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야고보서 2장 강해(교회 내의 차별과 행함 없는 믿음에 대해)

호걸영웅 2023. 4. 8. 01:47

야고보서 2장 강해(교회 내의 차별과  행함 없는 믿음에 대해)

 

 [서론]

 1.오래 전 남아프리카 행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비행기를 탄 한 백인 중년여성 하나가 소리쳤습니다. 이봐요, 승무원! 자리를 바꿔줘요.” 승무원 왈“무슨 일이시죠?” “보면 모르겠어요? 흑인 옆에는 앉고 싶지 않단 말이예요. 이런 사람, 불쾌해요.그 백인 여자 옆에 흑인 남자가 곤혹스런 얼굴로 앉아 있었습니다. 승무원이 말합니다. 손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비어 있는 자리를 확인하고 오겠습니다.승무원은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고, 주위 승객들은 수군거리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잠시 후 승무원이 돌아와서 말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First Class에 한 곳 빈자리가 있으니까 그쪽으로 가시죠. 원래는 이렇게 할 수 없는데, 이번에만 특별히 배려해 드리는 겁니다. , 이쪽으로 오시죠.주위 승객들은 모두 웃으면서 흑인 남성에게 잘 가라고 인사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모양의 차별들이 있습니다. 그런 차별이 교회 내에도 존재하기 쉽습니다. 아울러 행함이 없는 믿음의 모순에 대해서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성도의 바른 삶의 태도가 아님을 야고보 사도는 경계해 말합니다.

 

 2.차별은 스포츠에도 있습니다. 남자축구 세계 랭킹에서 몇 년째 가장 순위가 낮은, 그러니까 가장 축구를 못하는 나라가 부탄이라 해요.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선수가 몇 명 중에  가장 잘하는 호날두가 포르투갈 출신으로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 클럽 소속입니다.

 

그 호날두 선수가 멋지게 골을 넣으면 중계하는 아나운서가 뭐라고 하냐면호날두 선수! 역시 이름값을 하는군요. 대단합니다!그런데 무명의 부탄 선수가 골을 넣으면? 한 골 터트리는 OO선수, 자기 능력의 200%를 발휘하고 있습니다.”라고 한데요.  호날두가 골을 넣고 자신만의 독특한 호우세리머니를 하면, 저것은 저 선수의 전매특허예요. 얼마나 멋집니까?그런데 부탄 선수가 골을 넣고 독특한 전통 춤을 추며 세리머니를 하면, 저건 또 뭐죠? 기뻐하는 것은 좋은데, 별 걸 다하는 군요.”라고 했답니다.

 

본론)

)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차별 대우 (1-4)

 오늘 본문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람을 겉으로만 보고 차별 대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세기 당시 이스라엘 지역에는 높은 세율이나 빚 때문에 집과 땅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80-85%). 그리스(헬라)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에는 노예 신분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야고보는, 이런 상황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예로 들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2-3)=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금반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부자가 교회를 방문합니다. 그러면 안내위원들이 그 부자를 좋은 자리로 안내하여 앉도록 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도 들어옵 니다. 안내위원들이 그 사람은 거기 서 있든지 땅바닥에 앉든지 하라고 말합니다.

 빈부차별이 교회 내에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야고보는 이러한 예를 심하게 꾸짖습니다.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4)

 

.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안 될 이유는 1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1)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되는 이유 두 가지 더 (5-7)

 특히 성도가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야고보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1)   가난한 사람을 차별할 때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5-6)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 압제받는 사람,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특별한 사랑을 갖고 계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24: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하십니다.

 

야고보서 1:27에서도 참된 경건의 표지 중 하나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아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신명기의 말씀은 객(나그네)과 고아와 과부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모두 사회에서 아주 낮은 사람들입니다.

(나그네)는 우리처럼 이민 오거나 유학을 오거나 일하러 온 사람입니다. 또는 난민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신명기 24:19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고요.

 (24:20-21)=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하셨어요.

 

이 얼마나 자상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까! 우리가 대개 생각하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구약의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시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이건 신약 시대이건 한결 같은 사랑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특히 약한 자를 이토록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도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다른 사람을 차별해서 대우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지 말아야 할 두 번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1: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라고 했죠.

 

베드로도 이렇게 말합니다.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벧전 1:17)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도 하나님처럼 겉모습으로 차별 대우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들입니다.

 

) 차별대우나 특별대우를 하지 않는 길 (8-13)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차별대우도, 특별대우도 하지 않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2)

 

이 구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을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천국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설 때 나의 삶을 어떻게 말씀드릴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13=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13)했어요.

 

) 정말 믿으면 행함이 따르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부하는 이유가 많은데, 그 중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예수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안 믿지만 바르게 살고 도덕적으로 사는 분들이 예수 믿기가 참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분들 눈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위선자 같고, 말과 행동이 다르고, 겉과 속이 다르고, 자기보다 도덕적으로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런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를 내가 뭐 하러 나가나? 내가 더 나은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얌체라고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일이라면, 우리 믿는 자들의 삶이 안 믿는 사람들의 삶과는 뭔가 달라야 하는데, 별 차이가 없거나, 더 탐욕스럽거나, 더 욕심이 많거나, 더 이기적이거나, 더 안 좋게 보이기 때문에 그런 분들이 예수 믿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해도 많습니다. 그렇다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러한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4)

 여기서는 행함과 구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유익이 없는 믿음이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7-18)여기서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예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

 (20)도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라 합니다.

 

이런 죽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허탄한 사람이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큰일 납니다. 이 말씀을 읽고서, , 구원은 행함으로 받는구나. 아무리 믿어도 행하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는 것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오해이고, 성경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볼 때, 분명히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착한 일을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믿음도 있어야 하고 행함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 하나만 있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진짜로 믿은 것이라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 들어갑니 다.

 그런데 (2:8-9, 새번역)=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라 했죠?

 뭔가 착한 일을 해서, 내가 뭘 잘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에베소서는 바울이 썼고,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썼습니다. 그런데 야고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구원받기 위해서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믿음에는 행동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5-16)라 했어요.

, 말로 만이 아닌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믿음을 보이라 했어요.

 

결론)

오늘 야고보서 말씀은 참된 신앙생활에 대한 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2장 후반부에 아브라함과 라합의 행동적 믿음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었나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결국 성도는 말로 복음을 전하긴 하지만, 행동할 때 복음이 비로소 참된 복음다워진다는 의미입니다. 더욱 행동합시다. 더욱 사랑을 베푸십시다. 더욱 서로 돌아보십시다. 할렐루야!

 

              040523 안익선 목사/ 참조:콜롬비아 한인 장로교회 설교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