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참으로 두려워할 것 (마 10:28~33)

호걸영웅 2017. 12. 8. 05:55

참으로 두려워할 것 ( 10:28~33)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서론)

구약성경은 ‘믿음’이란 말 대신에 ‘하나님을 경외하라’ 혹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는 말로 많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곧 믿음에 대한 또 다른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믿음이 잘못되었거나 아예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곧 죄와 연결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특징은 세상의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은 반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상 2:30하에선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참된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면 그가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보면 대충 알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 뿐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도 반드시 갖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어야만 할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실제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까 두려워하고.

2. 하나님 앞에 죄악을 범할까 두려워하고.

3. 하나님의 은총을 잊을까 두려워하라 했습니다.

 

본론)

1.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까 두려워하라.

 

( 66:2)= “…나의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나의 말을 듣고도 떨지 않는 자는 내가 돌보지 아니하려니와...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을 돌보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과거에 제가 어렸을 때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스승과 부모는 동일하게 종경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승과 같이 걸어갈 때,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했습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승이나 나나 뭐 별 다를 것이 뭐인가? 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선생을 구타하거나 별 일도 아닌데 고소하기도 합니다.

 

부모를 참으로 공경하고 잘 섬기는 자식이라면 부모의 말씀을 두렵게 생각하는 것과 같이, 참으로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떨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꼼짝 못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 곧 ‘교인’일수는 있어도 ‘참된 신자’는 아닙니다. 오늘날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무지 두려워할 줄 모른다면 그는 참 믿음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 ( 13:13) 고 했습니다. 다윗이 세운 왕조였던 남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하고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살해하기 까지 한 죄의 대가였습니다. 사울 왕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순종치 아니하여 결국 멸문지경(가문의 몰락)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처음엔 성령에 감동되었던 사울왕도 결국엔 점장이를 찾아가는 대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전장에서 아들들과 함께 죽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떨 줄 아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큰 상급을 주시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면 하나님도 그를 귀중히 보지 않고 축복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패망하고 맙니다.

 

2. 하나님께 죄악을 범할까 두려워하라.

( 4:4) =“너희는 떨며 범죄 하지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것을 심히 두려워합니다.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참 신앙인입니다. 사람의 눈에만 들키지 않으면 죄짓는 일을 식은 죽 먹듯 하고, 범죄하고도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지 아니하며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참 신앙인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영원하지 못하며 언젠간 큰 징계와 심판을 받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온 땅을 두루 다 살펴보시며 또 인간의 모든 행위를 감찰하시고 저울에 달아보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머리카락도 세시는 분이라 했습니다. 죄짓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나 어쩌다가 실수하여 죄를 졌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며 애통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양심에 아무 감각이 없으면 그 양심이 화인(불도장)맞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자신이 지은 과거의 죄를 깨닭았을 때, 그 죄의 사악함을 깨달아 거의 기절할 뻔 했다고 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그처럼 죄에 민감하였기에 종교개혁에 선봉에 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죄에 민감할 줄 알아야만 합니다.

 

요셉은 죄짓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장군 보디발의 집에서 하인으로 있을 때, 그이 아내가 요셉을 연모하여 요셉과 동침코자 하였으나 그것을 뿌리치고 나오다 모함에 걸려 감옥살이를 할만큼 죄를 두려워 했습니다. 39:7~9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그렇습니다. 요셉이라고 죄 지을 본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범죄 하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 복을 받고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죄짓기를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하나님이 존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죄악으로 누리는 일시적인 쾌락보다도 죄의 결과, 그 심판이 수백 수천 배 더 크고 길다는 사실을 깨닫고 범죄 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참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의 은총을 잊을까 두려워하라.

 

( 3:5)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여호와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They shall come in fear to Lord and to his goodness’라고 했으니, 즉 ‘그들이 두려워함으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선하심)으로 나아가리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선하심)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고 난 뒤에 감사하고 감격할 뿐 아니라 “나같이 부족한 것이 이런 놀라운 복과 은혜를 받다니...”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은총에 대하여 감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있어야 참 믿음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은 오랜 고생 끝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난 후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삼하 7:18) 하면서 감격했습니다.

 

32:10=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과거 가출하여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 칠 때는 그이 소유는 지팡이 하나 뿐일 정도로 가진 것이 없었지만 삼촌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하다 나왓을 땐, 두 떼나 이루었다고 하며 하나님께 감사 했습니다. 그 두 떼란 무엇입니까? 32:에 보니까 형 에서를 만났을 때 준비한 선물이 양만 해도 어마어마 했습니다.

 

13.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14.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15.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그러니 그 전재산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제 생각엔 형에게 준 선물이 열의 하나면 , 열의 아홉은 야곱의 것이었으리라 믿습니다. 아마 양만 2,000여 마리, 염소 2,000여 마리, 낙타가 300여 마리, 암소가 사백마리, 황소가 100마리, 암나귀 200마리 정도는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크나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구언과 영생의 축복입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재와 미래의 축복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도 이런 두려움이 없다면...... 그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요, 교만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을 사람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사람입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늘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죄 중에 있을 때, 두려워 하며 그 죄를 회개 자복하고 버리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또 우리가 행복감으로 충만할 때일수록, 그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감격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인색하게 감사하지 않아나! 하며,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03117 안익선 목사/ 참고:안성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