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고린도전서 9장 강해(사도의 권리와 포기)

호걸영웅 2021. 7. 21. 23:43
고린도전서 9장 강해(사도의 권리와 포기)

서론)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는 사도라 할 수 없었겠지만 고린도교회에게는 그가 참된 사도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고린도 교회를 개척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전파에 혹시 폐가 될까 봐서 그들에게 자신을 부양하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복음사역자들에게는 적어도 4가지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이 부르신 그날의 승리의 면류관을 위해 그날도 자기의 몸을 쳐 복종시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왜 그리 하였을까요?

   고린도전서 9장은 고린도전서 7~15장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본문으로서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제기한 각종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변 중의 하나입니다.

본론)

 ) 바울이 사도로서 갖고 있는 권리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리 즉 사도나 복음 전파자로서의 권리가 어떤 것인지를 먼저 언급합니다(고전9:1~14). 이때 바울은 자유인이었고 사도였으며, 예수님을 본 자였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는 자신의 사도로 인침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는 자신이 사도로 파송 받아 세운 열매 중 하나였기 때문이죠(고전9:1~2).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말하여 자신의 생계비와 선교비를 부담해주도록 부탁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때까지 남아있던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 그리고 게바(베드로)와 같은 복음사역자들은 그들이 선교사역을 감당할 때에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다니고 있었고 또한 그것에 대한 부양을 교회에게 부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복음전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렇지 하지 않았다 했습니다. 또한 그는 바나바와 함께 1차전도여행을 할 때에도 바나바와 함께 일을 하면서 자기의 경비를 충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 자신에게는 아래와 같은 4가지를 근거를 통하여, 고린도교회로부터 자신이 부양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말했습니다. 

) 바울이 가진 4가지 권리

  첫째, 일반관례를 보더라도 자신은 교회로부터 부양 받을 권리가 있다 했습니다(고전9:7). 여기서 바울은 3가지 비유를 듭니다. 그것은 군인의 비유요, 포도원 농부의 비유요 양치는 목자의 비유입니다. 먼저 군인이 군복무를 할 때에는 당연히 급료를 받으면서 군복무를 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포도원 농부가 포도를 재배하는 것은 포도의 열매를 먹기 위함이 들어있으며, 양치는 목자가 양떼를 치는 것도 역시 양으로부터 양의 젖을 얻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둘째, 율법규정에 보아 그렇다는 것이다(고전9:8~11). 모세의 율법에 보면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25:4)"라고 했다는 것이죠. 밭 가는 농부가 장차 곡식을 추수할 것을 기대하지 않고 밭 가는 자들이 어디에 있으며, 곡식을 떠는 자도 함께 무엇인가를 얻을 소망을 가지지 않고 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영적인 것을 뿌렸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물리적 혹은 재정적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과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셋째,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들 역시,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제사장들 역시 제단에 드려진 것을 먹는다는 것이죠(고전9:13).

이는 민수기 18장에 나오는 규정을 말하는 것으로써, 당시 이스라엘의 레위인들은 백성들의 십일조를 받아 살라고 하였고,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드린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 중에서 불에 태우지 않는 것을 받아 살라고 하였으며, 또한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드린 요제와 거제 그리고 첫열매(기름,포도,곡식,양떼와 소떼 등) 및 레위인들이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받아서 누리며 살라고 하였다. 이것은 레위인들과 제사장은 기업이 따로 없고,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여 하도록 임명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사역자들이 성도들로부터 부양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파하도록 파송하셨던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고전9:14). 사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실 때에 "너희들이 복음을 전하러 갈 때에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발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왜냐하면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10:9).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러 다니면서 어떻게 해 왔었는가? 그는 고린도교회를 비롯한 다른 교회에 짐을 지운 일이 없었습니다(빌립보교회는 자원해서 헌금을 두 세번 보낸 적이 있기는 하죠). 그는 차라리 먹을 것이 없으면 자신이 굶어 죽을지 언정 결코 교회에게 그 짐을 지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자신에게는 이미 부양 받을 권리가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 장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 바울이 자기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 3가지

그렇다면 바울은 복음전파자로서 아니 고린도 교회에서는 사도로서 얼마든지 부양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파한 이유 3가지를 알아 봅니다.

 첫째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값없이 주어진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에 아무런 장애가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고전9:12). 복음을 전파하면서 뭔가를 기대하면서 전파하는 것이 되면 값없이 받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돈으로 바꾸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권리를 다 이 땅에서 사용해버린다면 장차 천국에서 받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고전9:18). 다시 말해 복음을 전파할 때 값없이 전파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쓸 수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않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장차 천국에서 자신에게 보상해주실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모든 사람에게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헤아려 행동하는 이유는 아무쪼록 그들 가운데 있는 한 사람이라도 실족 시키지 않도록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고전9:22).

