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엘세바의 교훈 (창 26:21~25)
21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3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서론)
오늘 본문말씀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족장 중 이삭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습 니다. 이삭이 그랄 땅에 거하며 농사를 지어 하나님으로부터 한 해 백배나 되는 축복을 받자
그랄 사람들이 시기하고 질투를 하게 됩니다. 그랄 땅은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는 가자지구와 남쪽과 지중해 가까이에 있는 가나안의 남쪽 경계선의 서남쪽에 위치한 도시이며( 창10: 19 ) 아브라함 과 이삭 이 기근을 피하여 머물렀던 장소로 유명합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추정되는 그랄 사람들은 이삭이 파 놓은 우물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텃세하 며 빼앗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들과 대치하거나 싸우지 않습니다. 이삭은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자기의 식솔들과 가축들을 위해 우물을 계속 파야만 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우물 파기 전엔 조용하던 사람들이 우물만 파서 물만 나오면 거기는 원래 우리 땅이라면서 우물을 빼앗았습니다. 그러기를 네 번이나 하였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그와 동행하시고 축복하셔서 계속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결국 이삭은 일곱 째 우물을 다시 파고 물을 얻었고 가나안 땅 최남단에 위치한 브엘세바에서 마침내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영광을 돌리는 신실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오늘은 고난 중에도 온유함과 인내심을 잃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며 계속 우물을 파서 마침내는 축복의 주인공이 된 이삭이 주는 교훈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본론)
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은 쏟아진다.
오늘 본문26:1절 이하에서 이삭은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어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땅이라 함은 ‘그랄 땅’을 말합니다. 가나안 전 지역에 흉년이 들었으나 그랄 땅 만은 예외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랄은 지중해가 가까운 지라 아마 이슬이 풍성히 내렸을 수도 있었을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26장 초반에서 하나님이 이삭에게 거주할 땅을 알려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식이 그 그랄 땅으로 갔다 했습니다.
가나안 전 지역에 흉년이 들었던 해! 아무도 농사지을 엄두도 못 낸 그 해에 이삭은 농사해서 대풍을 맞았고 추수하여 그 소득이 100배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그만 설교를 해도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설교 초반이예요. ㅎㅎ. 그리고 다른 교훈들도 있기에 설교를 조금 더 해야 되겠습니다. 일단 우린 무슨 생각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 말씀 잘 들으니 복이 왔구나…그리고 100배를 얻었구나 ! 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한국 속담에 “어른 말씀 잘 들으면 자다 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른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거죠. 하물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이삭이 왜 복을 못 받겠어요?
하나님께서 내게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면, 그리고 순종하면 흉년은 결코 복의 장애물이 아닙니다.
흉년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코로나도 마찬가집니다. 코로나 시대에도 복을 받을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본문 13절에서 이삭이 마침내 거부(Millionaire)가 되었다고 했습니다.이삭이 큰 부자가 된 사실 속에 눈 여겨 볼 교훈이 있습니다.
약속의 복이라 해도 하나님이 그냥 주시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때가 되야 한다는 말입니다.
13.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고 했어요.
13절에 ‘마침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마침내…’라는 말은 그냥이 아니라, 쉽게가 아니라 대가를 치루고 또 시간이 되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삭도 많은 어려움들을 겪었습니다.
믿음이 사람 이삭은 사실 그런 고생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왜 하나님은 이삭이 숱한 고생하게 하셨을까요? 훈련과 교훈을 통해 그의 믿음이 온전케 되게 하시려 함이었습니다.
욥기에도 그런 말씀이 나오지 않아요? 욥기 23:10 에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라고 했지요? 여러분! 주의해서 보세요.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이라고 했어요. 성경에는 순수한 금인 정금은 일곱 번 단련해야만 한다 했어요. 그래야만 금 속에 있는 온갖 불순물들이 사라지고 찬란한 빛이 나는 거거든요.
