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의 건강을 위하여 (잠 4:23~27)
24.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25.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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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27.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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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1960년에는 52.4세였고, 1970년에는 63.2세였는데, 근래의 2007년도에 발표한 자료에 보면, 남자가 76세이고 여자가 82세로서 전 세계 193개국 중에서 29위의 긴 수명 유지 국가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불과 수십 년 사이에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몰라보게 늘어난 것은 그 동안 공중위생과 의약의 발달로 인해서 전염병으로 죽는 경우가 드물고, 질병에 걸려도 병원에 가서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요즘은 의학의 발달로 인해 120세까지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60세 가 넘어도 “아직 젊으시네요” 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당황스러운 사실은, 사람들이 육체의 건강에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면서도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마음속에 온갖 탐욕과 증오와 망상이 가득해서 마음이 크게 병들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음이 병들면 거기서 나오는 생각이 병들고, 육체도 병들기 쉽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우리의 생활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만족이 없으니 감사가 없고 사람들은 점점 더 이기적이 되어 갑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고 참을 줄을 모르고 조급하고 사납습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오늘은 마음의 건강과 평강을 지키는 일의 중요함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본론)
가)마음이 건강해야 참 행복을 누리게 된다
마음(혹은 심령)이 병들면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혹 120살을 살아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마음이 건강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잠언 4장 23절에 이르기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건강한 마음이 곧 생명과 건강의 근원입니다.
나)건강한 마음의 조건
1.첫 번째로, 우리 심령(마음)이 생명의 근원이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병든 마음이 치료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하고 쾌활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내면적으로는 상처입고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으나 속으로는 울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과거로부터 받아온 상처를 치료받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가 아물지 않아 아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심령의 상처는 대부분 잘못된 인간관계에서 받은 것이거나 불행했던 과거와 좌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목회상담이나 심리상담을 통해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문제를 내 놓아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료하려면 영혼의 문제를 먼저 해결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맺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나 자신이 진정한 용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증오하던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고, 그 사람들도 상처가 있었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룰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치료해 주시고 생명력이 넘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예수가 지고 죽으신 십자가에 하나님 사랑이 스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하고나 화목하시지 아니하시고 오직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더불어 화목하시기로 수천년 전부터 성경을 통해 약속하셨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골로새서 1장 19절 이하에 이같이 말씀합니다.
“19)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신 것은 순전히 하나님과 우리의 화목을 이루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도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이해하기만 하면 즉시로 우리 마음(심령)이 치료 받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우리 마음이 건강해지면 대인관계에서 상처를 받아도 자가 치유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금방 상처가 아물게 됩니다.
2. 그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는 타인에게서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부족함과 실수 때문에 받기도 합니다. 어렸을 적에 저지른 실수가 일평생 치명적인 상처가 되어 고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그 같은 실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 용납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부족함과 실수를 하나님께서 용납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졸라 자기 몫의 유산을 받아,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며 다 탕진했습니다. 빈털터리가 되고 나자 공교롭게도 그 나라에 큰 기근이 들었습니다. 어느 농장주인에게 간청하여 들에서 돼지 치는 사람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그러나 보수가 너무 적었는지…. 돼지나 먹는 쥐엄 열매라는 것으로 배를 채워야만 했습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나마 굶어 죽을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제야 이 아들은 떠나온 아버지 집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
둘째 아들은 지은 죄가 너무 커서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말할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굶어죽지 않으려면 돌아가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던 아버지는 아직도 거리가 먼데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 같은 아버지의 행동은 이미 그 아들을 다 이해하고 사랑하고 용납했음을 보여줍니다.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였으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기를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이 아버지의 사랑이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러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심령의 상처를 치료 받아 생명의 근원을 회복하게 됩니다.
다)세 번째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잠언 16장 32절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전장에 나가서 죽기를 무릅쓰고 용감히 싸우는 용사가 되기가 참고 자기 마음을 절제하는 것보다 쉽다는 말입니다 .
마케도냐의 알렉산더 대왕은 수많은 나라들과 성들을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데는 실패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의 휘하에 클레토스라고 하는 장군이 있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알렉산더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하루는 연회석상에서 술에 취한 클레토스가 알렉산더를 모욕하는 말을 했습니다. 순간 화를 참지 못한 알렉산더가 그의 친구에게 창을 던졌습니다.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친구는 가슴에 창이 꽂혀 죽고 맙니다. 그 일로 인해 괴로워한 나머지 알렉산더는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힘겨워했다고 합니다. 그는 수많은 성과 나라를 정복했지만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가정에서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기를 원하면서도 때로 상대방의 비위를 거슬리는 언행을 해서 다툽니다. 한번 못 본 척하고 넘어가면 될 일도 가시 돋힌 말을 하고 상대방을 모욕하는 말을 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이 역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데 원인이 있습니다. 폭행이나 살인죄를 범한 사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그런 불행한 결과가 생긴 것입니다.(예:참을 인자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던 성군입니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서 다윗처럼 신앙심이 깊고 신실한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러한 그가 어느 날 저녁때에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우연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여기까지는 다윗에게 잘못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고의로 목욕하는 여인을 엿본 것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다윗은 그 광경을 본 순간 그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에 절제하는 심령(마음)을 잃었습니다. 그 여인과 동침케 되고 그 남편을 사지에 몰아넣어 전쟁터에서 죽게 합니다. 다윗 왕가 피비린내가 그치지 않는 벌을 받았습니다.
라)네 번째로, 우리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려면 주 안에서 믿음, 소망, 사랑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우리 심령을 건강하게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마음 문에 파수꾼을 세워야 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우리 마음 문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믿음이 우리 마음의 문을 지킬 때 의심과 불신앙의 생각이 감히 넘보지 못합니다. 소망이 우리 마음의 문을 지키면 낙심과 좌절과 같은 생각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사랑이 우리 마음의 문을 지키면 미움과 시기와 같은 생각이 침투하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귀에 들리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더라도 우리 마음속에 믿음이 충만하면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했습니다.
또 현실이 아무리 암담할지라도 우리는 내일을 꿈꾸면서 소망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심령에 사랑이 깃들 때, 우리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나 국가가 인정과 용서와 행복이 넘치는 장소가 됩니다. 그런 곳에는 죄가 들어 오지 못합니다. 고로 성령 충만을 구하고 성령 안에서 늘 간절히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하신 대로, 온 힘을 다해서, 부지런히 생명의 근원인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병든 마음을 치료받고,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마음을 다스리며, 주 안에서 믿음, 소망, 사랑의 생각으로 우리의 심령을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도님들의 생각마다 말마다 행동마다, 시원한 치료의 생수가 끊임없이 솟구치는 샘물의 근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42021 안익선 목사/ 참조: Godpeop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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