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복음의 핵심, 세 말씀 (요 14:21-23)

호걸영웅 2019. 12. 29. 01:38

복음의 핵심, 세 말씀 ( 14:21-23)

서론)

성도 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복음에 대한 삼요소를 잘 기억하며 전할 필요가 있고 잘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성탄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저명한 스위스의 법률학자요 철학자요 사상가인 칼 힐티라는 분은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책 2 24일자 일기에서 그는 기독교의 신앙은 세 가지 말씀 속에 표현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이 세 마디 말고 나머지 말씀들은 모두 신학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과 진리 그리고 기독교의 핵심은 다음의 성경말씀의 세 마디 말씀 속에 모두 감추어져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세 말씀을 함께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본론)
)먼저는“요한복음 17:3” 말씀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곧 사람이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는  길은“예수를 아는 일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창세기 시대부터, 성경의 엄청난 예언들을 좇아 이 땅에 보내심을 입은 분이십니다. 즉 성경은 예수님이 온 인류의 구원자이심을 소개하는 편지요 추천서요 설명서요 안내서요 증명서입니다. 언제 어디로 어떻게 오실 것이라는 예언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목적을 가지시고 세상에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를 알고 그를 믿는 일,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이요 의무입니다. 그런데 보통사람들이 그 예수를 알기가 참 어렵습니다. 예수를 알기만 하면 다 되는데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를 아무리 설명하고 가르쳐주고 보여주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식한 시골 농부들도 능히  예수를 알 수 있지만, 매우 유식한 분들 중에 예수를 모르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천재요 박사인데도 예수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선택 받은 민족이라고 불리우는 유대인들도 태반이 이 사실을 부인하고 모릅니다. 오히려 이방인들이 더 많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도 불가사의한 일 중 하나입니다.

결국 예수는 지식만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으로 만도 아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아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아는 것이요 성령으로 아는 것이요 믿음으로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축복이라 불리우는 것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복을 찾느라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먹지도 제대로 못하며 매우 수고스럽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최상의 복, 참된 복, 영원한 복은 예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받아 본 사람만이 아는 복입니다. 유럽에 송로버섯이라고 엄청 비싸고 진귀한 버섯이 있습니다. 맛이 정말 신기하고 독특하여 그 가격도 엄청나게 비쌉니다. 저는 아직도 그 맛을 모릅니다.  그 맛은 혀로만 느낄 수 있지 아무리 들어도 사진을 보여줘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도 같은 원리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순수할수록 죄와 멀수록 예수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이 이 예수를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유산보다 큰 유산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예수를 확실하게 믿게 해 주고 알게 해 주었다면 그 부모는 부모의 역할 거의 다 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재산을 많이 물려주면 다되는 것으로 아는데, 재산은 없어지기 매우 쉬운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복음이 얼마나 큰 재산인가는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내내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 예수를 알고 믿는 일은 그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두 번째 말씀은 “요한복음 14:21” 말씀입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계명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성경을 보면 “하라 ”는 계명과 “하지 말라 ”는 계명들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모두 이런 두가지 형태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계명들을 보면 상당 부분 사람을 구속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젊은이들이 교회에 잘 나가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온통 하지말라 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성경의 말씀은 모두 구속하고 속박한다고 믿기 쉽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계명들은 알고 보면 속박이 아니고 더구나 구속도 아니고, 그것은 큰 복의 길이고 은혜이고 사랑의 방법입니다. 부모들도 자녀들에게 참견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하라하고 하지 말라는 말씀을 많이 합니다. 젊은이들은 그런 참견을 몹시 싫어합니다. 모두 잔소리로 알고 괜한 간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잔소리는 자녀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자녀를 보호하려는 마음입니다.

한국의 휴전선 근처의 전방에 가 보면 산길 옆에 철조망들이 끝없이 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지뢰지대라는 팻말이 붙어 있거나 출입금지라고 씌어 있습니다. 그게 쓸데없는 간섭인가요? 아니죠. 그것은 보호와 선한 마음의 철조망입니다. 곧 하나님의 계명은 이런 사랑이고 은혜이고 배려입니다. 오늘 젊은이들은 이 사랑의 간섭을 무조건 거부하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들의 삶을 파괴시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내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
고 했습니다. 계명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그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나타내는 것입니다. 내가 주일을 지키고 예배에 힘쓰고 헌금을 하고 헌신을 하는 것 모두,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런 일들은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좀 힘이 들지만 계명도 지키고 의무도 행하고 땀도 흘리고 수고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제시하신 계명들을 지키려면 물론 수고가 필요합니다. 인내도 필요하고 손해도 감수해야 합니다. 욕을 먹거나 핍박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계명들은 모두 사람들을 괴롭히려고 주신 것이 아니고 행복을 주시려고 기쁨을 주시려고 주어진 조건이고 과정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그게 복 받는 비결입니다.

