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5장 강해(화목케 하는 직분, 성도)

호걸영웅 2021. 10. 21. 23:32

고린도후서 5장 강해(화목케 하는 직분, 성도)

 

찬송가/ 450,464,470

 

서론).
고후 5장에서는 종말에 일어날 일과 복음 가진 특징에 대해 새로운 각도에서 설명합니다. 복음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하는 초대장과 같습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화목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 즉 복음을 전하는 직책을 화목케하는 직분이라고 소개합니다.

 

본문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10절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2)11-21절 화목케 하는 직분


본론)

가)  1-10절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1.    때때로 우리 성도들이 받는 고난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런 선교 보고가 있었습니다. 2013 11월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하이옌으로 인해 필리핀 타클로반 인근의 지역이 많은 피해를 입은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곳 선교사의 보고에 의하면, 3개월 후인 2014 2월에 태풍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지역 교회의 이야기의 간증이 있었습니다.

 

 태풍 하이옌이 강타한 지역에 위치한 한 교회는 지붕이 날아가고 교회와 교회가 운영하던 유치원의 벽이 심하게 파손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파손된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어도 태풍 앞에서는 별 수 없다며 오히려 비아냥거리는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파손된 교회의 안타까운 사정이 한국과 미국 등의, 몇몇 나라에 알려지면서 이 교회를 향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고 마침내 교회는 이전보다 더 튼튼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 단장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지켜본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하나님은 쓰러져 가는 것을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는 말을 하며 이후 마을 주민들 가운데 교회에 출석하게 된 사람도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던 집이 파괴되고, 일하던 터전이 사라지는 것 같은 일은 비단 태풍과 같은 재해로 만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아니면 일상에서 어느 날 급작스럽게 청천벽력과 같은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될 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참으로 많은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5:1)=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2. 현실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바울은 고린도후서5장을 시작하면서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는 상황을 이야기 합니다. 이는 코 끝에서 호흡이 멈추고 육체가 썩어져 흙이 되어 가는 순간을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그가 당하고 있는 커다란 고난으로 인해 어쩌면 자신의 목숨이 끊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땅에서 무너질 수 있는 유한한 인생을 비유한 ‘장막 집’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과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선교를 위해 장막을 만드는 일을 했던 바울은 아무리 견고하게 만든 장막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 장막은 언젠가는 무너지는 한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유한한 몸을 장막 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따라 부활한 몸으로 영원한 나라에서 살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당하는 어렵고 힘든 상황 앞에서 그것을 인내하며 이겨낼 수 있다고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비록 육체는 이 땅에서 죽음으로 인해 사라진다 하더라도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죽었던 자들이 부활하여 육신을 입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이 믿음이 바울로 하여금 자신의 목숨이 끊어질 수 도 있는 상황 가운데에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담담히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며 헌신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3. 복음의 탁월성은 이 세상의 한계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16-18에서 바울은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고 말했습니다. 그 새로움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요? 바울은 5장을 시작하면서 땅에 있는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다고 말합니다. ‘땅에 있는 장막’을 분명, 4장에서 언급한 질그릇으로 표현된 우리의 연약한 육신을 말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즉 우리의 운명이 다하면, 우리의 생명을 마치면 이란 뜻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후에는 하늘에 있는 집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집은 어떤 집입니까?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며, 하늘에 있습니다.(1) 마가복음 14:57-58에 의하면 예수님을 잡아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의회 앞으로 끌고가 거짓증인을 사용하여 이렇게 말하게 합니다.

 

[ 14:57-58]

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여기서 언급되는 있는 말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예수님 자신을 말한 것입니다. 만약 위의 본문은 고린도후서 말씀에 적용해 본다면 ‘새롭게 완성된 부활의 몸이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음 받은 몸’을 말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더욱 분명한 것은 2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2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라고 말합니다. 즉 영원히 죽지 않을 몸으로 덧입혀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4절에서 다시 반복합니다. 4절 후반부에서는 정말 멋진 말로 표현합니다.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럼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로 성경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5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비록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갈 동안 이 세상에 있지만 결국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10)에 앞에 서게 될 것이고, 그 때 우리는 모든 행위를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9절에서 바울은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역으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외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행하지 아니’한다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복음을 받을 때 우리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11-21절 화목케 하는 직분

 

1. 5:11로 시작하는 ‘화목케 하는 직분’에 대한 이야기는 길게 7:4까지 이어집니다. 물론 중간에 약간씩 다른 이야기도하지만 중요한 것을 바울의 사도직이 죄인들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2.본문5장에서는 몇 가지로 나누어 자신의 사도직의 특징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사도직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사명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13절에서 ‘미쳤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정말 미친듯이 일했고, 헌신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14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했다’라고 말합니다. 강권한다는 말은 억지로 뭔가를 시킨다는 뜻이지만 바울은 그런 의도로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의도는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 사랑이 나의 삶을 매우 열절정적으로 이끌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언제 미친 듯이 일할까요? 너무나 주님이 사랑과 은혜가 감사할 때입니다. 그럼 누가 감사할 수 있을까요?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가면 어느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합니다. 이 때 어떤 한 여인이 향유를 가져와 깨뜨려 예수님께 붓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있던 바리새인이 생각합니다. “만약 이 사람(예수님)이 진짜 선지자라면 지금 자신에게 향유를 붓는 여인이 어떤 여인인 것을 알 텐데 왜 이렇게 가만히 있을까? 가짜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 예수님이 바리새인 시몬에게 빚 진자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하나는 오백 데나

리온을 졌고, 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다. 갚을 것이 없다 하며 둘다 탕감해 주었다.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그러자 시몬이 대답합니다.

[ 7: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라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죄를 사함 받은 향유를 붓고 여인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하십니다.

 바울의 열심은 다른데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더 크고 깊게 깨달았기 때문에 일어난 자발적 헌신이었습니다.

 

2.바울은 14절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음을 설명한 다음 15절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해 줍니다.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고 했어요.

 

바울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말해줍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뜻은 죄와 육신을 따라 살았던 삶을 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되어 의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변화뿐 아니라 본질 자체가 완전히 바뀝니다. 어떻게 하여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3. 18-21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화목하게 하는 직분’(18)이라고 힘주어말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바로 화목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자신이 감당하심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고, 죄인들을 용서하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도 십자가 위에서 단 한번에 충족하게 하셨습니다.

 

마태는 산상수훈을 시작하면서 화목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 질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이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증거입니다.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톰 라이트는 메시아의 사랑이 복음의 전체 주제다’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역동적이고, 활기입니다. 사랑은 폭발하는 폭탄과 같아 밖으로 품어져 나옵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강제한다’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보십시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허비하여 주님을 섬겼습니다. 왜요? 주님의 사랑이 너무나 컷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결론)

온갖 죽음의 위협과 고난 앞에서 담대함으로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나아갔던 바울의 모습을 통해,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장막 집은 언제든지 무너지더라도,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음을 다시 한번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은 우리의 힘이나 의지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며 모든 역경을 능히 이길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성령님을 의지함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을 받은 자들이기에, 보이는 물질이나 세상 정욕을 넘어 서서 믿음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허락된 잠시의 세상 삶속에서  오직 하나님 한분께 기쁨을 드리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101221
안익선 목사/ 참고: 송호욱 & Pensé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