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대하16장 9 )

호걸영웅 2012. 2. 16. 07:13

대하16장 9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이익로 역대기상하

2011/02/20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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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16장 9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이익로 목사 2010. 3. 7

효민성결교회 http://hyomin.or.kr/





오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에“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땅을 두루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찾고자 온 땅을 살피실까요? 사람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은 많은데 사람이 귀하게 때문입니다. 두루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에 발탁된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영광스럽고 축복된 일입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한 미군 병사의 눈에 띄어 세계적 인물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 목사이며 극동방송국 설립자겸 사장인 김장환 목사입니다. 김장환 목사는 2000년 7월 5일 쿠바 아바나에서 제19대 침례교회세계연맹(BWA) 총회장에 피선된 바가 있습니다. 침례교회세계연맹(BWA)에 속한 침례교인은 전 세계에 1억 6000만 명에 달하며, 미국에만 50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침례교회세계연맹(BWA) 총회장은 서구선진사회의 존경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김장환 목사는 경기도 화성에서 끼니를 걱정하는 가난한 소작농 가정의 5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17세 때 6.25 동란이 발발했습니다. 1.4후퇴 때 퇴각한 미군들이 수원교도소의 죄수들을 다 풀어주고 비어 있는 교도소에 잠시 머물게 되었습니다. 김장환 목사는 친구들과 담장 밖에서 미군부대를 구경을 하고 있을 때, 한 미군이 여러 친구 중에서 김장환 소년을 지목하여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미군은 그를 막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난로를 가리키며 불을 지펴달라는 시늉을 했습니다. 눈치 빠른 김장환 소년은 재빨리 논두렁에 박아 놓은 말뚝을 뽑아 와서 난롯불을 피우고 시키지도 않은 청소까지 깨끗하게 해놓았습니다. 신발까지 반짝반짝하게 닦아 놓자 영특하고 부지런한 그를 매일 오게 했습니다. 부대가 경북 경산으로 내려갈 때도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전쟁 중이라 막내아들을 타지로 보내는 것이 걱정스러웠던 어머니는 반대했지만 김장환 소년은 영어도 배우고 돈도 벌고 싶어 미군을 따라 나섰습니다. 일을 하고 받은 초콜릿이나 담배를 시장에 내다 팔면 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군들을 따라 경산에 도착한 김장환은 정식 하우스보이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경산에는 4개의 막사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막사에서 20명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군인들은 김장환에게「빌리」라는 미국식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하우스보이는 특별한 월급을 받지 않는 대신 미군들이 버리는 보급품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미군들은 영리하고 부지런한 김장환 소년을 사랑하여 여러 가지 선물을 주기도 했습니다.

김장환은 외로울 때면 나무 아래서 하모니카를 불었습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학교에 다시 가게 될지, 어떨지 모르는 답답한 날들이 이어지는 때였습니다. 어느 날 나무 밑에서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김장환에게 낯선 미군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다른 막사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칼 파워스 상사였습니다. 당시 22세였던 칼 파워스 상사는 폭격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부모와 생이별한 어린이들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그때 그는 단 한명의 아이라도 이 전쟁에서 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옆 막사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김장환을 눈여겨보았던 것입니다. 칼 파워스 상사는 한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김장환 손년을 미국으로 데려가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후견인이 되었습니다. 칼 파워스씨는 심지어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김장환 목사를 도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미국에서 공부한 김장환 목사는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갈 파워스 상사의 눈에 발탁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한 미군 병사의 눈에 띈 것이 김장환 이라는 시골 소년의 일생을 바꿔놓았습니다. 하물며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눈에 발탁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 대하여 자세히 살피고 계심을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피시는 하나님은 사람들의 생각을 아십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아십니다. 사람들의 앉고 일어섬을 아십니다. 통촉하시는 하나님의 눈길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습니다. 캄캄한 어두움도, 깊은 땅속도, 높은 하늘 위나 그 어디에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시편 139편 1절~4절에 밝히시기를“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온 땅을 두루 살피시면서 찾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一.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본문 역대하 16장 9절 말씀에“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전심(全心)이란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렌즈로 햇빛을 한 곳에 모으면 엄동설한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불이 붙습니다. 이처럼 전심(全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이 그를 발탁하여 귀하게 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곳곳에 하나님을 섬기되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신명기 6장 5절에“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하셨습니다. 정성이 결여된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온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매사의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하나님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최우선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철저히 구별하며 살아갑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것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날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일입니다. 출애굽기 20장 9절~11절 말씀에 기록하시기를“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오늘날 주일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정성을 다해 주일을 지키게 됩니다.


