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하나님의 시간표와 인생(본문: 행 7:29-36)

호걸영웅 2021. 7. 21. 23:33

하나님의 시간표와 인생(본문: 행 7:29-36)

29.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30.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1.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3.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5.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1.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 홍해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서론)

7장에 보면 집사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기 직전에 했던 복음전도를 위한 설교가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전도를 위한 변증이라고도 할 있습니다. 그러나 살기 등등한 박해의 무리들에 둘러 싸인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그 증거의 말씀은 온 힘과 생명을 다해 전했던 하나님의 뜻의 전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스데반 설교 중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증거가 나오는데, 그 부분을 통해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있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 잠시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본론)

)모세의 인생의 3부분

1.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120세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 사용한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40년 단위로 세 부분으로 명확히 나누어집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완전함’ ‘완벽’의 의미를 갖고 있는 숫자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40이라는 숫자는 많이 등장합니다.

창세기7:12절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이 땅에 비가 40일 동안 내렸습니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40일간 금식하며 율법을 받습니다. ( 24:18)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았습니다. ( 8:2-5) 이스라엘의 초대 왕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 모두 40년간 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이 무서워 도망갔고 40일 동안 호렙 산에서 기다리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왕상 19:8)

신약 성경에도 보면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 마귀의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 4:2)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신 후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지상에 계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제자들을 준비시킨 후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40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이 정하신 완전한 숫자이며,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포함된 숫자라 볼 수 있습니다. 그 의미는 ‘고난’, ‘훈련’ ‘준비’의 시간이라는

의미입니다.

 

2. “때”와 “시간” 을 의미하는 헬라어에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라고 했습니다. ‘크로노스’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인지하는 물리적인 시간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카이로스’는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택정함을 받고 구원 받게 된 날, 그날은 다른 날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의미있는 날,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배우자를 만나 한 가정을 이루게 된 날도 또한 우리 모두에게는 ‘카이로스’의 시간이라 할 수 있겠지요. 천생연분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삶도, 인류 역사도 하나님의 시간표 가운데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우연히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습니다.

‘카이로스’의 시간표 가운데 살았던 한 사람, 자신의 의지보다 하나님의 섭리와 강권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았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모세입니다.

 

 그의 인생, 120년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고 했습니다. 40년은 애굽의 궁전에서 왕자로서의 생애였고, 두번째 40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피신자와 목자로서의 40년이었고, 마지막 40년은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부터 인도하여 낸 후, 험난한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으로 이끈 백성의 지도자로서의 40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모세의 40년으로 나누어진 인생의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출생과 성장 (애굽 왕자로서의 삶) (7:17-22) 미디안 광야에서의 훈련 (목자로서의 삶) (7:23-29)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순종함 (영적 지도자로서의 삶) (7:30-36)입니다.

 

) 출생과 성장 (애굽 왕자로서의 삶) (7:17-22)
스데반은 그의 최후의 설교에서 이스라엘의 조상들 3명을 언급하고 있는데, 아브라함과 요셉 모세 입니다. 그 중에서 모세에 대해서 길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고발한 죄목 중 하나가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고 한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의 생애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의 참 정신이 무엇인지를 설명함을 통해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7절에 언급한 것과 같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한지 400년이 되었을 때, 곧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이 되었을 때 한 사람을 준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때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인데, ( 15:13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라는 에언이 다 이루어 지려 할 때입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 암울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강성하여지자 애굽의 왕 바로가 위협을 느끼고 산파를 시켜서 히브리 남자 아이는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매우 고된 노동을 시켰습니다. 부당한 명령들을 계속 내렸습니다. 감시와 감독이 심해졌습니다.

20그 때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산파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곤 모세가 죽임을 면하게 되었고,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띄워 보내졌지만 새로운 보호자 애굽의 공주를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왕자로서의 삶을 살며 유모에겐 히브리 신앙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의 생에 속에 초창기부터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산파가 아니었더라면, 애굽 공주가 조금만 늦게 강에 나와 강물위를 떠가는 갈대 상자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설령 히브리 아이를 보고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지 않았더라면 모세는 나일 강의 악어 밥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왕자로서 40년을 살며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애굽은 세계의 최강대국으로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뛰어난 민족 국가였습 니다.

