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강해

하박국 개론과 1장 전반부

호걸영웅 2018. 3. 4. 09:26


하박국 개론 


1:1


 하박국의 명칭은 선지자 하박국의 이름을 따라<qWQb'j}; 하박쿠크>라 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명칭의 의미는 히브리어 동사<qb'j;; 하바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인데, 이때<qb'j;; 하바크>는 ‘포옹하다’라는 뜻을 가졌다고 합니다.


1. 하박국의 저자


  본서를 기록한 저자는 1절에서 밝힘과 같이 하박국입니다. 이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를 매우 사랑하였으며 또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2. 하박국의 역사적 배경과 기록연대: 하박국이 예언한 시기는 주전 601~625년 경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3.하박국의 주요 메시지와 기록목적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나훔과 마찬가지로 자기 백성을 비난하고자 나선 것이 아닙니다(1:2-4은 약간의 불경건한 자들을 책망한 것이다). 그렇다고 국수주의자처럼 자기 민족애에 빠져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동기는 불의하고 비도덕적인 세력이 세계를 통치하는 데에 대한 의인의 고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실현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위대한 복음진리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박국의 예언을 살펴보면 백성들의 완악함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1:5). 더 나아가 하박국 선지자는 의로운 유다는 구원받으리라는 약속을 선포하였습니다. 또 하박국은 당시에 당하고 있는 고난을 문제 삼습니다.


4.하박국서의 특징


 하박국서를 읽어보면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예언서, 특별히 다른 소예언서들과는 전적으로 성격을 달리하는 하나의 특성이 있습니다. 다른 모든 소예언서들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백성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하박국서는 하박국과 하나님과의 대화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대화적인 입장으로 볼 때에 일반적인 예언서와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다섯 가지 화에 대해서 선포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다섯 가지 화에 대하여 선포한 것은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계시를 바탕으로 한 신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하나님의 정의로우신 판단과 심판으로 갈대아인들의 멸망을 확신하며 조롱조의 화(저주)를 선포하였습니다.


1) 화 있을진저 남의 것을 노략하는 자여


하박국의 첫 번째 화 선포는 남의 나라를 노략하는 자들에 대한 저주였습니다. 그들은 비록 남의 것을 노략하여 전리품을 나누며, 승리를 기뻐할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피정복민들로부터 과중한 조공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예언자들은 바벨론의 왕들을 피정복민들에게 무거운 부과물을 강요하여 노략하는 무자비한 채권자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바벨론의 교만과 잔학함은 그들이 행한 만큼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하박국의 선포였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노략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의 정의의 빛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즉 그는 비록 그들이 남의 것을 먼지까지 긁어모을지라도 그 노획물로 인하여 짐 지운바 되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하박국은 처음에 하나님의 정의에 대하여 의심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계시를 통하여 자신이 품었던 모든 의문이 일시에 풀렸음은 물론 바벨론의 죄악이 자신들의 올무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2) 화 있을진저 자기를 위하여 불의한 이익을 취하는 자여


바벨론은 노략한 재물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려고 높은 성을 쌓고, 많은 요새를 건설하였죠( 1:3). 즉 그들이 약탈과 노략을 일삼는 것은 자신들의 나라를 강하게 만들어서 어떤 나라도 바벨론에게 대항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그들의 정책은 적중하여 많은 도성이 부유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벨론의 백성들은 노획물로 인해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부와 강함은 높은 권세의 상징일 수 있었지만 반면에 그것은 교만의 상징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박국 선지자는 바로 바벨론의 교만을 들어 저주를 선포한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강포를 행하여 얻은 부와 강함이란 하나님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하박국은 여러 민족에게 강포를 행한 것 자체가 바벨론에게 부와 강함을 보장했을지 몰라도 그것은 오히려 욕이 될 것이며, 영혼을 병들게 한 죄악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 같은 사상은 ‘바벨론 저주의 신학’이라 불리는 오바댜서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오바댜는 재앙을 피하여 높은 곳에 깃들이며, 비록 독수리처럼 높은 권세를 취하고 하늘의 별 사이에 거하는 것과 같은 영화를 누릴 지라도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거기에서 끌어내리시겠다고 하였습다( 1:4).


더욱이 바벨론 왕의 교만은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14:13)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바벨론은 스스로 교만을 쌓아 갔습니다.


3) 화 있을진저 피로 성읍을 건설하는 잔인함이여


세 번째 저주는 바벨론이 지니고 있는 잔인성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즉 느부갓네살 왕은 어떤 국가도 자신의 지배권에 도전할 수 없도록 성읍을 세우거나 재건하였는데, 이 일에 동원된 포로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중노동에 시달렸습니다( 11:9). 바벨론 제국을 통일 시킨 느부갓네살 왕은 열국을 강탈하여 그 전리품으로 도성과 신전을 장식했으며, 포로들을 이용하여 성벽과 요새를 건설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그 모든 피로 쌓은 불의의 성읍은 오직 심판의 불을 맞기 위한 준비가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즉 강탈과 착취와 부정과 불의로 세운 도성은 비록 강하다 할지라도 온전히 무너지게 될 것이고, 높은 문들은 불에 틸 것이며, 백성들의 중노동은 헛수고로 그칠 것이었습니다.


4) 화 있을진저 부도덕과 악행을 일삼는 자여


네 번째 저주는 망령된 술 취한 자의 비유를 통하여 바벨론의 부도덕과 악행을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웃을 향해 무자비하게 권력을 휘두르는 갈대아인의 행위가 스스로에게도 동일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선지자의 엄숙한 선포였습니다. 바벨론은 열국을 강탈하고 그들을 압박하였을 뿐만 아니라, 열국의 백성들로 하여금 큰 수치를 당하게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팔레스틴에서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은 바벨론의 풍습에 쉽게 동화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우상숭배로 인한 성적 방종과 개인 간의 이간질 반목 등 도덕적인 타락에 물들었습니다( 5:1-3). 또한 예레미야는 바벨론을 여호와의 진노의 잔이라고 부르고, 그로부터 비롯된 열방의 수치와 패망을 선포하였습니다( 25:15-26).


