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구령과 양육에 힘쓰는 해가 되자(마28:19~20)

호걸영웅 2019. 1. 7. 04:45

구령과 양육에 힘쓰는 해가 되자(28:19~20)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 또는 침례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서론)

저는 해마다 내년 우리 교회는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 사역을 하면 좋을까를 생각하느라 몇 주간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역시 이번 2019년에는 구령과 양육에 힘쓰는 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아, , 우리가 목표는 해마다 정하긴 하지, 그러나 실천은 작심 삼일이 될 때가 많지... 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목표도 없이 새해를 맞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우리 예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지상명령이야 말로 금년 우리가 실천해야 할 불변의 목표요 더욱 강조되어야 할 목표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가지 실천 사항을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들을 함께 나누면서 금년 한 해 열심히 힘을 모으고 기도를 모아야 되겠습니다.

(그럼 이 세가지 실천 사항은 무엇이고 어떤 부분들을 우리가 실천에 힘써야 할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사항 1) 구령과 전도에 더욱 힘쓰자(딤전4:2)

먼저는 구령과 전도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우리가 항상 힘쓸일이 있다고 본문은 말씀하십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오래 참고 가르침으로 경계하고 책망하며 권면하라 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목사인 디모데에게 사도 바울이 하신 말씀입니다.

바울은 예수의 제자이고 디모데는 바울의 제자입니다. 제자는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고로 우리는 모두가 목사 전도사는 아니어도 예수의 제자입니다. 고로 이 말씀을 평소에 항상 실천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의무입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단순히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믿음 생활을 하다보면 저절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영혼을 항상 먼저 보아야 하고 그 영혼을 가장 주의깊게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영혼에게 예수님이 안 계실 땐, 늘 말해 주어야 합니다. 당신에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라고요.

물론 여러 성도님들은 이 일에 늘 관심이 있으시고 잘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부침성이 부족하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혹 다치지 않을까 매우 염려하거나 주의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거절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자기가 원치 않을 때 서슴없이 노우 라고 말합니다. 그리니 염려하지 마시고 예수에 대해, 교회에 대해, 신앙에 대해 말하셔도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스 라고 할 수도 있는데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옥으로 보내버렸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종종 무슨 말을 해야지? 라고 걱정하게 됩니다. 전에 어느 목사가 전도할 때 어떻게 하라고 설교한 것 같은데 생각이 통 안나네! 라며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냥 내가 아는 것, 내게 생각나는 것만을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니면 평소에 우리 교회이 전도지나 주보를 가지고 다니십시오. 그리고 전해 주면 됩니다. “이거 좀 읽어 보실래요?”라고 하면 됩니다. 또는 “우리 교회 한번 나와 보실래요?”라고 하면 됩니다. 어렵지 않겠지요?

 

지금 훈련가신 홍정택 집사님은 전도에 매우 열심인 분임을 여러분은 다 아십니다. 그분은 항상 묵직한 배낭을 매고 다니시지요. 그 속에 물론 개인 짐도 있겠지만 그 속엔 전도지, 전도책자, 주보 등이 엄청나게 매우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군인들에게 한글 뿐 아니라, 영어나 중국어 등의 전도지나 전도책자, 주보 등을 나눠 주면서, 교회로 인도하고 신앙적 상담을 합니다. 늘 복음을 등에 지고 다닙니다.

 

여러분,여러분의 핸드백이나 가방 속에 지금 전도지가 있으십니까? 교회 주보가 있습니까? 복음적인 책자 같은 것이 있습니까? 없으시다면 한번 챙겨 다니는 습관을 가져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훨씬 만나는 새로운 영혼들을 접촉하기도 쉽고 말하기도 쉬울 것입니다.

 

문제는 관심입니다. 물론 우리는 먹고 사는 일도 중요하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그리하면 그 모든 것을 채우시리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도를 위해 관심을 갖고 시간과 노력을 드리면 하나님은 그 외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십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요....”라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고 명령하신 일을 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필요를 반드시 채우십니다.

 

)(실천사항2)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하자

(10:24,25)=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인간을 스스로 부르기를 ‘사회적 동물’이다 라고 합니다.

그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행동을 합니다. 저는 가끔 대중목욕탕에 가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기 사람들은 다 벗고 있는데 나만 옷을 입고 있다면 정말 이상할꺼야-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 옷을 입고 있는데 나만 벗고 있다면 정말 이상할 뿐 아니라 정신병원에 가게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선 무신론이 사회적 현상입니다. 고로 교회 십자가를 끌어내려 불태우고 교인들을 잡아다 가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한편 자본주의적 사회에선 개인의 자유가 아주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선 남의 집에 잘못 들어가면 총을 맞거나 가택침입으로 경찰에 잡혀 가기도 합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나의 일이 남의 일보다 엄청나게 중요시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도 그런 풍조가 밀려 들어옵니다.

서로 돌아보지 않습니다. 선행을 격려하지 않습니다. 사랑하자고 하지도 않습니다. 교회 와서 그저 하나님 말씀듣고 복받으면 됐지 뭐 남 까지 챙기고 돌아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냉냉합니다. 매정합니다. 특히 도시의 좀 크다는 교회는 더 해요.

