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를 보았노라!(요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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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 어떤 목사님이 이런 이야길 하셨습니다. 당신이 어느 교회를 가보니 거기엔 전혀 문제가 없는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이 그 교회에 가입해야 할까요 말까요? 그 목사님 말씀엔 이렇습니다. 당신은 그 교회에 가입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결함이 많기에 당신이 그 교회에 가입하는 순간! 그 교회는 결함 있는 교회, 문제있는 교회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오래 해 보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결함이 있고 문제가 있고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천사들이 아니며 예수 믿었다고 곧 천사가 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열매가 성숙하려면 시간이 걸리듯…우리 믿음의 열매들도 어느 정도 시간과 지식과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고로 거듭나는 것은 순간이지 만, 믿음이 성숙하는 데는 많은 연단과 시련이 필요합니다.
2. 오늘날 결함 많은 인간들이 비록 예수를 영접하고 믿음을 어느 정도 가졌다
할지라도 온전한 믿음을 갖기 쉽지 않은 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가 되야 예수의 재림도 믿는 단계가 됩니다. 부활의 단계를
넘지 못하면 이 신앙은 아직 어린 신앙, 불완전한 신앙입니다. 고로
사도 바울이 복을 부르짖을 때 매우 강조한 부분이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의 믿음의 단계에 이른 신앙이야
말로 어른의 신앙이요, 리더의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특히 부활에 대한 믿음엔 많은 반론과 도전, 그리고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고로 오늘은 부활의 신앙의 단계로 가기
위한 장애물을 넘는데 필요한 부분 몇 가지를 함께 생각해 봅니다. )
본론)
가) 누군가가 예수의 시체를 도적질하였다는 의심
혹자는
누군가가 예수의 시체를 도적질하였을 것이다 -라고 합니다. 먼저
로마인들이나 바리세인들과 사두개인은 도적질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죽어야만 만족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죽이자고 온갖 생떼를 쓴 사람들입니다. 고로
예수 부활의 빌미를 줄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로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도적질하였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인 로마군대가 창칼을 번쩍이며 밤낮없이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힘없는 제자들과 여인들이 예수 시체를 훔칠 수 있었겠습니까? 또 만약 제자들이 예수 부활을 거짓으로 꾸며 냈다면 과연 진리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고 자기들이 본 적도 없는 예수 부활을 을 알리기 위해 순교를 기꺼이 맞이할 수 있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열 두 사도 중 무려 10여 사도가 순교를 했는데 그런 바보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초대교회에서 제자들이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였는데…예수가 부활하시고 성령을 보내 주시마 약속하였고 그것이 마가 다락방 기도모임을 통해 성취되었는데 어찌 예수부활이 거짓일 수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나) 예수가 기절 및 코마(가사)상태에서 소생한 것이라는 의심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피와 물을 다 쏟았다 했습니다. 이는 사형 전문가들인 로마 군인 전담자가 한 일의
처리의 결과입니다. 고로 약할 대로 약해진 몸으로서 소생했다 하여도 건장한 체격의 남자 4~5명이 겨우 굴려낼 수 있는 무거운 돌문을 쉽게 움직이고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 나왔다 할지라도 군인들이 그것을 그냥 지켜보고 있었을 리는 절대 없습니다.
예수의 무덤은 돌로 굳게 닫혀 인봉 되어 있었습니다. 고로 그 누구도 함부로 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다) 예수를 영웅화 혹은 신격화 하려고 훗날 기록을 조작했다는 주장
초대
기독교 신앙은 그들이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상고한 바요, 손으로 만진 바인 부활의 주를 본 사실의 체험 위에 두었습니다. 신약성경 기록 전에 사도들은 예수의 부활을 그들의 목도한 증거를 근거로 삼고 있었습니다. 신실한 제자들은 『내가 주를 보았다』고
생명을 내놓고 외친 이유가 바로 체험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막달라 마리아가 보았고(막 16:9), 다음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보았고(눅 23:13이하), 다음 다른 부녀들이 보았고(마 28:9), 다음 베드로가 보았고(눅 24:33-34)다음 열 제자가 보았고(눅 24:36-43), 다음 열한 제자가 보았는데 이 때 도마는 손에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만져 보았으며, 다음 일곱 제자가 보았으며, 다음 오백 여 명의 제자가 일시에 보았고(고전 15:6), 다음 야고보가 보았고(고전 15:7), 다음 승천 시 제자들이 보았고, 그 후 특별히 바울이 보고
회개하여
사도가 되고 세계선교의 기초가 되게 하였습니다. 이 부활 사건은 환상이 아니요, 꿈이 아니요, 유령의 사건이 아닙니다.