그러므로 바울은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을 맞추어 살기에 힘썼습니다. 자신은 이미 그리스도를 믿어 유대교에서 떠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율법 아래 있는 자가 살았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그는 디모데와 같은 믿음 좋은 동역자가 필요했는데,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바울은 그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유대인이어서 유대교의 순수한 신앙을 가졌지만 그의 아버지는 이방인이어서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 있었는데, 그를 자신의 동역자로 삼기 위해 그는 기꺼이 그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한 것이죠(16:1~30.

그리고 본인도 예루살렘에 들어갔을 때에 율법과 성전을 훼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율법의 규정에 따라 정결례를 행하기도 하였습니다(21:17~29).

뿐만 아니라 그는 율법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자신은 율법 아래에 있지 않은 자이지만 율법 없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 율법 아래에 자신을 두었다 했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율법"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이방인들을 매우 사랑했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오직 믿음과 회개로 구원 얻는다는 것을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성도들에게도 알리기 위해, 예루살렘공의회에 자신의 동행자로서 데려온 디도 조차도 억지로 할례를 받지 않게 했습니다(2:3). 이는 그가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된 이유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었던 것이죠. 그리하여 그가 아무쪼록 여러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천국에서 면류관을 얻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이제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신은 복음전파자로서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들에게 설명합니다(고전9:24~27). 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이해를 위해 2~3년마다 열리는 이스트미안 경기를 예로 듭니다. 참고로 고린도 시에서 개최되는 이스트미안 경기는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다음의 유명한 운동경기 행사였습니다. 바울은 그 경기 중에서 사람들에게 좀 더 알려져 있는 2가지 종목을 언급하는데, 하나는 육상경기였고 또 하나는 격투기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첫째, 육상경기의 예를 들면서 스타디움에서 모두가 다 경주를 한다 할 지라도 당시엔 상(승리의 월계관)을 얻는 이는 오직 한 사람 뿐이라고 했습니다(고전9:24). 고로 바울은 자신도 그 얻기 힘든 상을 위해 부지런히 달려가듯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 이러한 운동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이 세상의 선수들도 철저히 자신을 절제하면서 관리를 한다는 것입니다(고전9:25). 그렇듯 자신도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절제하고 있다는 것이죠.  당시에 이스트미안 경기에 나가는 자는 적어도 10달 이상을 코치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특히 먹고 마시는 것에 절제해야 했죠. 그래서 그들은 그 10개월 정도 술을 금했으며, 체중을 맞추기 위해 음식을 조절하고, 심지어는 성생활까지 통제 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늘의 경주를 하는 자들은 보다 더 자신의 권리나 욕망을 절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경주자들이 얻을 상은 월계수 잎으로 만든 시들고 썩는 월계관이지만 하늘에서 성도들이 받을 승리의 면류관은 영원히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라 했습니다.

 셋째,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훈련 받고 있는 선수치고 그냥 훈련하는 선수는 없고 모두다 하나같이 분명한 목표를 세워놓고 훈련을 받는다는 것이죠(고전9:26). 고로 성도들이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복음사역자로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결국 천국에서 받을 상(승리의 면류관)을 위함 인데, 이러한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면 상에서 미끄러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넷째,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신이 남에게는 이렇게 말 해놓고 정작 자신은 그 상에서 멀어지거나 혹은 구원에서 떨어질까봐 오늘도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고 있다고 했습니다(고전9:27).

결론)

 이렇듯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진 자유와 권리를 결코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약한 자들을 실족 시키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였습니다. 값없이 받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가지 않게 하기 위험이었죠. 사실 믿음이 약한 형재라도 다 그리스도께서 피 값을 주고 산 형제들이기 때문에, 혹시 그들을 실족케 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자신이 가진 권세를 다 사용해버린다면 행한대로 보상받을 수 있는 천국에서 자신이 받을 보상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 쓰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사람으로 구원받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천국에서 자신이 수고하고 애쓴 만큼 보상받게 하고, 또한 경주에 최선을 다하여 승리의 면류관을 얻는 성도가 되게 하는 데에 온갖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우리는 약한 지체들을 늘 배려하고 살피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자기자신의 권리를 종종 내려놓더라도 하늘에서 받을 보상과 면류관을 위하여 자신을 통제하고 다스리고 절제하고 훈련하는 삶을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072021 안익선 목사/참조: 정병진 목사 & 갈렙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