 

지난 번에 황목사님이 이사할 곳을 찾으러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포트 잭슨이란 도시에 갔었습니다. 방석형 목사가 소개한 교회라서 그 곳에 가서 예배드리려고 방문을 했답니다. 거기 마침 방문자 주차장이란 곳이 있더래요. 그래서 거기 차를 대려는데 한 장로님이 마침 오시더래요. 그리곤 쓰윽 훑어보더니 새로 왔냐고 하더래요. 그렇다 했더니 저기 멀리 있는 다른 곳에다 차를 대라고 하더랍니다. 방문자 주차장이라 써 놔서 왔는데 다른 곳으로 가라하니 기분이 좀 안 좋았지만, 좀 떨어진 곳에 차를 대고 예배당으로 들어 갔답니다. 그런데 누구도 새로 온 자기를 환영하지도 않고 소개하지도 않고 예배를 드리더랍니다. 예배가 끝나도 식사 같이 하자는 사람도 하나 없고 아무 관심이 없더래요. 그 후 또 다른 교회에 갔더랍니다. 그런데 거긴 작고 좀 초라한 교회였데요. 거긴 갔더니 목사님부터 시작해서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환영을 해주고 예배 후엔 목사님 만나 교제도 해주시고 이사와서 살 때 도움이 되는 말씀도 해주시고 거기 있는 동안 밥도 두 번이나 사주시고 그러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황목사님은 결심 했답니다. 이 교회가 이제부터 우리 출석할 교회다! 여기서 섬겨야 겠다 -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교회는 진리만 있어선 안됩니다. 사랑이 있어야 되요. 진리가 진리다워지려면 사랑과 선행이 교회 자체의 분위기로 자릴 잡아야 됩니다. 그게 진짜 살아있는 교회예요. 할렐루야!

예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그리하면 사람들이 너희가 나의 참 제자인줄 알리라! 라고 하셨어요. 사랑과 돌봄이 넘치는 교회가 되십시다.

 

 )(실천사항 3) 첫사랑을 잃지 않는 교회가 되자(2:3, 4)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이 예수 처음 믿었을 땐 설레임도 있고 기쁨도 넘치고 감사도 넘칩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신앙생활이 길어지면 권태기가 오는 것 같습니다. 그 첫사랑이 식어진다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 우스개 소린지 몰라도 신혼기간이 6개월이다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동의하기가 어렵긴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도 신혼이랑 별 차이가 없다는 착각? 속에 사니까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사랑하고 있어요. 상대방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ㅎㅎ.

 

그런데 꼭 권태기라서이기 보다는 예수 믿고 난 후에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도 많았지요. 우리 신앙생활이 세상 삶이 힘들 때 영향을 안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변해선 안됩니다. 혹 조금 변했다 해도 어서 원위치로 돌아 와야 합니다.

 

성도와 예수님과의 관계는 종종 부부관게에 비유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에클레시아 라는 여성 명사를 써요. 신부라는 거죠.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스런 아내라고 부르신 적이 종종 있어요. 그래서 아가서라는 성경이 씌여졌잖아요? 호세아서에도 그런 말씀이 여러 번 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음란한 아내, 바람난 아내인 고멜에 비유 하시기도 했습니다.

우리 신앙 생활의 최고상태는 어떤 때라는 의미입니까? 신혼생활같아야 한다는 거예요. 총각 처녀들은 잘 몰라요. 신혼을 보내 봣어야지! ㅎㅎ.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이 잘 못 되고 있다, 문제가 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기준이 뭡니까? 첫사랑 때 같지 않다 요즘... 신혼같지 않다 요즘...이라고 느껴질 때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요? 회개해야 되요. 어디서 문제가 생겼지? 하고 점검해 봐야 합니다. 내가 주님보다 회사일을 더 사랑했나? 승진 못해서 내가 정신을 빼앗겼나? 내가 너무  사회적 성공 때문에 신앙이 소홀해 졌나? 기도응답이 없어서인가? 남편 혹은 아내 눈치보고 비위 마추느라 그랬나? 교회성도들이랑 의견이 틀어져서 교회를 빠지다 보니 그리 됐나? 등등 문제가 발견될 줄 믿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 앞에서 시인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런 문제 때문에 제가 믿음에 소홀했습니다. 그런 문제가 하나님을 소홀히 하고 믿음을 버리거나 교회생활을 폐할 만한  이유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내가 문제를 보는 시각이 일반인들과 다르거나 하나님과 달라서일 수 있습니다. 또 문제를 하나님께 내놓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거리다가 지쳐서 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내 놓으세요. 예수님께 내 놓으세요. 그래야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나약한 내가 내 힘으로 뭔가 해결해 보려는 고집입니다. 수고하고 무건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했쟎아요. 기도하세요. 기도하면 문제해결의 열쇠를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데 돈 들어요? 아니지요? 첫사랑을 잘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결론)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오늘 들은 말씀 잘 기억하며 실천하여 금년 한 해도 멋진 새해, 사랑과 은혜 넘치는 새해, 승리하는 새해가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010119 안익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