고로 예수의 부활은 사실이요 하나님의 권능이요 불변의 진리요 우리들의 구원이 되고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지 사흘만인 새벽에 부활 하시었습니다. 성경의 기록자 마태는 이 사실이 너무도 장엄하고 그 부활의 광경을 감히 표현할 수가 없어 『큰 지진이 일어나매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리고 그 위에 앉았는데 얼굴이 번개 같고 옷이 희기가 눈과 같거늘 수호 하던 자가 천사의 연고로 인하여 무서워 떨며 죽은 그 사람과 같게 되는지라』라고 무덤 밖에서 그 순간의
이룬 것만 표현했습니다.
또 그날 새벽 미명에 누구보다도 일찍 돌무덤을 향하여 가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낙망과 슬픔으로 잠겨 있었으며, 그의 손에는 향품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 여인이 믿고 사랑한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고자 향품이였습니다. 이 여인이 곧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이르러 보니 무덤 입구에 무거운 돌은 이미 옮겨져 있었고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세마포가 개켜 놓였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었습니다. 이제는 시체만이라도 보리라는 희망조차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시신조차 보지 못하게 된 슬픔에 빠진 막달라 마리아가 더욱 슬피 울 때에 그때 신비한 두 천사가 무덤 안에 앉아 있었고 왠 또 다른 사람의 인기척이 있어 보니 무덤의 동산지기 같은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다』하고 주님의 시신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때
뜻밖에 그 사람의 자비롭고 낯익은 음성 『마리아야!』하고 들렸습니다. 그는 동산지기가 아니라 다시 사신 주님이었습니다. 주님의 시체는 도둑맞은 것이 아니요, 다시 살아나신 것이었습 니다. 『아! 선생님이여!』 눈물 어린 놀랜 눈을 크게 뜬 마리아는 손을
벌리며 살아나신 예수를 감동과 놀라움으로 부르며 예수를 만지려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으니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모습을 보고 예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다시 사신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인간으로서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숨이 가쁘게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습니다.『내가 다시 사신 주의 신령한 몸을 보았다!』
그리고
행1:에 보면~이 부활하신 예수는 40일 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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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셨습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초대교회도 없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사도들이 숱한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예수의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진정 일어날 수 없는 일들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사도들과 모든 성도들의 순교가 헛됩니다. 사도들은 성령을 통해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하고 귀신을 좇고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로마 대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는 역사적 사건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께서
생전에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만약 거짓이었다면! 어떻게 캘린더에 부활절이 떡하니 그것도
2000년이 다 되도록 명절로 정해질 수가 있었겠습니까?
결론)
성경을 보면, 믿음으로 숱한 선지자들은 수천년 후의 일들을 잠시 후 일처럼 보았습니다. 그리고 눈으로 본 것처럼 예언합니다. 이사야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이미 700년 전에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록했습니다. 그것도 상당 부분 과거형으로 써 놨어요. 미래이긴 하지만 이미 그 사건들을 환상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중요한 논리적 사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수천년 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사건을 볼 수 있는 능력도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이 천지 지으심을 천지를 보아서 믿습니 다. 우리는 믿음으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를 우리의 우리 위한 대속 제물로, 속죄양으로 주셨음을 봅니다. 그리고 능히 죽은 지 나흘이 나 되어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던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이…… 그때 이미 예언하신 바 그대로, 능히 사흘만에 부활하심은 너무도 당연하고 너무나 합당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들 하나님도 하나님이심은 분명합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아니라 본래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니 죽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가 귀신도 죽이지 못하거늘! 어찌 사람이 영생하시는 아들 하나님을 죽일 수 있습니까?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부활하신 그분, 예수를 볼 수 있고 그리고 또 보았습니다. 할렐루야!
주 예수께서는 그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하셨던 예언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그 부활의 첫 열매가 곧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는 그 부활의 예수를 보았노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을 전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041120 안익선 목사/ 참조: Godpeopl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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