이삭은 흉년에도 우물을 파면 물이 콸콸 나왔지만 그것들을 빼앗기고 또 빼앗기기를 네 번이나 했다고 했지요? 미쳐 버릴 것 같은 상황이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마침내 이삭을 거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IBM의 창설자인 톰 왓슨이 회장으로 있을 때, 한 간부가 위험부담이 큰 사업을 벌였다가 1천만 달러(1,100억 원 정도)가 넘는 엄청난 손실을 냈습니다. 왓슨에게 불려 들어간 책임자 간부가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왓슨에게 물었습니다. `”물론 저의 사표를 원하시겠죠?`”
그러자 왓슨이 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지금 농담하는 건가? IBM은 자네의 교육비로 무려 1천만 달러를 투자했단 말일세.”라고 하며 그를 회사에서 내 좇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실 실패도 자산입니다. 그리고 큰 실패는 큰 자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수나, 실패를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엄청나게 비싼 교육비를 낸 거니까요. 어느 누구도 실패 없이 성공하지 못합니다. 실패가 없으면 성공도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우는 것을 보세요.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계속 일어나면서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랄 땅에 온 이삭도 여러 번 실패했습니다. 그랄 사람들이 자기 아내를 빼앗고, 자기를 죽일 것 같은 공포에 수없이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를 당당하게 아내라고도 소개하지 못하고 누이라고 소개하다 들통이 나서 창피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신뢰하였기에 그의 인간적인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삭에게 복을 내리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되고 자녀 된 우리를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그런 신뢰가 있으시기에 우리는 잘못했어도 용서를 받을 수 있고, 부족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고, 마침내 더욱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패 속에서 우리에게 엄청난 시간과 교육비를 투자하고 계심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나)세상은 원래 좌절을 준다
이삭이 그랄 땅에서 그것도 흉년에 거부가 되니 그 땅 사람들이 시기하며 우물물을 흙으로 다시 막고는 여기서 떠나라고 합니다. (14-16절)
이것을 영적으로 보면 우리에게는 부자 되는 것이나 시기심이나 우물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문제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하나님 은혜를 시기합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Alexander Pushkin)이란 러시아의 문학가는 이런 유명한 시를 지었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 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이하 생략)>-고 했습니다
성도들을 시기하는 세상, 절망을 주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잘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도 옵니다. 참고 견디면 마침내 거두고 추수합니다.
다)믿음의 우물을 다시 또 파라
본문 16-18절=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다시 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영국의 <로이드 존스> 목사의 ‘부흥’이라는 책에 보면, 이삭이 블레셋 사람들이 메운 아브라함의 우물을 다시 파는 사건을 바로 하나님의 부흥을 나타내는 회개의 첫 작업으로 비유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과학과 문명이 발달되어도 근원적인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먹고 마시는 문제, 그리고 결혼하여 가정을 가지고 자식을 낳거나 사랑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문제들입니다.
이런 일들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가도 변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삭이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다시 팠다는 말은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변함없이, 그리고 늘 다시 새롭게 받아야 산다는 점에서는 언제나 동일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시원하고 달콤한 생수가 솟아나기 위해서는 혹 마귀가 메꾸어 놓은 온갖 잡동사니 들을 또 다시 파 내어 버려야만 합니다.
* 여러분, 어떻습니까? 나의 오늘날의 삶은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내 마음에 충만하여 생수가 강같이 흘러나오는 신앙의 삶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온갖 세상 잡동사니로 메꾸어 져 깡말라 버린 채로 있습니까?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와 생수를 맛보려면 우리 마음에 잡동사니를 걷어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마침내! 내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의 생수가 솟아날 줄 믿습니다. 이제 이삭의 종들이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19-20절)
이삭이 포기하지 않았더니….그 후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1) ‘르호봇의 복’을 주십니다. 더 번성케 되는 복입니다. 22절=「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했습니다. 르호봇이 다섯 번째 우물이요 마침내 이웃과 화목하게 된 우물입니다.
2) 그리고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게 됩니다. 나중에 블레셋의 왕인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하는 말이
28절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29절[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고 합니다. 원수도 축복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의 핵심은 이삭이 거부가 되었다는 것도 아니요 우물을 양보하였더니 더 좋은 우물물을 얻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의 결론 혹은 오늘 말씀의 핵심은 “이삭이 브엘세바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브엘세바 (Beersheba) 의 뜻은 ‘ 일곱 번째 우물 ’ 또는 ‘ 서약의 우물 ’ 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지형적으로 말하면 ‘브엘세바’는 그랄보다 고도는 낮은 지역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로 제단을 의미하는 말씀이요, 신앙의 회복과 성숙을 의미합니다.
일찍이 브엘세바는 이삭이 어릴 때 아버지 아브라함이 창21:33절에 [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그늘이 많은 나무, 건조해도 잘 자라고 10미터 정도 키로 자람)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온전한 만남과 사귐을 삶을 의미합니다.
24절엔=그 밤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셨다 했습니다. 24절 [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어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십니다. 그리고 25절=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고 했습니다.
결국 인생의 최고의 축복, 최고의 삶이 뭐라고 할 수 있습니까? 백배의 부도 우물도 가축도 그 무엇도 아닙니다. 역시 최고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그분께 기도하고 그분과 사귀고 그분께 영광 돌리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삶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모두 ‘브엘세바’로 올라 가는 은혜 가운데 살아 가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011921 안익선 목사/ 참조: 김성덕 & 장곡
'설교모음(Korean sermon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생각, 사람의 생각(창 16:1-6) (0) | 2021.02.28 |
---|---|
쓴 물을 달게 하라 (출애굽기 15:22~26) (0) | 2021.02.28 |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사 40 : 27-31) (0) | 2021.01.27 |
행복의 3대 장애물(요한복음 15: 7-11) (0) | 2021.01.08 |
충성된 종입니까? (마24:44-51) (0) | 2021.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