5) 화 있을진저 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여


다섯 번째 저주는 바벨론의 우상 숭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은 우상의 본거지라 할 정도로 갖가지 우상이 무수히 있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열방을 정복하여 열방의 신전을 약탈한 뒤, 그곳의 신상들을 취하여 바벨론의 신전에 안치하였습니다. 따라서 바벨론에는 열방의 우상들이 한데 모여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하나의 승리를 거울 때마다 승전을 기념하여‘부어 만든 신상’, 또는 ‘새긴 우상’들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박국은 이들 우상들에게 어떤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헛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상 하박국 개론)


2018.2.27. 안익선 목사/참고: 섬김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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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1장 전반부 강해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할 때)


서론)


오늘부터 우리는 하박국 말씀에 대해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서는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들과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기록한 예언서입니다.


)기록된 시기와 시대적 배경


하박국 선지자가 살았던 곳은 이스라엘의 남 유다였습니다. 하박국이 살았던 초기 시대에는 믿음의 왕 요시야(B.C. 640~609) 가 남 유다를 다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요시야 왕은 우상숭배를 척결하고, 나라와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려고 노력했던 믿음의 왕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주전 609년에 죽게 되었고, 요시야 왕을 이어 그의 아들들이 왕의 자리를 잇습니다. 처음에는 여호아하스라는 아들이 왕의 자리에 앉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기(왕하23:32)에 애굽에 의해 3개월만 폐위 당하게 됩니다.(애굽에 의해 강제로) 그리고 다시 다른 아들 여호와김이 왕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그 역시 하나님 보시에 (왕하23:37) 악을 행했기 때문에 10년 정도 왕을 하다가, 바벨론 나라에 끌려가게 됩니다.


이처럼 요시야왕은 믿음의 왕이었지만, 그의 아들들은 전혀 믿음의 자녀들이 아니었고, 지혜롭지도 못했기 때문에 남 유다는 요시야 왕이 죽자마자 큰 혼란에 빠져버립니다. 요시야왕이 일평생 힘쓰고 애썼던 개혁들은 믿음도 없고 능력도 없는 자녀들 때문에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립니다. 국외적으로는 남쪽에서는 애굽이 유다를 괴롭혔고, 북쪽에서는 바벨론 나라가 유다를 괴롭혔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왕과 나라의 지도자들은 앞장서서 하나님이 아닌 우상들 섬겼고,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라 안과 나라 밖이 혼란스러웠던 상황에,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는 하박국서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박국 선지서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의 남유다 나라가 위기상황 가운데 처해 있는데, 왜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가?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국가적인 매우 어려운 상황 중에 가장 크게 답답해 하고 낙담하고 있는 사실은 자신의 이러한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 했습니다.  성도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 하는 때가 어떠한 때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할 때가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침묵에 대한 믿음의 처방 5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서 너무나도 답답해하고 힘들어 합니다. 오늘


본문의 하박국 선지자도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이러한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할 때,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1>첫 번째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계속 듣고 계시다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속적으로 다스리시는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주인 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또한 모든 것을 다 가능케 하시며,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고 간구하는 내용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지지 않고, 우리가 간구하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고 계시는 것인가? 혹은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우리가 경험하는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으신 것인가? 라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일관되게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과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고 계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버리거나 외면하신 적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백성들의 앉고 일어섬도 아시고 계시며, 하나님 자녀들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신바 되었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과 자녀들의 삶을 언제 어디서나 다 지켜보고 계시며, 그들 곁에서 함께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들이 지금 당장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응답되어지지 않고, 내가 경험하는 문제들이 지금 당장 해결되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사, 내가 기도하고 간구하는 모든 것들을 다 듣고 계시고, 알고 계시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2>두 번째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일하고 계시다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3절과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라 했어요.


 하박국 선지자의 고통이 무엇입니까? 의인들이 고통을 당하고 악인들이 득세하는 이 현실이 너무 억울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이 너무 형통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불공평한 일이 일어나는데 왜 가만히 계시냐는 것이 하박국 선지자의 고통입니다. 우리 역시 이러한 경험을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은 그러한 상황이라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셔서,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고 계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것도 안하시는 것 같은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 혼자서만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들의 삶을 지도하시고, 인도하시고, 섭리하시고, 주관하시고, 강권하고 계시다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섭리하심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들의 삶과 인생속에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일을 진행하고 계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지해서, 혹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너무나 은밀해서,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3>세 번째,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종종 우리가 느끼는 하나님의 침묵이, 하나님의 침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계속 말씀하고 계시는데, 우리에게 응답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의 마음이 분주하 거나 여유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있는데, 내 마음이 안정되지 못해서 놓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영적으로 무감각해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혹 내가 모르는 잘못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즉 나의 몸과 마음이, 나의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아는데 준비가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요셉이나 욥도 그랬고,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러한 일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라도 때도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그리고‘그래도 하나님께서 다른 뜻이 있으시겠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내 삶을 간섭하여 주시겠지’ 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침묵의 시기를 잘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계속해서 기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할 때 우리는 쉽게 낙심과 절망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포기합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떠납니다. 그러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침묵의 순간에도 여전히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결론)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한번 스스로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인내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하박국의 마지막 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박국 3 19절과 20일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3:18-19)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라, 그분은 나의 힘이니라. 이것이 하박국의 결론이 됩니다.


2018. 2. 27 안익선 목사/참고: 섬김의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