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장 강해(아담의 계보)
서론)
창세기 5장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라 했습니다. '계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톨레도트'는 '계보', '후손', '역사', '내력'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 됩니다. 이 '톨레도트'는 단순히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적어 기록한 족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계보에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담겨 있으며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발자취가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담의 계보는 고대 근동 문헌들의 계보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형식과 매우 유사하며, 아담으로부터 시작해 노아에 이르는 10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노아에 이르는 10대를 누구는 누구를 '낳고-살고-죽었더라'는 형식으로 각 세대를 설명합니다.
창세기 5장에 기록된 아담으로부터 라멕까지 이어지는 족보에 등장한 이름들 중에는 창세기 4장의 가인의 계보에 기록된 이름과 동일한 이름도 있지만, 동명이인 입니다.
본론)
가) 아담의 초기 계보와 생애 (1~17)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1-2)]
[(1-2)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다른 피조물들처럼 단순히 지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연결된 영적인 삶을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을 복으로 삼고 순종으로 복된 삶의 자리에 머물기 보다는 몸과 눈과 마음의 욕구와 쾌락을 따라 선택하였고, 결국 죄와 사망의 지배 아래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족보는 한결같이 '죽었더라'라며 마침을 봅니다.
(3-5)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아벨의 죽음으로 아담의 가계는 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으로 나뉩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단순히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는 유토피아와 같은 곳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부족함 없는 관계에 기초한 복을 잃어버린 것이었으며, 그 결과 사랑으로 충만해야 할 가정은 깨어졌고, 인류 최초의 살인이 천국 같아야 할 가정에서 일어났습니다.
죄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아담이 마주한 죽음의 첫 모습은 자연현상과 같은 자연스러운 방식이 아닌 존속 살해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임을 당한 아벨을 대신하여 아담의 가정에 셋(사람)을 주셨습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아담은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기에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습니다. 최초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지만, 아담의 후손은 죄 가운데 태어나 사망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6-11)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아담은 130세에 셋을 낳았습니다. 아담에게는 가인과 아벨 그리고 셋 이외에도 다른 자녀들을 더 많이 계속 생산하였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5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아담의 계보는 단순히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기록한 내용이기 보다는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기 위한 기록이기에 아담의 다른 자녀들은 생략하고 아담에게서 셋으로 이어진 것을 보여 줍니다.
즉, 창세기 5장에서 소개하는 아담의 계보는 모든 자녀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아니고 자녀들 중에 장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도 아닌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인류 역사에 나타났는가를 드러내기 위해 선별된 사람들의 계보라고할 수 있습니다.
셋은 105세에 에노스를 낳았습니다. 에노스라는 이름의 뜻은 '연약함' 또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에노스가 태어났던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26절)는 것은 사람이들이 비로소 인생의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인간은 단지 '에노스' 같을 뿐임을 깨달아 선포했음을 나타냅니다. 에노스는 90세에 게난을 낳은 후 85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고 905세에 죽었습니다.
[(12-17)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게난은 ‘소유’, ‘대장장이’, ‘창 쓰는 사람’ 등의 뜻일 것으로 추측되며 70세에 마할랄렐을 낳았습니다. 마할랄렐은 ‘찬양’이라는 뜻의 ‘마할랄’과 하나님을 뜻하는 ‘엘’이 결합되어 ‘하나님께 찬양’이라는 뜻입니다.
마할랄렐은 65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의 뜻은 ‘내려가다’입니다. 이는 보다 좋은 목초지를 찾아 남쪽으로 이동했던 생활을 반영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마할랄렐은 야렛을 낳은 후 83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고 895세에 죽었습니다.
나)에녹 시대의 족보와 생애의 요약 (18-24)
[(18-24)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야렛은 162세에 에녹을 낳았고 그 이름의 뜻은 ‘감화시키다’, ‘가르치다’입니다. 에녹은 10명으로 구성된 아담의 계보에서 7번째로 소개되었습니다. 에녹은 죽음의 족보에 나열된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죽음을 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며 에녹의 일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녹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을 살았는지 성경은 세세히 말하지 않지만, 창세기 5장 22-24절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음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행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걷다’라는 뜻입니다. 에녹은 300년 동안 이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데려가셨습니다. 아담의 계보에 소개된 10명의 사람이 별세한 나이의 평균은 857세입니다. 이 땅에서 365년 밖에 살지 못한 에녹을 제외하면 나머지 9명의 평균 수명은 912세나 됩니다. 에녹은 그들에 비해 평균에도 못미치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는 오래 사는 것을 욕망하는 모든 아담의 후손들에게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짧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아담의 상당수의 자녀들이 900년을 족히 살았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러나 천 년을 하루와 같이 여기시는 하나님(벧후 3:8)의 입장에서 보면 고작 인간의 일생은 하루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에녹 이외에는 누구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죄악 중에 출생하여 자녀를 낳고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이후 하나님과 동행하습니다. 즉, 므두셀라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특별한 계기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은 ‘창을 던지는 사람’입니다. 고대에 도시와 도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그 도시 입구에서 창을 던지는 사람이 도시를 지켰는데 그가 바로 므두셀라입니다.
실제로 므두셀라가 969세로 죽었던 해에 홍수의 심판이있었습니다. 므두셀라는 아담의 계보에서 가장 장수한 사람으로 기록되었지만, 그의 일생은 영생의 시간에 비하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어 마르는 들풀과 같았습니다. 에녹은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달았고 그의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 지은 후 평생에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것입니다.
다)므두셀라와 노아의 족보와 생애(25-32)
[(25-32) 므두셀라는 백팔십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라멕은 백팔십이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고 했어요.
25절의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습니다. 노아의 이름의 뜻은 ‘쉬다’, ‘안식하다’입니다.
라멕은 하나님의 저주로 사람의 일생이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는 수고하는 삶인 것을 알았기에 노아를 통해 쉼과 안식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노아라 이름하였던 것같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단순히 땀과 수고가 없는 편안함을 이 땅에 전해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물이 쏟아져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샬롬(안식?)을 이 땅에 전해준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론)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595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고 777세에 죽었으며, 노아는 500세를 지나며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습니다. 아담의 계보를 통하여 죄와 사망의 지배 아래에 있는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발견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담의 후손 대부분들이 수 백년을 살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몰랐던 것처럼 우리는 무병장수나 부귀공명을 욕망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진지한 성찰 없이 살았던 부분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임을 기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지키며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070524 안익선 목사/ 참조: 최현준 님
'창세기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7장 강해(방주로 들어 간 생물들과 홍수 심판의 시작) (0) | 2024.08.17 |
---|---|
창세기 6장 강해(홍수 대 심판과 구원의 방주) (0) | 2024.07.18 |
창세기 4장 강해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 (0) | 2024.07.18 |
창세기 3장 강해 (원시 복음의 시작) (0) | 2024.07.18 |
창세기 2장 강해 (에덴 동산을 만드신 하나님) (0) | 2024.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