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하

사무엘 상 3장 강해(사무엘의 부름 받음과 성장)

호걸영웅 2019. 10. 24. 03:02

사무엘 상 3장 강해(사무엘의 부름 받음과 성장)

 

서론)

 삼상 3장은 사무엘이 아직 어릴 때에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소명을 받게 되고, 모범적인 성장을 이루게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이 되는 내용입니다. 사무엘은 구약에서 모세와 더불어 구약 인물 중에서도 특이하게 선지자, 제사장, 사사()의 삼중직을 겸임한 유일한 인물입니다. 본 장에서는 선지자의 소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1. 1~14: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의 타락한 상황을 개혁하기 위해 준비해 둔 사무엘을 부르신 것입니다. 제사장 엘리는 늙어서 자신의 직분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으며,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매우 암울해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보다도 더 타락한 엘리의 두 아들 대신 사무엘을 부르신 것입니다.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사무엘은 엘리의 감독 아래 여호와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거의 나타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 시대의 도덕적, 영적 타락성이 극심함을 보여줍니다. 계시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8:12).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엘리는 이미 98세로 육신의 눈이 어두워진 것은 자연적인 현상입니다(삼상 4:150. 그러나 그는 이제 영적인 눈까지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가족에 대한 여호와의 계시를 사무엘을 통해서 전달 받아야 했습니다(12-18). 이런 사실은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깨닫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어서 영과 귀와 눈이 밝아야 함을 교훈해 줍니다( 119:18).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하나님의 등불’은 성소 안에서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 등불입니다. 기름은 감람나무 열매로 만든 순결한 기름만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으며, 규칙적으로 매일 저녁에 등불을 켜서 날이 밝는 새벽에는 끄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27:20-21).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아직 새벽이 밝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때에는 아직 새벽이 이르지 않은 시각이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가 있는 곳에 누어 있었다는 것은, 성막 근처에 설치된 숙박 시설에서 잠을 잤다고 봅니다.

 

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6: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사무엘은 두 번을 동일한 착각을 반복하는데, 그것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나타나는 영적 미숙함과 무경험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알다(야다: ידע)’는 여기에서는 단순한 지적인 인식 이상의 전인격적인 교제가 있는 ‘지식’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있을 뿐, 아직까지는 개인적 체험을 통한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의 교제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엘리에게 달려갔던 것입니다.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42:5)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지식으로 아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그 의미를 깨달아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로 성숙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1:7)

 

8-9: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을 세 번씩이나 부르셨고, 그제서야 엘리는 사무엘에 대한 여호와의 부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실 때에 사무엘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잘 알려주는 것을 볼 때, 비록 영적으로는 무디어졌으나 그의 직임을 통한 경험이 축적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사무엘아, 사무엘아’ 이렇게 부르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른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종을 부르실 때에 종종 사용되고 있습니다( 22:11; 3:4).

 

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하나님께서 선포한 말씀이 사람들의 경종을 울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행하심의 소식을 접하는 자마다 두려움과 공포의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 하였음이니라.-하십니다.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 말씀은 엘리의 집이 심판을 받는 이유를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엘리의 죄는 아들들의 죄를 알고서도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방조한 것입니다(삼상 2:29). 또한 자녀를 하나님의 율법으로 가르치라는 명령에 불순종한 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6:7). 그러므로 이에서 깨달음을 얻어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가르쳐, 자녀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도록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 6:5). 자녀가 성경 밖에서 행할 때 근실히 징계하고 공의를 이루기에 힘써야 합니다.

 

본절은 엘리 집안에 대한 심판은 돌이킬 수 없음을 못 박고 있습니다. ‘제물’(제바흐: זבח)‘는 피 흘림이 있는 희생 제사를, ’예물(민하: מנחה)‘은 피 흘림이 없는 곡식 제사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엘리의 아들들은 이러한 모든 제사 자체를 모독하는 죄를 지었으므로 그러한 제사로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죄를 구속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모독하고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용서 받을 길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2:31).

 

  1. 15~21: 사무엘은 하나님의 공식적인 선지자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이제 백성들도 사무엘을 선지자로 인정을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사무엘에게 임하고 그 계시가 온전히 성취되기 때문에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하나님 의 선지자로서 인정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첫째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새로운 영적 지도자로서의 신적 권위와 정당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며, 둘째 암담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백성들을 향해 끊임없이 계속되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은혜가 역사하고 계심을 드러내는 의미가 있게 되었습니다.

 

15: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비록 어렸으나 사무엘이 하나님께 받은 이상이 엘리 집의 심판에 관한 내용이었으므로 (11 -14) 그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입니다. 사무엘은 그로 인해 엘 리가 괴로워하며 슬퍼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16: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가로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17: 가로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사무엘이 하나님의 계시를 숨기지 말고 모든 것을 말하도록 요구하는 엘리의 강한 의지와 절박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엘리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심판의 예언을 들었었고(2:27-36),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계시하시고 자신에게 말씀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깊은 불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18: 사무엘이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사무엘이 하는 모든 말을 잘 듣고 난 엘리는 ‘선하신 소견대로’라고 말합니다. 이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비록 죄를 범하여 심판을 받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이처럼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은 옳은 태도입니다. 엘리는 자기 집안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향하신 선하신 뜻을 먼저 생각했을 것입니다.

 

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사무엘이 말한 내용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선포한 말씀의 성취 여부는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는 표준입니다( 18:22).

 

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단’은 이스라엘의 북쪽 변경에 위치하고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의 남쪽 끝 변경에 위치합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이스라엘 전 지역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다시금 사무엘에게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이러한 구절은 사무엘이 정녕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선지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론)

1.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그릇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어렸으나 그 심정이 곧 바르고 순수하며 정결하였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였으니 곧 더럽혀진 그릇이었습니다. 고로 하나님이 쓰시기에 부적당 했습니다. 여러분은?

2.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멋대로 행하는 시대에도 자비와 긍휼을 베푸셔서 선지자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 날 악한 세대에도 예수 그리스도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구원과 은혜를 베푸시는 참으로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찬양과 존귀를 받아 마땅하십니다.

 

102319 안익선 목사/ 참조: 행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