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43:14~20)

호걸영웅 2020. 11. 13. 00:26

새 일을 행하시하나님( 이사야 43:14~20)

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17.
병거와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 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 ,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서론)

오늘의 말씀의 배경은 유다 나라가 바벨론한테 멸망하고 바벨론은 또 다른 나라에게 역시 멸망한다는 예언의 말씀의 일부입니다. 이 예언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으로서 유다 멸망이 있기 약 200여년 전 즈음의 예언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유다백성에게 지극히 새롭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겠다고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시리라”했는데, 이는 곧 바벨론 사람들이 나라를 버리고 배를 타고 바다로 다들 도망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곧 나라가 망한다는 말입니다. 바벨론은 곧 바사왕 고레스에게 멸망했고 하나님께서는 고레스 왕을 나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고레스는 출생하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이 예언하신 이름입니다. 그리고 본문 19절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한 것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살던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게 하시고 메시야를 보내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부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론)

)역사적 배경

이 예언의 역사적 배경은 유다 왕 히스기야 때의 앗수르 왕 산헤립에 의한 유다 침공으로 볼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 때, 유다는 당대의 절대 강자였던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이 점령을 당하고 수도였던 예루살렘까지 위협을 받는 일이 두 차례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으로 그들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바벨론과의 동맹을 맺으려 합니다. 그래서 그는 유다와 바벨론이 함께 앗수르의 힘에 맞설 수 있기를 희망하며,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보낸 사자를 환대했습니다(왕하20:12-13, 39:1-2).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는 이 바벨론과의 동맹을 정죄했습니다(39:6-7). 그는 이미 바벨론의 멸망을 두어번 예언한 바 있습니다(13-14, 21:1-10). 실제로 바벨론은 B.C 539년 페르시아(바사) 왕 고레스가 정복함으로써 멸망하였습니다.

고로 오늘 본문은 하나님보다 바벨론을 의지하려는 히스기야의 불신앙을 경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1절은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세계의 역사는 오직 거룩하시고 전적 초월자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의 구원도 완전히 은혜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세계 대제국인 바벨론을 파괴하실 하나님의 계획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되고 알려졌던 것입니다.

)옛 일을 말씀하시다.

본문16-17절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내보내고 나서 마음이 변한 바로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해왔다가 하나님에 의해 홍해의 물속에서 전멸당한 역사를 상기시킵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 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그 어떤 대적이나 위협 앞에서도 바벨론 같은 이방 나라에 기대려고 하지 말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신뢰하고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 18절에서는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하십니다. 왜 옛날 일을 돌이켜 생각하게 하시고는 또 그 일을 기억하지도 생각하지도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이것은 그 일 자체를 잊어버리라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권능은 장차 더 놀라운 일로 연결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놀라운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 하며 마치 오늘날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라도 그런 일 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을을 행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19절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연이어 하나님께서는 그 새 일이 어떤 일일 것인지를 본문 19절 끝부분과 20절에서 들려주십니다: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20절 상반절에서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이라 하십니다. 승냥이와 타조 같은 들짐승들도 하나님을 깨닫고 존경한다 했습니다. 하물며 사람이 예외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속한 모든 생명이 평화와 행복과 자유와 정의를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고유한 목적대로 그 자리를 되찾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세무궁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결국 숱한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정상화되며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의 관계도 바로 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온전히  임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새 일을 이루신 하나님

물론 이사야가 이런 예언을 말하였을 때는 새 일이 행하여지기 무려 700여년 전의 일입니다. 그 새 일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2000년 전의 일입니다. 이사야 당시에는 정확하게 그 일이 어떤 일인지 분명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에 대한 말씀이라고 짐작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너무나도 분명히 드러난 일들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새 일을 행하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개인의 구주로 모신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진리와 죄사함과 영원한 삶의 약속과 성령의 역사하심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7:37~39절에서

  1.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2.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고 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매우 불편한 가운데 있습니다. 세계의 경제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빈부차이도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인종갈등 민족갈등 종교 갈등등등도 별로 좋아지고 있지 않습니다. 부정부패와 비리 사건들도 계속 뉴스를 타고 흘러 나옵니다. 강대국들은 핵개발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무섭고 끔찍한 병들이 자꾸 생겨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들도 마구 죽어 나갑니다. 과학과 의학도 쩔쩔 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때에 오늘 이사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까? 무엇을 우리가 의지해야 하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이사야가 이런 예언을 할 당시,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의 존망은 히스기야 왕에게 달린 것도 아니고,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에 있었던 것도 아니며, 바벨론과의 동맹에 걸린 것도 아니었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모든 인생의 생사화복과 흥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날도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의 개인의 삶이나 일개 국가의 안보나 장래도 세계 역사를 운행하시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발견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중노동과 민족차별적 학대로 말미암은 탄식 속에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내시고 ,홍해와 바로의 군사 사이에서 죽음의 공포에 질려 있던 백성을 놀랍게 구해주신 그와 같은 일보다 더 큰일을 온 인류를 위해 해 내셨습니다.

고로 사61:1~3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예수를 가리켜 이렇게 예언하십니다.

  1. 주 여호와의 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예수를 통하여 행한 이 일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 중에 기적이요 은혜 중 은혜요 축복 중 축복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고로 우리의 마땅히 해야 할 일은?

.그러기 위하여 우리가 행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을 뒤따르는 22절 이하의 말씀은 분명히 가리켜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을 욕되게 하며 야곱이 진멸 당하도록 내어 주며 이스라엘이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때, 더욱 크고 놀라운 은혜로 그들에게 출애굽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큰 구원과 축복을 약속하셨으나 그 백성이 하나님을 부르지 않고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으며 죄로 하나님을 괴롭게 해드렸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 기만 하면 그들의 허물을 도말하시고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도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하나님을 배신하였기에 그들은 진멸을 당하고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대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할 말씀입니다.

결론)

오늘날 우리는 너무도 불편하고 힘들고 어려움을 피할 수 없는 상황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이 세대가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공경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대는 쾌락과 정욕을 하나님 삼으며 과학과 의학을 하나님 삼고 있습니다. 재물과 권력을 하나님 삼고 있습니다. 이 세대가 더욱 찾아야 할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지난 주간의 삶은 어땠습니까? 과연 나의 삶이 하나님을 부르고 공경하고 사랑하고 예배하고 섬기고 순종하는 삶이셨습니까? 오늘 말씀에 나의 삶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만이 참된 구원이십니다. 우리 예수님 만이 참된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하나님을 회복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십니다. 광야 같고 사막 같은 우리의 심령에 시원한 깊고 넓은 생수의 강물이 흐르고 크고 편한 축복의 대로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허물을 제거(도말Painting)하시고 우리의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이 이 나라가 세상의 비방거리가 되지 않고 언제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나라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굳게 믿고 우리 모두 하나님께 기쁨으로 충성을 다하는 신실한 백성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111020안익선 모사/ 참조: 이수영 목사

(마치는 찬송:440 멀리 멀리 갔더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