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고린도전서 14장 강해 (예언,방언,사랑의 은사에 대해)

호걸영웅 2021. 8. 15. 05:11

고린도전서 14장 강해 (예언,방언,사랑의 은사에 대해)

 

서론)

본 장은 계속되는 은사에 대한 교훈 중에서, 방언과 예언의 차잇점을 설명하고 방언도 귀하나 예언을 더욱 사모할 것을 권하되 특별히 사랑을 더하여야 하고 은사로 인해 교회에서 질서를 어지럽혀선 안됨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본론)

)특별히 예언을 더 사모하라

14:1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바울은 사랑이 제일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13:13). 그러므로 모든 다른 은사들도 사랑을 베풀기 위하여 있는 것뿐이니, 은사를 구하는 자는 "사랑을 따라" 구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 방언이란? : 성경에 나타나는 방언(方言)은 경우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1) 이 세상의 어떤 외국말(초대교회의 방언)

(2) 이 세상의 말이 아닌 어떤 영적인 신비로운 말(고린도 교회에 많았던 방언)

이 중 (1)의 대표적인 예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의 불꽃이 임하여 거기 모인 모든 이가 방언 하였을 때, 각 지방 및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란 경우(2:4-13) 이고 본문에서의 방언은 (2)의 예에 해당됩니다.

이유는 

(1) 이 구절 하반에 있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no one understands him)라는 구절과

(2)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 (he utters mysteries with his spirit. )는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다른 지방의 말이라면 그 지방의 사람이 들으면 알아들을 수가 있고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는 이것이 영적 방언(혹은 천사의 말)임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죠.

 

14: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But everyone who prophesies speaks to men for their strengthening, encouragement and comfort.

* 예언하는 자란? 사도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들은,

1)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어떤 특별한 사건을 예고하였음( 11:28 아가보-Agabus-가 천하에 흉년이 크게 들리라 하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1:11=

  1.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라고 함, 27:10 이하-바울의 로마행 압송 선박의 파선에 대한 예언)
  1. 2) 신앙에 관한 진리를 해명하기도 하고(12:6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3) 이들(예언 은사자들)의 역사도 사도들의 역사와 함께 신약 교회의 기초를 이루었습니다 ( 2:19,20-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했습니다.

4) 그러나 성경의 기록을 위한 예언의 역사는 사도의 역사처럼  계시시대(사도 시대)에만 있었던 단회직(單回職)에 속합니다. (율법와 선지자는 요한의 때 까지요-의 의미/16:16=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했습니다.

5) 교회 시대에는, 예언의 후신(後身)으로서(예언을 대신하여) 설교가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양자(兩者)의 기능이 거의 같기 때문입니다. 예언이 건덕, 권면, 안위를 그 기능으로 한 것처럼 설교도 그러합니다. 다만 예언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초자연적으로 그에게 찾아 왔으나 설교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성경)의 조명과 해석으로 해야 합니다.

, 설교자는, 말씀의 청지기란 의미. 다시 말하면, 설교자는 기독교의 터를 닦는 자가 아니고, 사도와 선지자가 닦아 놓은 터(고전 3:10-11) ,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말씀을 근거하여 교회를 세우는 자라고 보아야 합니다.

 

"덕을 세움" "세워 나감"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 신자들의 산앙

사상을 증진 시킴이요, "권면"  경계하여 양심과 의지로 옳은 데로 움직이게 함이고,

"안위"는 난관과 핍박을 당한 신자들에게 소망을 보여 주어 그들의 정서(情緖)적으로 기쁨과 용기를 취하도록 해 주는 일입니다.

 

14:11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 (a foreigner) 이 되리니

※ 곧 피차간 야만(오랑캐? 외국인?)의 관계란 뜻이니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곧 매우 답답한 일이 됩니다.

 

14:12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So it is with you. Since you are eager to have spiritual gifts, try to excel in gifts that build up the church.

