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생각, 사람의 생각(창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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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
서론) 누군가가 “믿음의 조상이 누굴까요?” 라고 질문하면, ‘아브라함’이라고 하면 정답입니다. 오늘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는 아브라함이 둘째 부인?을 얻은 사건에 관련하여 중요한 교훈을 얻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저주받은 인류를 위해 구원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라고 보아야 합니다. 80세 즈음 된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2)고 하십니다.
본론)
가)사람의 생각
그런데 아브라함이 90살이 다 되도록 큰 민족은 커녕 아들 하나 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3장에서 하나님은 다시 한번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해 주십니다.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셀 수 있을 진 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 13;16) 그러나 세월은 자꾸 흘렀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다.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다>(창 15;2-3)
곧 양자 엘리에셀이 유업을 받을 것이 현실적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한 밤중에 밖으로 부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얼마 후면 100살 가량 되어 가도 아직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약속만 바라보는 남편 아브라함에게 아내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라의 종 하갈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습니다. ‘이스마엘’입니다. 오늘날의 아랍 족속의 조상이지요. 그런데 여종 하갈은 잉태하자 얼마 안되어 여주인 사라를 무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하갈을 내 좇아야 되겠다고…그래야 집 안이 편하겠다고 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사라의 의견을 존중하여 하갈을 사라의 처분에 맡깁니다. 그러자 사라는 하갈을 학대하였습니다. 하갈이 그 학대에 못 이겨 집에서 도망을 나가고 맙니다.
하갈이 낳은 아들이 아랍인들의 조상이 됩니다. 지금까지도 아랍인들은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이되었습니다. 미움이 미움을 낳았습니다. 죽고 죽이는 역사가 반복됩니다.
아랍인들이 지배하는 중동국가들은 세계적 화약고가 되어 툭하면 전쟁을 일 삼고 이스라엘을 공격해 댑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본처 사라에게서 난 아들 이삭의 후손들과의 싸움입니다. 사라와 아브라함의 한번의 인간적 선택이 온 세상을 4,0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온 세상을 위협하고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2. 몇 년 전 어느 가전 제품 회사의 표어가 있었습니다. <한번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라고요.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의 한번 선택은 4,000여년을 좌우하였고, 앞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정말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3. 아브라함과 사라의 선택은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사라는 하나님이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으리라 하셨는데…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라가 90세가 다 되었을 때 이삭을 낳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영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갖으려던 사라의 생각은 4000년 불행의 원인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영원히 믿어야 합니다. 더 기다려야 합니다. 더 참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고 했습니다.
4. 슈바이쳐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연극을 하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러나 연극부에서는 슈바이쳐에게 주연도 조연도 시켜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슈바이쳐는 관중석에 앉아서 연극하는 친구들을 응원하였습니다.
슈바이쳐의 어머니는 연극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리고 슈바이쳐가 연극부에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슈바이쳐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아, 너는 무슨 역할을 맡았니?> 슈바이쳐가 대답하였습니다. <어머니! 저는 박수치고 응원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래. 가장 좋은 역할을 맡았구나! 그게 제일 좋은 역할이란다.> 어머니가 훌륭하셨습니다. 후에 슈바이쳐는 연극 배우가 되지 않고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 복음화에 큰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슈바이쳐 생각은 연극 배우였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연극배우가 아니라 의료 선교사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에 맞추어 살아야 합니다.
나)하나님의 생각
1. 아브라함과 사라의 방법이 하나님의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 늙었어도 아들을 주시는 기적의 방법을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제 틀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늙었고 사라는 이제 늙은 할머니가 되었으니 아이낳기는 불가능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여종 하갈을 데리고 살면서 아들을 낳는 방법을 생각하였습니다. 당시 법은 종의 소유는 주인의 소유였습니다. 종이 아들을 낳으면 주인 소유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런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2.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며 요단강까지 왔습니다. 이제 요단강만 건너면 그렇게 기다리던 가나안 땅입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널 것이 막연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갖가지 방법을 다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다리를 놓을까? 배를 만들까?
뗏목을 만들꺼나? 등등.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요단강을 홍해를 가르셨듯이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은 최고의 놀라운 방법을 주십니다.
3. 어느 아버지가 5남매를 잘 길렀습니다. 어려운 살림에 대학까지 공부시켜서 모두 결혼시키느라고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결혼까지 한 자녀들을 불러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아들, 며느리 그리고 딸, 사위들아! 내가 사업하다가 빗을 졌다. 빚이 모두 7억원(70만불)이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만큼 나누어서 갚아다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나머지는 내가 재산을 정리하도록 하마.>
그리고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 주며 자녀들이 얼마씩 돈을 내놓을 것인지 적어내라 하였습니다. 모두가 얼굴만 쳐다보더니 셋째 아들이 1억원이라고 적었습니다. 큰 아들이 3천만원이라고 적었습니다. 2천만원 두 명, 천만원 한 명이었습니다.
<고맙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버지는 다시 5남매를 또 다시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내 재산을 분배하려 한다. 너희들이 적은 수를 보고 재산을 정리하여 보니 10배씩은 나누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곤 그들이 종이에 적은 돈 액수의 10배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버지 생각은 자녀들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다)사람의 감정
1. 하갈이 잉태하자 사라를 무시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진노했습니다.
사라는 하갈을 그냥 둘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본처인 아내 사라에게 마음대로 하라고 했었습니다.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고요.
사라는 옳다구나 하고 하갈을 학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갈이 견디다 못해 도망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세계적 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의 감정으로 마구 행동한 결과입니다.
사라는 임신한 하갈을 용서하고 아량을 베풀어야 했습니다. 속이 상해도 하갈을 품어야 했습니다. 인내해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오늘 날 중동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라)하나님의 감정
1.하나님의 감정은 사랑이요 포용이십니다. 우리는 종종 원수 갚는 일을 시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다른 방법으로 원수를 갚으라 하십니다. 롬12:17~21절 입니다.
17.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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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은 부지런히! 최대한 받은 것 이상으로! 복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감정은 용서하고 관용하고 오히려 축복하는 것입니다. 원수가 그 축복을 받을 만하지 못하면 그 축복이 여러분에게 되돌아올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이십니까? 그러시다면 복수하는 일은 최대한 게으르십시오, 소홀하십시오. 오히려 원수를 축복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감정이 되는 것입니다. |
2. 많은 이들은 자기 감정을 하나님의 감정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기 감정대로 행동하였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엄청나게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감정은 용서요 사랑이었습니다.
결론)
아브라함과 사라의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온 인류를 4,000여년 동안 온 세상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문제들도 상당 부분이 내 생각, 내 감정의 잘못인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이들은 율법으로 구원받는 다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착한 일로, 어떤 이들은 많은 수고나 고행으로…구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생각은 다릅니다. 그 아들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해 주십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믿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용서해 주기를 기뻐하십니다. 구원해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요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생각이십니다. 기도하십시다.
020921 안익선 목사/ 참조:강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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