 믿음의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을 썼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못 받고 죄에 휘둘리는 때는 기도에 전혀 힘쓰지 않을 때입니다. 기도를 우습게 보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기도에 전혀 힘씀으로써 성령이 충만하면 하나님께서 특별하심을 맛보게 하십니다.

4:6, 7에서= 힘으로도 능으로도 아니 되는 일이 성령으로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태산 같은 문제도 성령이 함께 하시면 평지같이 된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함께 하시는 곳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어디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성령을 모실 자격이 되느냐?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를 보면, 성령을 받기 전과 성령을 받은 후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성령 받기 전에는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하는 하는 실수를 범했으되, 성령충만을 받고 난 후에는 죽음을 두려워 아니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삼손에게도 성령께서 머물러 계실 때와 성령께서 그를 떠나셨을 때도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그에게 가장 큰 차이는 능력의 차이입니다. 성령이 머무실 때는 엄청난 능력을 행하던 삼손이 성령이 떠나고 나니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적들에게 잡혀 눈이 뽑히는 비참한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결케하고 거룩히 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히 함께 하시는 은혜를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5.
끝으로 하나님이 계신 곳을 찾을 때, 하나님이 특별하게 함께하십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이 성전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 올라갔던 것입니다.

6. 오늘날엔 교회라는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함께 하십니다. 18:20에 보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물론 교회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믿는 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을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건물에서 매주 정해진 시간 예수의 이름으로 모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기 때문에 우리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고 큰 축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또 말세를 볼수록 더욱 모이기 힘쓰라고 사도 바울도 권면했습니다. 곧 예배에 힘써야 특별한 은혜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 열심히 실천하심으로써  여호와 삼마의 축복을 크게 누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031417
익선/참고: 놀아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