모 대학교의 모 교수님은 학문적으로도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지신 학자이시고, 또 신앙적으로도 아주 왕성한 활동을 하는 장로님이었습니다. 이 교수님이 어느 날 주일예배를 빼먹는 실수를 했습니다. 당시 연구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마감일 때문에 논문을 쓰시느라고 주일 아침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 분이 시간을 보니까 도저히 주일예배에 갔다 와서는 논문을 완성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논문을 다 완성시켜 놓고 저녁에 설교하시기로 약속된 교회에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다시 컴퓨터를 켜고 논문을 다시 한번 점검하려고 보니 주일 한나절 내내 열심히 썼던 그 논문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분명히 파일을 저장 했는데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교수는 원래 과학기술원에서 일했던 분으로 컴퓨터에 대해서는 전문가였습니다. 그러니 그 분이 실수하셨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어쨌든 주일예배도 빼먹고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면서 완성해놓았던 논문인데 사라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할 수 없이 그 날 밤을 꼬박 새우면서 다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논문을 다시 쓰면서“장로가 되어 가지고 일 때문에 주일예배 빼먹었다고 하나님께서 슬쩍 치워버리셨군요. 하나님 참으로 죄송합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주일은 사람의 날이 아닌 하나님의 날입니다.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주일에는 육신의 양식이 내리는 날이 아닙니다. 광야를 지나던 백성들의 경우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에도 만나를 구하고자 광야에 나간 사람들을 보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주일이 얼마나 소중하면 십계명에까지 4계명에 기록하셨겠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물질이 있습니다.

말라기 3장 7절~12절에 하나님 소유의 물질에 대해 말씀하시기를“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 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셨습니다. 물질의 1/10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득의 십일조는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것을 드리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도둑을 신임할 사람은 아무도 없듯, 하나님은 결코 이러한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말라기 3장 7절을 보면 특히 십일조는 하나님께로 돌아간 증거이며, 십일조는 내게로부터 등을 돌리셨던 하나님께서 내게로 돌아오시게 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내 몸은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지만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증거로 보시는 것입니다.

매월 수천만 원씩 십일조를 드린다는 참존 화장품 김광석 회장(장로)의 경험담입니다. 그가 예수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십일조를 하라는 설교를 들었습니다.“부자가 되고 싶으면 십일조부터 하라”는 대목에서 “이제 갓 교회에 출석한 사람에게 무슨 십일조란 말인가. 그리고 이익이 남아야 십일조를 하는 것이지, 적자투성이 회사를 운영하는데 무슨 십일조인가. 더구나 거에 아직도 8억 3천만 원의 부채가 남아 있지 않은가(1970년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돈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된다는 권면과, 십일조는 모자라지 않게 넉넉히 해야 된다는 말씀을 믿고, 실천한 결과 몇 십 년째 수천만 원씩 십의 2조를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집이 있습니다.

