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예수 부활 후 40일(고전 15:1~8)

호걸영웅 2020. 4. 21. 00:30

예수 부활 후 40(고전 15:1~8)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1.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2.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3.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서론)

1. 오늘은 예수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 40일동안 어떤 사역을 하셨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배워보겠습니다.

2.성경은 부활의 주님이 승천하시기까지 여인과 제자, 그리고 믿는 형제들에게 모두 10번이나 나타나 보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타나 보이신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부활을 굳게 믿게 하셔서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시고 세계선교의 사명을 주시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막달라 마리아, 몇몇 여인들, 베드로, 두 제자, 열 제자, 도마, 일곱 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열한 제자 등의 순으로 나타나 보이신 순서를 따라 그 사명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엔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선택, 회복, 사명, 파송 등 일련의 단계와 수순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본론)

)증인으로 선택
1.
가장 먼저 예수께서는 예수의 무덤에서 슬피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69)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나타나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증인으로서는 오히려 신빙성이 없는 여자였던,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 보이신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 마리아에게는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로, 의심과 두려움에 쌓여 있던 다른 여인들에게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 28 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고 했죠.
가부장적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남성들보다 여성에게 먼저 나타나 보이신 것은 의미 깊은 일입니다. 저들에게 한 가지 귀한 점이 있었다면
그 여인들이 남성 제자들보다 주님을 향한 열린 마음과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천사들의 말을 순종하고 실천하는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
고전15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라며,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 고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베드로는 수제자는 커녕 제자의 자격을 이미 상실했다 고 볼 수 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가지 귀한 점이 있었다면 가슴을 치며 뉘우치는 진정한 회개였습니다. 통곡하며 회개하는 제자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그에게 믿음과 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이들은 사랑하는 마음, 가난한 마음, 회개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증명하는 증인으로서 선택되었습나다. 부활의 사건은 이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영원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4.
네 번째로, 의심과 슬픔에 쌓여 고향으로 돌아가던 이름 없는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셨어요. (2415)=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방황하는 한 마리 양조차도 잊지 않으시고  찾으시는 참된 목자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상심한 두 제자의 눈을 뜨게 해주시고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해주셨습니다.

5.
다섯 번째로, 부활하신 그 날, 곧 주일날 저녁엔 두려움에 쌓여 문을 닫아걸고 모였던 열 제자들에게 일시에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20 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두 제자들의 간증을 들으며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 그들에게 평안과 확신을 주셨습니다.

6.
여섯 번째로, 예수의 다시 사신 몸을 직접 만져보지 않고선 도저히 못 믿겠다던 도마에게 나타나 보이십니다. (20 26)= (부활하신 지)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 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도마는 열 제자들과 함께 집안에 모여 있었는데, 예수님은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시고 도마의 불 신앙을 깨뜨려 주셨고, 도마로 하여금“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라고 고백하며 부활의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7.
일곱 번째로,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 잡던 일곱 제자들에게 또다시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21  1)=“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갈릴리)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베드로도 있었는데, 사실 베드로는 여섯 제자들을 데리고 고기잡이하러 간 주동자였습니다. 그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와 같은 못난 제자에게 또다시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부끄러워 손으로 입을 가리운 베드로에게 책망의 말씀은 한마디도 안 하시고, 그의 가슴에 회개와 사랑과 사명만을 새롭게 부어 주십니다. 그제야 비로 소 베드로는 십자가의 증인과 부활의 증인이 된 것이었고, 참 증인 곧 순교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8.
여덟 번째로, 오백여 형제에게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고전15 6)=“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라고 했습니다. 오백 여 형제는 당시 대부분의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9. 아홉 번째로, 야고보에게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
고전15 7)=“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라고 했습니다. 주님 의 형제 야고보는 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적이 지도자가 될 사람이었고, 초대교회의 첫 번째 공의회의 의장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주님은 야고보에게 나타나 보이시므로 야고보의 신앙을 확증시켜 주시고 교회의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부활의 경험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 부활의 경험은 나가서 전할 수 있는 능력이고 사명이 되었습니다. 그 사명은‘내 양을 먹이고 치는 것’이었고,‘공동체를 이끄는 것 ’이었고,‘지도력 ’이었습니다. 부활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이 사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선 부활하신 후, 그의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위로, 평안, 확신, 고백을 통해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믿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10.
마지막 열 번째로,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셨는데
…… (28 16)=“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명하여 나타내 보이신 곳은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갈릴리의 산 언덕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28 19-20)는 선교 대위임의 명령을 내려 주십니다.

)부활 후 40일간의 예수님의 사역의 의미

1. 이제는 우리가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은‘세상의 빚진 자’들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주 예수님의 제자를 계속 만들기 위해 우리는 과감히 각자의 머문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 외쳐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이 주신 명령입니다.

다른 종교와 달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 혹은 강점은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세계 어느 종교도 부활을 중심으로 삼는 종교는 없습니다. 기독교 외의 종교에는 부활하신 구세주가 없고 성경대로 오시고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시고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 같은 교주?가 없습니다.

 

어떤 종교의 교주도 온 인류를 위해 대신 지를 지고 죽은 자도 없습니다. 다 죽어 무덤에 묻히고 그 시신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다시 살지도 못했습니다.  

 

2, 부활은 일시적 소생과 대비되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죽었다가 소생한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엘리사가 소생시킨 수넴 여인의 아들이나, 예수께서 소생시키신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그 실례입니다. 그러나 비록 이들이 죽음에서 일시 소생은 되었지만  나이 들어 다시 죽어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들은 완전한 부활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소생하여 얼마의 기간을 더 살았을 뿐입니 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셨음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입니다.

 

3. 부활은 죄 문제에 대한 영구적 해결을 증거합니다.

  성경에선 죽음은 실로 죄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에서 온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구약은 속죄의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죄 문제 해결의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은 죄에 대한 일시적 해결을 위한 것이지, 영구적 해결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영원한 속죄의 제물이 되신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우리 죗값을 대신 완벽하고 영원히 미리 대신 지불해주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측량불가의 사랑과 은혜,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아난 것입니다( 6:11).

 

결론)

 

(고전 15:20, 23)=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때에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부활의 주님은 우리들을 의로운 길로 이끌어가는 삶의 실제적 원동력이 되어 주십니다.

 

그분은 역사의 종점에서 우리를 그저 기다리고 계시는 소극적인 분이 아니시며 오히려 지금의 우리들에게 다가오셔서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와 동행하시며 ,역사를 섭리하시는 온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이 예수를 더욱 사랑하고 영광을 돌리며 전파하기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4.16.20 안익선 목사/ 참조: 권혁승 & 우형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