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는 능력이다(고전4:16~20)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서론)
사도 바울이 그리스에 있는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후, 18개월의 사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상당한 성장을 이루어 독립적인 중견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 강해지는 고린도의 유대인들의 핍박에 의해, 바울이 에베소로 떠난 얼마 후, 고린도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왠지‘교만한’ 사람들로 변해 있었습니다. 바울이 사라지자 무서운 사람이 없어진 상황이 된 듯, 그들은 4개의 파당을 이루고 서로 다투고 시기 질투하는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단단히 실망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말하기를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다”고 꾸중을 하게 됩니다. (야, 너네 정말 간이 부었구나! 다시는 내가 너희들에게 전혀 힘을 못 쓸 걸로 생각하는구나? 정말 내가 고린도 교회를 찾아 가서 꼭 벌을 줘야 되겠니? 라는 의미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고전4:18-19)’라고 했습니다. 곧 “너희가 말은 많고 시끄러운데 정말 성령의 능력이 있고 하나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어서 그러는거냐?” 라고 따져 묻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기독교를 “논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충격이나 자극을 주는 기독교에 관한 책들이 잇달아 나오고 또 이런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더 잘 팔립니다. 즉 원리보다는 테크닉, 노하우에 집중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런 노하우나 테크닉에 있다고 착각하게 합니다. 은사운동도 그렇고 제자훈련 같은 유행도 다 유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다”라는 착각이 곧 고린도 교회의 문제이자 우리 시대의 교회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본론)
가)기독교의 메시지는 능력이었다.
어떤 경우, 교회 일에 매우 열심인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늘 신앙고백에 동의하며, 주일마 다 신앙고백을 암송합니다.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새벽기도까지 빠짐없이 성실히 참여하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삶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를“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 이라고 바울은 말씀하십니다(딤후3:5). 끔찍하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죠. 이들은 “말로” 기 독교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삶과 동떨어져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사 람들을 다스리며, 사람들에게 능력을 줘야 합니다. 물론 말이 꼭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 전부가 아니어야 합니다. 능력과 증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고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삶은 어떠합니 까?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족이나 동료 교인들 은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합니까?”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시대 말기와 20세기 초에, 교회 안에는 “말”이 참 많았다고 합니다. 많은 이야기와 설교가 있었고, 많은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능력이 있었는가? 없었다! 고 합니다. 정작 기독교를 실천하거나 삶으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거예요. 주일에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주중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Sunday warrior). 오늘날도 그런 경우가 많죠.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가 무엇보다도 능력이라고 말씀 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교회들의 메시지는 이 세상에 들어온 가장 큰 능력의 선포이며 역사입니다. 세계 역사상 기독교의 메시지만큼 개개인의 삶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의 중심이시자 역사의 지배자이십니다. 그래서 역사를 그의 이야기라고 합니다(His+Story). 금년을 2021년이라 함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한 것이 죠. Sunday도 예수의 부활을 기념한 날입니다. 예수 덕분에 일주일에 하루를 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힘든 노동자들에게도 참 감사한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파멸의 시대에 우뚝 솟은 탑”이 됩니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대 로마제국을 바꿔 놓았으며 온 유럽과 영국과 미국을 바꾸어 놓았으며 한국(South Korea)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 위대한 역사가 중 ‘레키’라는 분은 “ 프랑스가 프랑스 혁명 때 겪은 것을 영국이 겪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18세기의 복음주의 부흥 운동, 감리교 부흥 운동 때문이었다”고 주저 없이 말했 죠. 부흥 운동은 사람들에게 교육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학교와 주일학교를 낳았고, 병원과 의료복지, 그리고 빈민구제의 개혁을 낳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신 결과요 기독교는 능력입니다.
기독교는 일으켜 세우며, 자유하게 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기독교는 세상을 일깨우는 가장 큰
힘입니다. 기독교는 마을의 술집을 온통 텅 비어 버리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노스 웨일스에서
박람회가 여러 날 동안 계속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박람회는 유흥과 술과 폭력과 싸움과 악으로 악명 높은 박람회였죠. 그런데 ‘존 엘리아스’라는 사람이 거기서 설교를 하자 이런 일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깡패가 변해 목사가 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능력이요, 이것이 기독교여야 합니다.
나)둘째, 기독교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이다.
여기에 핵심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일차적으로 우리가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먼저 행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행동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십시오. 여기서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함께 기도할 때에, 그때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며 불이 혀같이 가라진 모양으로 제자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모두 성령과 능력이 충만해져 각기 다른 외국어로, 전혀 배우 적 없는 방언으로 예수를 증거하며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자신들이 한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하신 일을 증거했다는 것입니다. 고로 기독교는 우리의 위대하 고 놀라운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나온 것입니다. 고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롬1:16)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하기 보다는 기독교가 여러분을 사로잡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강한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하고,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행하시고, 여러분을 과거의 자리에서 새로운 자리로 옮겨 가도록 도와 주십니다. 고로 기독교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과 행동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에게 오셔서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시인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들을 사탄의 나라에서 구해 내어 그분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선 출애굽 사건을 통해 구원의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강력한 바로의 힘과 통치 아래서 완전히 노예로 살고 있었죠.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을 이러한 상황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광야생활 40년 간 내내의 생활이 처음부터 끝가지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여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산상 설교를 마치신 후,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말했습니다(마7:28-29).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능력을 느꼈습니다. (요7:46)에 보면 사람들이 놀라워 말하기를,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바로 예수를 잡으러 갔다가 그냥 돌아온 대제사장의 부하들의 말이었습니다.
동일한 능력이 그분의 기적에서도 나타납니다. (눅11:15,20)= “이처럼 놀라운 권세와 능력을 가진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내가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분의 능력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입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롬1:4)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셨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 주시기 까지 했습니다. 할렐루야!
오순절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감동되어 설교를 했을 때, 사람들은 마음이 찔려 외쳤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2:37) 하며 그날에만 삼 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2000여년 전의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까? 대답은 하나뿐입니다. 성령의 도우시는 능력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게 해 주십니다 — 곧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능히 모든 핍박과 시련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롬8:37).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 죽음 앞에서도 미소 지을 수 있게 합니다(네로의 박해 때 순교한 성도들의 얼굴의 미소가 그 증거이다)
결론)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우리가 스스로에게 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의 삶은 어떤가? 나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는가?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내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분명히 보고 있는가? 내 삶이 하나님이 능력을 보여주는가? 다른 사람들이 내 삶을 보면서 영향을 받는가? 나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가?”예수께서 여러분을 새롭게 하셨는가? 여러분 자신 속에 새로운 본성(사랑, 희락,화평)이 있는가? 없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여러분이 무엇을 알든 무엇에 관심이 있든 간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 밖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난, 위로부터 난, 거듭난, “말이 아니라 능력으로” 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것을 느끼지 못하고 알고 있지 못하다면 이렇게 고백하고 외치셔야 합니다. “하나님, 아직도 저는 지옥 가 마땅한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제게 믿음 주옵소서, 제게 성령을 주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간절히 부르짖으신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사망과 죄의 무덤에서 건져 내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080321 안익선 목사 / 참조: 로이드 존스 ,청교도 아카데미 & 강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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