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인생 경영의 성공법 (요15:4-8)

호걸영웅 2024. 3. 30. 05:32

인생 경영의 성공법 (15:4-8)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서론)
한국의 대기업 중, 삼성(그룹)만큼 국민들의 기대와 비판을 함께 받는 기업도 없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삼성만한 기업 하나만 더 있어도 한국이 더욱 강력한 경제 선진국이 되었을것이다 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큰 기업인지라 소위
삼성공화국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은 한국사회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존재감이 너무 커서 오히려 지나친 기대와 비판이 나온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한 평등주의적 사고가 강한 한국 사회분위기 때문에 나온 말이기도 합니다. 다 그렇지 않겠지만, 한국 사람은 배고픈 것은 잘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듯이, 삼성의 일등주의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미움과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한국에 삼성이라는 기업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데 수십년이 더 흘러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삼성의 중심에 이건희 회장이 있었습니다. 그가 삼성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지 20년 째 되었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는 취임이래 끊임없이 변화와 개혁을 강조해 왔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1993년에 역설한 ‘신 경영 지침’입니다. 그는 처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말로 요약하고 주창하였습니다. 그 뒤로 준비경영, 천재경영, 나눔 경영,‘창조 경영’등의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성공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2가지 있습니다.

1)
하나는 무엇이 성공이냐는 것입니다. 즉 성공의 목적이 무엇이냐 라는 것입니다. 성공을 가지고 뭘하려는 것이냐 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1등하는 것, 많은 돈을 버는 것, 누구를 이겨 보고 싶다! 세상을 호령해 보고 싶다! 는 것들은 결코 바른 목적이나 목표라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되느냐 보다 왜 되려고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영원히 후회하지 않아도 될, 영원히 궤도를 수정하지 않아도 좋을 확고한 목적과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나는 왜,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내게 있어서 성공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 원하는 것을 성취했다고 하여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목표를 성취했으나 돈의 노예가 되고, 자기 정욕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어떤 이는 성취 이후에 더 오만해 지고 결국 자기 자신을 망치고 가정을 망치기도 합니다.

 

톨스토이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간은 노예이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인가에 완전히 붙들려 사는 것이 좋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의 노예냐 라는 것이다. 자기 정욕의 노예가 되면 인간의 노예요, 반면 (긍정적적인 측면에서?)정신적 본원 그것의 노예가 되면 신의 노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가? 내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무엇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궁극적인 관심은 어디에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2)
다른 하나는 성공의 방법입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합당한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목적이 방법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고로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성공을 원하는 우리에게 영원히 변치 않을 인생 경영 지침을 말씀해 주십니다. 함께 말씀을 나누며 은혜가 되기를 원합니다.)

본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본문 5절에서“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라는 이 말씀속에는 인생 경영에 대한 아주 분명한 지침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나무 가지의 생존여부는 나무에 얼마나 잘 붙어 있느냐에 있습니다. 어쩌다 나무 가지가 나무에서 끊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말라 죽어버립니다. 해마다 봄을 맞으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나뭇가지를 볼 때마다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나무의 가지 끝이 움 돋는 것을 보십시오. 혹독한 겨울 내내 아무런 보호를 받은 바가 없었지만 그 가느다란 가지는 얼어 죽지 않고 생명을 움을 틔웁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나무에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뿌리로부터 물과 생명을 공급 받은 것입니다. 그만큼 나무와 가지는 절대적 생존의 관계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와 똑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5)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인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가진 돈이나 경험이나 지식으로 다 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끊어지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잘 살 수 없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살 궁리를 찾겠지만 이미 바른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뿌리요, 성도된 우리 모두는 예수께서 주시는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생명 되신 예수님께 붙어 있고 그 안에 거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내 마음안에 담아두고 사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늘 담아두는 것이 곧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없이 우리는 절대로 주님을 알 수도 사귈 수도 없습니다.

) 주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거하게 한다는 것이 구체적 의미 두 가지

그런데 문제는 주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거하게 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는 것입니다. 다음 두 가지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1)
첫째, 성경이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야 합니다.
말씀이 귀에 들린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게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뉴욕 총영사로 있었던 문봉주 장로는 평신도로서 성경을 탁월하게 가르치는 유명한 성경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는 총영사로 부임하면서 교민들을 대상으로 성경을 가르쳤는데 1,000명이 모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불교계의 반발로 중단되어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모태 신앙인이었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42년간을 교회 다녔습니다. 어느 주일아침 전날 밤에 늦도록 술을 마신 상태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찬송을 부르는데 술냄새가 나서 주변 사람들을 아주 곤란하게 한 적이 있었답니다. 부인이 입을 틀어막으면서 하는 말이 ‘집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날로 술을 끊기로 결심하고 대신 손에 성경을 들었습니다. 외교관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생애 처음으로 성경을 읽고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을 내던 중 위암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하고 항암과 방사선을 하는 동안 절망했지만 그 상황에서 그가 붙잡을 것은 성경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는 소위 성령에 눈이 뜨여지게 되었고 성경구절들은 속속 외워졌고, 성경의 맥이 보여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명목상 그리스도인이었던 사람, 그리고 세상 쾌락에 빠져있었던 사람이 그리하여 성경 선생이 되었습니다. 그가 말씀을 붙들었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붙잡아주셨고, 말씀을 사모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기 위해서는 말씀을 사랑하게 되어야 하고,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면 관심을 가지게 되고, 사랑하면 깨닫게 되고, 사랑하면 볼수 있게 됩니다.

