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고린도 전서 7장 강해(결혼에 관한 지혜와 권면)

호걸영웅 2021. 7. 21. 23:40

고린도 전서 7장 강해(결혼에 관한 지혜와 권면)

  

서론)

6장까지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가 저질렀던 죄의 문제들을 언급하며 질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7장부터는 고린도 교인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의 신앙의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바울에게 제기한 문제들은 결혼의 문제(7:1,25). 우상에게 받쳐졌던 음식을 먹는 문제(8:1), 성령의 은사 문제(12:1), 죽은 자의 부활 문제(15:1) 및 유대인들을 위한 연보 문제(16:1)등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을 공부할 때에는 바울의 답변은 절대적이기보다는 권면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설명하며, 각각 다른 세 부류의 신자들에게 권면을 줍니다.

 

본론)

)성도끼리 결혼한 경우(7:1-11)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문제 중의 하나는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결혼하는 것보다 더 신령한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대답하기를, 남자나 여자나 독신의 은사를 받는 것은 좋지만, 독신 상태가 결혼한 것보다 월등히 나은 것은 아니며 더욱 어느 누구에게도 독신 생활이 최상의 생활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케네드 웨스트(Kenneth Wuest) 박사는 바울의 답변을 다음과 같이 변역하였습니다.

“엄격한 독신 생활은 지극히 합당하고 존중할 만하며 도덕적으로 적절하다.

그러나 독신 생활은 허용이 되기는 하나 명령은 아닙니다.(6절 참조). 또한 독신은 일종의 은사이며 아무나 이 은사를 소유한 것은 아닙니다(7절 참조). 바울의 이 답변은 마태복음 19 10-12절에서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과 연결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고자되는 것”은 결혼을 삼가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2:18)란 하나님의 말씀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안 하고는 모두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결혼을 하는 한 가지 목적은 음행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일부다처 제나 동성 결혼을 용납치 않으신다는 것을 2절 말씀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세때부터 섭리해 놓으신 결혼의 형태입니다. 결혼한 남녀의 성생활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는 그 정상적인 성적 사랑의 특권을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아내의 몸은 남편에게 속해 있고 남편의 몸은 아내에게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각각 피차의 의견을 존중하고 고려해야 합니다. 부부 간의 성생활은 서로를 성장시키는 아름다운 도구이지 결코 서로 싸우는 데 사용되는 무기가 아닙니다. 남편이 아내를, 혹은 아내가 남편을 거부하는 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살전4:5,6 참조)

(살전4: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라 (살전4:6)하셨습니다.

부부는 서로가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좋음을 권면하였습니다. ? 자칫 남편

혹은 아내가 아닌 다름 사람으로부터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게 하려는 사단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영()이 육체를 다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기도와 금식에 전념하기 위해 합의상 분방할 수 있습니다(7:5). 그러나 이를 핑계삼아 그 상태를 오래 끌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부부는 영적인 일에서나 육적인 일에서나 피차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바울은 권고합니다.

 

8,9절에서 바울은 1절에서 언급한 원리를 혼인하지 않은 신자와 과부에게 적용시킵니다. ,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는 것입니다.

 

이혼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예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인용했습니다. , 기본적으로는 남편과 아내는 이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39절 참조). 그러나 이혼했을 시에는 그대로 독신으로 지내거나 재결합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혼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가지 예외를 말씀하셨습니다. ,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음행죄를 저질렀을 때에는 그것이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음행한 사실을 자백하고 그것을 용서해 주며 다시 화합하는 것이 휠씬 더 좋지만, 이런 것을 고려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혼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이혼은 최후의 선택입니다.

 

) 불신자와 결혼한 신자(7:12-24)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결혼 후에 자신은 구원받았는데 남편이나 아내는 아직 회심치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의 가정에 어려운 문제가 야기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그들과 계속 살기를 원하는 한 이혼하지 말라고 답변합니다.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결혼 상태를 변화시키지는 않습니다. 변화시키는게 있다면, 그것은 결혼 생활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의 변화여야 합니다(벧전3:1-6에서 믿지 않는 남편을 둔 아내에게 베드로가 주는 충고에 주목하면)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불신자와 결혼해서는 안 됨을 잘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지 못한 자와 결혼하는 것은 불순종의 행위입니다(39절에 “주 안에서만”이라는 말에 주의 합시다. (고후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

 

그러나 14절 말씀은, 구원받은 자가 가정에서 그 영적 영향력을 발휘할 때, 구원 받지 못한 남편이나 아내를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어떠한가?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믿는 남편이나 아내의 영향력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남편이나 아내는 그 신앙의 영향력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헌신적인 신앙 생활을 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결국 자신의 배우자로 하여금 구주를 믿게 만드는 사실은 종종 있어왔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은 종족이나 사회적 신분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 노예와 자유민,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교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는 아마 교회 뿐이었을 것입니다(3:28). 그러나 이 새로운 평등성 역시 잘못 이해되었고 그 결과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켰습니다. 바울은 17-24절에서 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입니다. 그러나 개개의 신자는 주님께서 그를 구원하셨을 때 그가 처해 있었던 것과 똑같은 상황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제시하는 문제 해결의 원리였습니다. ,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언약의 육체적 표()인 할례를 지움으로써 이방인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되며, 그 반대로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할례를 받음으로써 유대인이 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또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동등하다고 해서 노예들이 그 주인에게 자유를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할 수만 있으면 자유하게 되라고 권합니다. 이처럼 각 사람들이 부르심을 입은 상태에서 그대로 행하라는 원리는 구원받지 못한 자와 결혼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개 우리 안에 있는 것이지 우리 주변에 있지는 않습니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에 있습니다. 이혼을 해서 새로운 환경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부부들을 자주 봅니다만,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여전히 그들을 따라다닙니다. 한 그리스도인 변호사가 언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혼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은 변호사뿐이오”

이왕 남 좋은 일 시키려면 건설적인 면에서 사랑이 포함된데서 해야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면에서 해서는 안됩니다.

