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4장 강해(질그릇에 담긴 보배)

호걸영웅 2021. 10. 21. 23:30

고린도후서4장 강해(질그릇에 담긴 보배)

 

서론)

고린도후서 가운데 4장은 사도 바울이 자기의 사도직을 변론하는 부분 중,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그의 표현을 보면 상당히 영적이거나 신비로운 세계에 대한 묘사도 제법 드러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암송하면 좋을 구절들이 한 장 안에 몇 구절이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7-11절이 그렇고, 16절 말씀도 그렇고, 18절 말씀도 중요합니다.

 

4장은 아래와 같이 크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1-6 / 사도직에 대한 바울의 태도

7-15 / 고난 속에서 바울의 담대한 용기

16-18 / 겉 사람과 속사람에 대하여

 

본론)

) 1-6; 사도직에 대한 바울의 태도

3장에서 새 언약의 우월성을 강조한 바울은 4장에 들어오면서 사역의 여러 장애나 오해에 대하여 본인 자신인 바울은 결코‘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1)

 그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까닭이라 했습니다. 이 구절은 분명히 자신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이전에 교회를 박해했던 사건이나 죄과에 대한 비교나 입장을 말하는 것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신 것임을 고백합니다. 사도의 자격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으니, 그것이 은혜이고, 감사일뿐이라는 것입니다. 

 

감당키 어려울 만큼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로 부르셨음을 늘 잊지 않기 위해 본문에서도 다시 한번 결단과 헌신을 다짐합니다. 이제 2절에서 숨은 부끄러움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고, 도리어 진리를 나타내기를 결단합니다.

 

바울은 거듭 자신의 사역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소개한 복음이 다른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망하는 자들’(3)혹은 망할 자 들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신(사단) 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바치지 못하게’(4 )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복음은 아무리 자세히 설명하고 쉽게 설명해도 성령께서 깨닫게 하지 않으시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또 바울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선언합니 다. 바울이 의도한 ‘형상’이란 단어는 분명하게 드러난, 핑계할 수 없이 선명하게 드러나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톰 라이트라는 학자는 이곳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은 모든 영광 가운데 계신 주님과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 그 만남으로 인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경험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가 깨달은 의미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죽은 사람들로부터 살아나셨다면, 그분은 정말 메시아시다. 그분이 메시아라면, 그분은 하나님의 목적을 전부 실현한 분이시다. 사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새로운 빛이시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시력을 완전히 잃고 사흘 동안을 맹인이 되어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바울은 보았습니다. 부활의 주님으로부터 보았던 그 빛은 이전에 보던 빛이 아니었습니 다. 전혀 새로운 하나님의 빛, 생명의 빛이며, 창조의 빛이었습니다. 요한이 말한대로 어둠이 결코 이길 수 없는 빛이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사도 바울과 우리 성도들의 마음에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복음 안에 있는 놀라운 비밀과 능력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자들은 ‘이 세상의 신이’ 깨닫지 못하도록 막은 것입니다.

 

) 7-15절 고난 속에서 바울의 담대한 용기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할까요? 바울은 이제 그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7절에서 바울은 ‘이 보배를 우리가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보배가 질그릇에 있다는 것입니다. 

 

질그릇은 말 그대로 보잘 것 없는 약하고 천한 그릇입니다. 이러한 비유는 분명히 우리 인간의 심성과 육신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음을 말하려는 의도입니다. 이 비유는 확실히 역설이기도 합니다. 너무나 소중하고 귀중하기 때문에 보석함이나 금으로 된 함에 넣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죄인 된 우리가 그렇게 고귀한 재료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폴 바네트는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인정할 때에만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 있는 분이신지를 제대로 인식하게 된다. ... 인생은 짧고, 그 형태는 쉽게 손상되며, 그 조직은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다. 인간의 생명은 질그릇, 값싼 진흙 단지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것은 그렇게 연약하고 보잘 것 없고 천한 우리가 어떻게 변화됩니까?

 

8-10절에 표현대로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박해를 당해도 버림 바 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가장 약한 몸이지만 보배 되신 그리스도를 모셨기에 그 어느 때보다 가장 강합니다. 복음을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 인들은 역설적 존재가 분명합니다.

가장 약한 몸에 가장 강한 하나님의 능력이 머뭅니다.

가장 천한 몸에 가장 고귀한 분 성령께서 거하십니다.

찰나의 삶 속에 영원한 삶이 거하게 하십니다.

고로 바울은 연약함을 단순히 약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오히려 강점을 입었음을 말합니다. 

 

고로 질그릇(토기)은 바로 우리 자신을 말합니다. 10절에서는 ‘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질그릇이라도 보배를 담으면 보배함으로 바뀝니다. 질그릇이라도 큰 영광과 존귀를 입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으로 가면 우리가 익히 아는 고백을 바울이 하게 됩니다. 고후 12:9-10절을 봅시다.

[고후 12:9-10]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자신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바로 복음의 능력에서 옵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의지하는 전적 신뢰의 믿음으로 가능해 집니다. 철저히 죄성으로 연약해진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만을 높이는 삶,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능력입니다.

 

)3. 16-18절 겉 사람과 속 사람

이제 16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늙고 병이 듭니다. 가는 세월 오늘 세월 다 막을 수 없습니다. 오래 쓴 중고차나 사람이 어찌 그리 비슷한 지 모르겠습니다. 여러 죄로 인하여 부패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물러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11,12)

 

17절에서 사도 바울은 지금의 자기가 겪은 모든 환난들을 ‘경한 것’으로 표현합니 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창조적 능력으로 우리 안에서 계속하여 새로움을 창조합니다. 새로운 기쁨, 새로운 행복, 새로운 소망을 줍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보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이는 것은 물질, 명예, 권력 같은 것들입니다. 부자 삼대 없고 거지 삼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재물이 2대를 넘기기도 쉽지 않습니다. 명예도 영원치 않습니다. 정치도 수시로 무상함을 보여주고 연예인들의 인기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권력도 그렇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대통령뿐 아니라, 장관 차관 청와대의 주요 권력자들이 감옥에 가는 일이 허다합니다.   

 

고로 사도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복음의 은혜와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결론)

우리의 겉 사람은 보잘 것 없는 질그릇과 같은 우리의 인생이지만, 그것들은 잠깐이기에 그리 집착할 것들이 못된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자신 뿐 아니라,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지금 여기, 이 현실 속의 나약한 가치에 만 주목하지 않고 오직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주목해야 합니다. 

 

고로 바울은 골로새서 3:1-2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3:1-2] 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하십니다.

남은 한 주간도 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 깊이 담고 생활하실 수 있으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00521
안익선 목사/ 참조:[Pensé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