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제사장의 축복 (민 6:22~27)

호걸영웅 2008. 8. 26. 09:48

                   제사장의 축복 (민 6:22~27)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백성들을 축복하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이다. 제사장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내려 주신다는 약속이다(27).


제사장은 주님의 복을 위임받아서,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제사장이 주님의 이름에 의존하여 축복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복을 주신다. 따라서 제사장은,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복의 전령이요, 복의 통로다.


이 말씀은 현 시대의, 축도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목사님이 축도를 할 때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라는 구절을 사용한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제사장 아론의 축복에 기원을 둔다.


따라서 복의 통로로 세우신 하나님의 종들은, 그 직분이 귀한 만큼, 성결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명하신 일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이 교만하여, 하나님처럼 행세하거나, 자기를 내세운다면, 무서운 징계를 받게 된다.


아론의 아들 중에,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으로서의 자기 신분을 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서, 여호와께 분향하다가(레10:1),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삼켜, 죽임을 당했다.


또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의 신분을 망각하고, 성전에서 봉사하는 여인들과 동침하고, 하나님의 예물에 손을 대며, 제사를 멸시하였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같은 날 블레셋 사람들에게,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게 된다.



1. 제사장의 축복은,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통로가 된다.


축복한다는 말은, 히브리어 ‘무릎꿇는다’는 말에서 왔다.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며, 하나님을 송축하게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통로가 된다는 말이다.


(1)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직무(민6:23)

제사장은 하나님의 자녀를 축복하는 직분이다.

  정말 너무 고귀한 일을 감당하는 직분이다.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축복할 때, 어린아이들을 가슴에 않고, 머리를 꼭 붙들어 준다. 어린아이가 머리를 돌려, 축복하는 자의 손을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는 말씀을 믿고, 축복하는 자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기 때문이다.


 (2) 성도들을 통해, 세상이 복을 받는다(창12:2).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미완료형)”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실 때, 그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다. (창12:3)에는 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바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셨다.


  이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오늘날 모든 믿는 자들의 믿음의 조상이요, 복이 되었다. 하지만 아브라함만 아니라, 주님의 부름에 순종하는 사람은, 모두 복이 될 수 있다. 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내려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러주셨기 때문이다.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이처럼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사람은, 왕 같은 제사장이다. 성도는,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있는 직분을 맡게 되었다. 정말 보잘것없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내려주시니,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이제 우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복을 빌 수 있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모든 신자는 제사장”이라고 하였다. 성도는 세상을 축복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목회자와 성도 간에 차별은 없지만, 구별은 있다. 목회자와 성도의 직무의 우열을 가린다면, 바람직하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지만, 분명히 그 직무는 서로 다르다.


(3) 부모님을 통해, 가정이 복을 받는다.


나이가 많아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이삭이지만,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온 야곱을 축복하므로, 야곱이 큰복을 받았다.


  반면 이삭의 축복을 받지 못한 에서는, 에돔 족속의 시조가 되고, 그의 후손들은 이삭의 말대로 칼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되는, 안타까운 처지에 이르게 된다. 또한 야곱도 죽기 전에, 그의 아들을 축복하는데, 후에 축복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자녀를 위한 부모의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마치 목회자가 성도들을 위해 축복할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듯이, 부모의 축복은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며,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훌륭한 자녀는 돈으로 키워지지 않는다. 부모의 축복과 기도로 자라난다.


  링컨은 가난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낸시가 어려서부터 축복하며 키워낸 자녀였다. 주색과 방탕에 빠졌던 어거스틴을 위대한 성자로 변화시킴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눈물로 기도하며 축복했던 어머니 모니카였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은, 먼저 복을 받고, 자녀를 축복하시기 바란다.


2. 제사장의 축복의 내용(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성경에 나타난 모든 축복 중에, 가장 짜임새 있고, 아름다운 구절이다. 모두 미완료형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그대로 임하시기를 축복한다.  그러면 어떤 복인가?


(1) 지켜주시는 복(24)


  ‘지킨다’는 말은 ‘솨마르(ר󰗫�󰚂�)’인데, “(가시로) 울타리를 친다”는 의미다. 악한 원수 마귀는 조금도 쉬지 않고, 우리 인생을 향해 공격해온다. 때로는 간교한 유혹으로, 때로는 무서운 핍박과 환란으로 공격한다. 이때 악한 원수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서 철저하게 지킨다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신다. 마귀의 목표는 어찌하든지, 인간을 넘어뜨리고, 멸망에 이르게 하려는 목적이다. (요10:10) “도둑이 오는 적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벧전5:8)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하였다.


  . (시121:3-4)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게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2) 은혜 베푸시는 복(25)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얼굴’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의지를 상징한다. 잠을 자는 어린 아기를, 사랑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엄마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우신다는 말은, 인간에게 절망과 죽음을 의미한다. (욥13:24)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이 개인이나 단체를 향할 때에는, 하나님의 생명과 구원과 기쁨을 충만히 주신다는 의미다.


  출33장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내가 맹세한 땅을 너희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사자를 보내서, 그 땅에 거하는 자들을 다 쫓아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셌다. 그리나 너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신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퍼하였다(1-4).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축복은, 진정한 축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조건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자비를 말씀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얼굴’은 최대의 축복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하여 비추신다.


(3) 평강 주시기를 원한다(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평강은 히브리어로 ‘샬롬’인데, ‘완전, 평안, 강건’등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오는 평화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지 못하면, 그 영혼이 곤고하고 불안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죄의 은총을 받은 후에, 진정한 평안을 경험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평강은, 환경조건 때문에 잠시 즐거워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예수 안에서 얻는 영적 평안, 내적 평안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


  결론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은, 복을 비는 마음이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은 많아도, 주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남을 해치려는 사람은 많아도, 도우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남을 저주하는 사람은 많아도, 축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어두워진다.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을 따뜻하고, 부드러운 세상으로 만들어 가야 할 사명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와 축복을 받고, 축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008.8.23.편집:익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