 , 신령한 은사를 구하여야 되나, 교회에 유익 끼치기를 목표로 하라는 뜻이죠. 그리 하려면 방언하는 자는 통역하는 은사와 함께 해야 합니다.

 

14:16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깨닫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14: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 고린도 교인들 중에 방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 통역 없이 방언을  회중(會衆)에게 말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지혜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은사를 하나의 호기심(好奇心)과 자랑거리로 구경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더러 아이들처럼 유치하게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자랑은 악이며 그런 악에 있어선 그것을 경험해  본 일이 전혀 없는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 합니다.

*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방언하는 자들이 교회의 유익을 위함이 지혜입니다.

 

14:21 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찌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율법에 기록된바" :이것은 사28:11,12에서인용한 것.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에 관한 설명.  

  이사야 시대에 유대인들이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시려고 하시는 말씀이 장차 외국인들(앗수르나 바벨론 사람들)이 유대를 침략하여 정복하고 지배 하리라고 하신 것이었죠. 그것이 여기 이른바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것이라고 한 말씀의 의미이다. 여기 "다른 방언하는 자"란 말은 침략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다른 방언하는 자가 유대인에게 온 것은, 그들을 벌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고린도 교회에서 방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 일반이 깨닫지 못하는 말로 회중에게 말하면 그것은 그 회중에게 대한 일종의 벌이 됩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 아니었죠.

 

14: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Tongues, then, are a sign, not for believers but for unbelievers; prophecy, however, is for believers, not for unbelievers.

14:23-25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22절의 경우 방언과 예언의 일반적 특성 및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방언의 경우)의 경우를 말한 것이고 23-25절은 불신자들이 교회에 왔을 때의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즉 방언의 은사는 불신자들에게는 아주 기이하고도 신비한 현상으로서 그들이 교회에 출석하기 전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만드는 일종의 표적(sign)으로써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호기심과 신비감을 주어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이미 교인이 된 사람들에게 방언의 은사를 자랑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부적당하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 내용을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회중에게는 아무 유익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예배하기 위하여 모였을 때에 목사나 공중예배를 주관하는 사람이 회중은 말할 것 없고, 말하는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기도하고 설교하고 종교적 의식을 수행한다면 교회에 나온 불신자들이 보고서 그들은 모두 미쳤다고 생각하며 야만적인 광분자들이라고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그러나 목회자나 예언의 언사를 받은 교인들이 자신의 속마음까지 꿰뚫어보고 자신의 죄를 지적하며 양심을 일깨우고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점을 드러나게 하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지적해 준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경배드리지 않겠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14: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If anyone speaks in a tongue, two--or at the most three--should speak, one at a time, and someone must interpret

 

14: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The spirits of prophets are subject to the control of prophets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란 말은 예언하는 자가 받은 성령으로서 이는 예언하는 사람의 자주성(自主性)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제를 받는다는 뜻. 그러므로 예언자는 예언하는 과정에 의식 없는 사람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29-31)에 기록된 질서를 지킬 수 있는 정상적 의식을 가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14: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이것은 일반적으로 고린도 교회를 꾸짖는 말씀이다. 그 교회는 그때에 스스로 모든 다른 교회들의 모체(母體)인 듯,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들, 곧 고린도 교회에만 임한 듯이 자만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

방언은 귀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방언일지라도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시도 때도 구분 못하고 하는 방언은 절제됨의 열매를 맺지 못하니 곧 성령의 은사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절제하게 하십니다. 고로 회중 가운데 행하는 방언인 경우, 두세사람이 차례대로 하고 또 통역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요 절제의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우리가 교회 내에서 무슨 일을 하든 교회에 덕을 세우고 유익을 끼치고 겸손하고 온유하고 사랑스러워야 합니다. 은혜나 하나님 보다 나를 드러내고 자랑하고 교만하게 되는 것은 전혀 성도의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081021 안익선 목사 / 참조: 白鏡 http://blog.daum.net/hansono/2231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