 

신학자인 칼 바르트는 ‘보고 싶은 것이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서도 또 보고 싶고, 멀리 있으면 한없이 보고 싶고, 그 목소리를 듣고 싶고 끝도 없이 또 듣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는게 되면 우리 마음에 담기고 그 대상을 꼭 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사랑이 곧 하나님 사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자신(혹 당신)을 드러내(계시해) 주십니다. 말씀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말씀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알기를 원치 않는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믿음과 사랑은 공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말씀을 사랑하여 우리 마음에 품을 때, 그 말씀이 우리 존재의 한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 우리의 언어와 행동, 인격과 습관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와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 존재에 진리가 가득 차게 되면, 그 결과 성경이 말씀하시는 형통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7절은“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십니다. 기도 응답의 비결입니다. 우리 기도가 잘 응답되지 않을때, 내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기도했나?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가운데에서 기도했나?를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1:1-3에도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까이하고 순종하고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나무에 붙어 있는 나뭇가지의 모습입니다.


2)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긍정하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듣습니다. 들을 뿐만 아니라 긍정합니다. 들으면서 감동합니다. 전적으로 수긍합니다. 반론이 없습니다. 그의 말이라면 다 옳고 다 좋습니다. 그래서 다 들어줍니다. 그것이 사랑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번 어느 목사님이 자기 교회의 한 형제자매를 결혼하기 전 상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의 교회의 형제에게 어떻게 사랑해 줄거냐고 목사님이 물었더니 하는 말이 아내에게 잡혀 살겁니다”라고 했데요. 그래서 목사님이 그거 잘 생각했다’고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상대의 모든 것을 다 긍정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한다면서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 때 ‘그건 말도 안돼’하고 잘라 버리고 자기 주장만 내세운다면? 그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사랑하게 되면 그저 그의 모든 것이 다 이쁘기만 합니다. 설혹 상대방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그냥 들어주고 싶어집ㄴ다. 납득이 안돼도 그렇게 해요. 그냥 져주고 싶어요. 그런데 늘 이기려 하고 상대방의 단점만 보이고 저 놈의 버릇은 고쳐줘야겠다고 하는 건 사랑의 마음은 아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긍정하고 받아들입니다. 하나님말씀에 미래와 운명을 맡기게 됩니다. 때로 이해가 안 되고 부담이 되어도 나의 부족함 탓으로 돌리고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나 여호수아가 그랬습니다.


여러분, 콩나물과 콩나무의 차이를 아십니까? 아시다시피 콩나물과 콩나무는 모두 콩을 씨앗으로 하여 자랍니다. 처음에는 똑같은 콩이지만 콩을 가진 사람의 생각이 어떠냐에 따라 콩나물이 되기도 하고 콩나무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하나의 콩으로 한줄기의 콩나물을 키워 먹는가 하면, 어떤 이는 동일한 콩으로 콩나무?를 키웁니다. 그래서 3060100, 1000배로 많은 콩을 거둡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똑같이 성경을 갖고는 있지만 성경관이 어떠냐에 따라 두 사람의 운명은 달라질 것입니다. 성경을 그냥 ‘좋은 말’(공자,석가,소크라테스 같은 분들의)로 볼 것인가? 천지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느냐는 것은 콩나물과 콩나무의 차이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실로 인생의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성경 말씀에 운명을 걸게 됩니다. 인생의 경영이나 성공과 승패는 나의 마음에 무엇을 심느냐, 무엇에 지배되느냐, 무엇의 종이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결론)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하나님은 말씀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마음을 나에게 달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도 우리를 늘 초청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에게 붙어있는 가지가 되어라!라고 하십니다.

과연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가지같이 세상의 즐거움 속에 던져져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잘 붙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말씀이 나를 지배하고 나를 사로잡아 이기게 해야 합니다. 거기에 구원의 역사가 있고, 능력이 있고, 힘이 있고, 성공과 축복이 있습니다. 읽고 듣고 배운 말씀안에서 구체적으로 주님 예수와 만나고 순종하며 교제하시기를 힘 쓰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계획과 경영이 이루어 질 것을 믿습니다.


          022724
안익선 목사/참조: 국제기독신문사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