얼마 전에 나온 통계가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미국 미시건 대학 사회연구소의 심리학자 스테파니 브라운이라는 사람의 연구 결과입니다. 오래 사는 장수노인 423쌍을 대상으로 그들이 왜 장수하는가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노인들이 살아가는 삶에서 한가지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이웃이나 친척이나 친구들을 위해서 서로 돕고 봉사하고 아이들을 돌보아주고 심부름도 해 주고 봉사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더라는 것입니다. 서로 돕고 살아가는 삶에서 그 노인들은 삶에 기쁨을 얻으며 살아가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이고 장수하게 하는 요소들인 것입니다. 사랑하면 장수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면 장수합니다. 의롭게 살고 선하게 살면 장수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인류의 기본 나이는 120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서로 돕는 생활이 부족하여 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자기위주로 살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행복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삶에 맛도 잃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모두 나를 위해서 서로를 죽이고 속이고 뺏는 불행을 만듭니다.   

*
어떤 어린 아이가 애완용 거북이를 길렀습니다. 이 아이가 그 거북이를 참 귀여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거북이가 죽어서 엎어져 있습니다. 이 아이가 얼마나 슬퍼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위로해 주면서 대신 장례식을 잘 해주고 묘비도 세워주고 매일같이 꽃을 꽂아주면 되지 않느냐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거북이 장례식 준비를 했습니다. 준비를 마치고 죽은 거북이 시체를 가지러 집으로 가서 거북이를 집으려는데
……죽은 줄 알았던 거북이가 파닥거리며 일어나서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ㅎㅎ, 거북이가 죽지 않고 자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이 모두 기뻐했습니다. 거북이가 죽은 줄 알았는데 죽지 않았으니 말이죠. 그런데 이 아이는 실망스럽고 낙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아이가 거북이를 쳐다보았다가 또 장례식장을 쳐다보았다 하며 한동안 번갈아 쳐다보고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 알고 소동을 일으킨 것에 대해 창피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창피스러움을 모면하고자 묘안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저 거북이 죽여요!”라고 했답니다.

  사람은 이렇게 자기 중심적이기 쉽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쉽게 뱉습니다.  그래서 삶이 기쁨이 없고 행복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계명들을 주셨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구속하고 속박하려는 것이 아니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행복함과 깊은 감격과 은혜는 계명들을 지키며 살아가야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에 많은 계명들을 만드실 수 밖엔 없으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기를 “내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이고 내 사랑을 입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고로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말씀은 “요한복음 15:7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러분, 복중의 복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부작용이 없고 탈이 없고 부패가 없습니다. 거대한 강물이나 폭포수는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공해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태양은 수천년을 불타도 매연이 안 나옵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무수한 공장과 자동차들은 100년도 안되었건만 엄청난 매연과 공해 물질을 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습니다. 태양을 가리울 정도입니다.

예수님이 명령하셔서 잡은 물고기는 아무리 많았어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해서 거둔 만나는 모아 두어도 썩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사람들은 욕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쌓아 놓습니다. 쌓아 놓으면 뭐합니까. 썩어버리고 녹이 습니다. 도적질 당하고 강도질을 당합니다. 고로 부정한 돈인 뇌물은 받을 때는 처음엔 기분 좋을런지 모르지만 곧 바로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옳은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벌어들인 재물은 반드시 그 삶에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상처받고 병들고 감옥에 가고 죽기도 합니다.

고난도 하나님이 주신 고난은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고난도 내가 잘못해서 주어진 고난은 아픔이 큽니다.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면목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고난은 기쁨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 속에 인내하면 훗날 웃음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일본의 뇌성마비 시인 미즈노 겐조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입과 눈만 움직이는 완전한 불구자입니다. 그분이 눈짓과 입술로 자음과 모음을 짚어가며 쓴 시집이 있습니다. 그 시집의 이름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책입니다. 가수들이 그 시에다 곡을 붙여서 노래를 부릅니다. 그 시 가운데 이런 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 +로 바꾸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나에게 이런 큰 기사가 없었던들 어찌 그토록 완악한 내 동포 일본국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겠는가, 나의 아픔과 잔인한 고통을 통하여 일본인들에게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보다 열 배 백 배 천 배의 고통도 참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고통이 하나님이 주신 고통입니다. 그러니까 그 고통 앞에서 불평보다는 찬송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의미를 바로 인식하니까 오히려 그 고통을 기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신앙 밖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복음이 얼마나 위대하고 오묘하며 신비합니까.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그만 계명도 속박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계명을 구속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얼마나 얕은 생각이고 철없는 생각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생각하고 음미할수록 맛이 있습니다. 깊이가 있고 놀라운 신비가 있습니다. 오묘합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그런 하나님의 섭리를 신묘막측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복음을 믿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결론)

성탄의 의미는 곧 복음입니다. 복음이 없다면 성탄은 무의미 합니다. 이런 복음을 한번 더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는가? 예수가 없이는 영생이 없기에 또 구원하심이 없기에 그렇다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가르치심의 의미는 또 무엇인가? 계명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 의미가 무엇이며 그리고 진정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한번 더 생각하며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사랑하실 수 있으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20319 안익선 목사/참조: 이정익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