1세기에 활동한 유대의 철학자요 역사학자인 필로(Philo)는 그의 책에서 모세는 애굽뿐 아니라 멀리 그리스의 최고 학자들로 부터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훗날 애굽에서 4백년 이상 노예 생활에 찌들은 2백만명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이끄는 지도자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모세 오경(토라)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한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모세를 준비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있는 인생에게는 우연이란 없고, 낭비되는 불필요한 시간은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 의미 없는 것 같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시간의 연속일 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서 역사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미디안 광야에서의 훈련 (목자로서의 삶) (7:23-29)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살고 있었던 모세는 하나님의 때가 되어, 그의 “나이 사십이 되었을 때 그의 형제(동족) 이스라엘을 돌볼 생각이 났다” (7:23)고 했습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왕자로서 부족함 없이 살았지만 그의 마음 속 한편에는 노예로 고통받고 있는 동족 이스라엘의 형편에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그의 마음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동족을 향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해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습니다. 오히려 애굽의 감독관을 쳐 죽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조차도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화해시키려 하였을 때, 이스라엘 사람 중 한 사람이 모세더러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7:27-28)고 비난하였습니다. 낙심과 두려움으로 모세는 애굽에서 떠나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나그네로 40년의 삶을 살게 됩니다. 롤러 코스터 같은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디안 광야는 모세에게는 그러한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배하신 특별한 연단과 훈련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인생 80을 맞았을 때, 그의 육체는 점점 약해 지고 얼굴에 주름은 늘어나고 미래의 꿈과 비전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모세가 서 있었습니다.

 

광야에서의 40년은 모세에게 있어서 ‘자신의 힘을 빼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세상 최고의 학문과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음을 온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무섭게 내리치는 천둥 번개를 보며, 사나운 맹수와 맞닥드리며, 그는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의 무릎에서 듣고 배웠던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경험하였습니다. 애굽의 왕자였던 모세는 하나님께서 다듬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로 변화되고 있었습니다.

 

질문! 그러면 언제 하나님은 우리를 쓰실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내 힘을 의지하는 능력이 다 쇠잔했을 때입니다. 나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힘이 얼마나 하찮는지 실감했을 때입니다. 단련과 훈련을 다 마쳤을 때입니다.

그래서 욥도 고백하기를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 23:10)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서의 삶 (7:30-36)
연단의 시간이 끝나자 본문 30 (“사십년이 차매”)= 천사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시내산 광야 가시 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무서워 떠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7:33) 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발의 신을 벗으라”고 하셨을까요? 신발은 죄의 상징이요 더러움의 상징이요 육욕의 상징입니다. 모세가 선 곳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땅이었습니다. 고로 신발을 벗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벗지 아니하고 탐욕을 버리지 아니하고 나를 의지하는 동안엔 하나님의 일이 우리 안에서 시작될 수 없습니다.

결국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게” (7:36) 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신발을 벗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구원의 시간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론)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요 일꾼들이 맞으십니까? 그렇다면 모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모두가 다 하나님의 시간표안에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생애를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연단 받는 시간들, 세상의 지식이나 지혜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시간들, 부름 받고 구원받고 죄에서 해방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직분을 받은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 붙들려 위대하게 쓰임 받는 시간들입니다. 내 힘 되는대로 내 능력 되는대로 쓰임 받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이 핑계 대고 저 핑계 대며 쓰임 받기를 거부하고 죄와 과거의 신발을 벗기를 거부해선 아니 됩니다.  

혹 우리 중엔 아직도 고난과 연단이 계속되는 분들이 계십니다. 모세는 80까지도 고난과 연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연세가 몇이십니까? 아직 모세만은 못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모세보다는 젊으십니다. 고로 불평하지 마십시다. 좀 더 잘 인내하십시다.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하십시다. 결승선이 멀지 않습니다. 더욱 기도하며 힘을 내시길 바랍니다. 사명 잘 감당하십시다.

저와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하나님의 시간표 카이로스 안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나시기를 우리 주 예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071321 안익선 목사/ 참고: 웨인즈빌 한인 침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