 

)결혼하지 않은 성도(7:25-40)

 

바울은 혼인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8-9절에서 이미 간단한 권고의 말을 했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미혼의 성도들에게 결혼의 의미를 보다 상세히 설명합니다. 그들의 질문은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가? 혼기(婚期)가 지난 교회 내의 여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36절 참조). 이 단락에서 바울은 주로 혼인할 때가 된 딸을 가진 부모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예수께서는 특별한 가르침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권고를 주되 주님으로부터 지시 받은 권고로써 그것을 제시합니다(25).

 

바울은 결혼에 관해 어떤 결정을 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해 볼 것을 요구합니다.

첫째, 현재의 상황을 고려해 보라(7:25-31).

그때는 세상이 변화를 겪고 있던(31) 환난의 때였습니다(26). 성도들이 주님을 섬길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또 당시의 고린도에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한 어떤 정치적이나 경제적인 압박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해 볼 때, 결혼하는 것보다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욱 현명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이미 결혼한 부부들이 이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27). 바울의 권고는 아직 미혼인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권고는 어느 누구도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결혼한 자들은 거기에 따르는 시련을 감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28)..

 

둘째, 자신의 책임에 솔직하게 직면하라(7:32-35).

이 구절의 강조 점은 “염려”(care)라는 낱말에 있습니다. 이 말은 “근심한다”, “다른 방향으로 끌려간다”는 의미입니다. 피차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 같은 문제로 함께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결혼을 서둘러 더 많은 문제를 야기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결혼에 필요한 것은 성숙한 인격입니다. 그리고 연령 자체가 그 사람의 성숙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주님을 위한 삶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바울의 말은, 결혼한 남녀는 주()를 온전히 섬길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결혼을 하고서도 온전히 주를 섬기는 부부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혼한 하나님의 종들은 그 배우자를 돌아보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자녀들도 보살펴야 합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 그들의 마음이 산란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차라리 독신을 고수했다면 더 좋았었을 것입니다.

 

셋째, 개개인의 상황은 저마다 독특하고 다릅니다(7:36-38).

바울은 본문에서 결혼하지 않은 처녀들의 아버지들에게 권고합니다. 바울 당시의 사회에서 딸의 결혼은 부모들의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딸의 결혼에 대한 아버지의 결정권이 컸습니다.(고후11:2 참조). 바울은 자신의 권고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그저 엄격하기 만한 규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35절에서 이미 밝혔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딸을 결혼시킬 것인가 시키지 않을 것인가는 아버지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오늘날 남녀 간의 데이트 방식이나 결혼관은 당시 고린도 교인들의 그것과는 판이하지만, 바울의 권고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적용됩니다. 나중에 후회할 결혼을 방지하기 위해서 젊은이들은 부모나 교회 지도자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36절에서 바울은 “혼기”(婚期)라는 말을 언급함으로써 문제의 핵심을 찌릅니다.

노처녀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서둘러 결혼을 한다면 잘못된 결혼을 할 위험이 있음은 물론입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저주받은 결혼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혼자서 외롭게 사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합니다.

네째,결혼은 평생을 위한 것임을 기억하라(7:39-40).

결혼에 의한 연합은 영속적이 되어야 하며 또한 평생 동안의 책임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시험 결혼?이란 있을 수 없으며, 또한 “결혼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이혼할 수 있다”는 식으로 도피구를 마련해 놓는 것도 그리스도인에게는 있을 수 없습니다.

 

)과부에 대한 권면

바울은 끝으로 과부의 문제를 설명하며 결혼 문제를 마무리 짓습니다. 과부들은 자유로이 결혼할 수 있으나 그 결혼은 “주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39). 이 말은 반드시 그리스도인과 결혼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과부들 역시 결혼하지 않고 지낼 것을 더 권고합니다(그에 대한 이유는 이미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은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결혼에 관한 규정들을 설정하신 것은 결혼을 감옥과 같은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안전하고 견고한 요새(要塞)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결혼을 일종의 감금 상태로 간주하는 사람은 결혼해서는 안됩니다. 두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 게(그리고 하나님에게) 기쁘게 헌신할 때 그들의 결혼은 풍요롭고 발전적인 것이 됩니다. 교회와 가정에서 한 (team)을 이룰 때 그들은 함께 성장할 것이며 주님을 섬기는 일의 풍요로움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결론)

이상의 내용을 살펴본 우리는 결혼이 얼마나 중요하고 진지한 일인지 새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매우 중요시하시며,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혼에는 고통스러운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바울의 권면에서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바울도 어떤 특별한 상황 하에서는 이혼이 용납될 수 있음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의 문제에 있어 이혼이 첫째 되는 대책은 아니고(2:14-16) 가능한한 화합의 길을 사방으로 모색해 보길 원하십니다.

 

               070621 안익선 목사/ 참조:[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