시편 122장 6절~9절에 말씀하시기를“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 소유의 건물로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처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집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이 그 어떤 건물보다도 소중하고 거룩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정성을 다해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나 교회를 통해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안함과 건강과 형통함을 거듭거듭 약속하셨습니다.“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책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말씀하시기를“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2차 대전 중 뉴턴 베이커 미 국방장관이 프랑스의 야전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두 다리와 두 팔을 다 잃어 마치 축구공처럼 보이는 병사가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장관은 자기가 서명한 성경을 그의 가슴에 놓고 떠났습니다. 너무나 불쌍해서 아무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종전 후 베이커 씨는 명문인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이사장으로 있었습니다. 어느 졸업식 때 그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축구공 같았던 바로 그 병사가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곁에는 결혼한 부인까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감격의 재회를 하였습니다. 팔다리 없는 박사가 말하기를“그때 저에게 주신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참 생명이시고 빛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저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에 발탁되기를 바라십니까?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성경을 많이 읽으십시오. 이제 봄이 되어 우리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성경공부를 시작합니다. 좀 힘이 들어도 성경을 배우십시오. 듣고 배우고 깨달은 대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빛이 있고, 여기에 위로가 있고, 여기에 신비한 능력이 있고, 승리가 있습니다. 신명기 11장 13절에 약속하시기를“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셔서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게 하셔서 먹을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지금도 온 세상을 두루 살피시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二. 하나님은 참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 말씀에“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는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예배란“인간이 최상의 가치를 최상의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행위”입니다. 신학적 의미에서의 예배란“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시요, 절대적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대하여 존경과 복종과 경외와 숭배를 표현하는 인간 최고의 도덕행위를 의미한다.”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실내의 모든 기물들은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강단의 마이크도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특징은 사물 자체가 존재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마이크는 마이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크게 하여 예배드리며 말씀을 듣는 성도들을 위해 있습니다. 이 강단은 강단자체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설교단상으로 쓰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수입을 늘려 마음껏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자식 낳으며 희희낙락(喜喜樂樂)하다가 죽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데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말씀하시기를“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5~6에도“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이것이 인간 존재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 예배를 받으시고자 인간을 창조 하셨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삶의 방편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예배드리며 위로를 받고, 은혜를 받고, 새 힘을 얻는 나를 위한 삶의 방편이 아니라, 예배는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버는 것이 본업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본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밝히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광야를 지날 때 언제나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진을 쳤습니다. 성막이란 하나님을 만나는 처소로서 오늘날 교회를 가리킵니다. 우리 성도들도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교회중심, 예배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예배드리는 것과 드리지 않는 것의 차이입니다. 참된 신자와 그렇지 못한 신자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소홀히 여기는 것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받아 누리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예배의 차이입니다.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큰 복을 받아 누린 다윗 왕과 다른 왕들의 경우에서 알 수 있습니다. 다윗 신앙의 특징은 온 정성을 다해 성전을 사랑했으며 언제나 예배중심의 삶을 살아간 것이었습니다.


보스턴 지역에서 유명한 설교가로 잘 알려진 A. J. 골든 목사님이 어느 날 목양실에서 설교를 준비하다가 피곤하여 책상에 엎드려 깜박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일날 교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인들 가운데 나이가 30세 정도의 낯선 사람이 앉아 있는데 왠지 모르게 시선이 자꾸 그 사람에게로 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예배가 끝난 다음에 그 낯선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교인들이 목사님과 인사를 나누고 다 교회 밖으로 나갔는데 그 낯선 사람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안내위원들에게 그 낯선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안내위원이 하는 말이 “아, 그 사람요? 알고 말구요 그 사람은 예수라고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라고 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예배가운데 오셔서 앉아 계신다고 믿고 설교를 했습니다. 교인들도 예수님께서 오셔서 앉아 계신다고 믿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예배시간마다 새로운 감동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후 교회는 더욱 능력 있게 부흥했고 합니다.


예배는 이곳에 임재해 계시는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곳에 임재해 계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면 예배에 임하는 우리의 마음과 자세가 달라질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가 곧 신령과 진정이 예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예배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전도, 구제, 사랑의 교제, 봉사 등도 교회가 꼭해야할 중요한 일들입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할 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교회에서 해야 할 모든 일들 가운데 예배가 최우선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며, 예배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예배를 통해 영혼이 새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결과가 전도, 봉사, 구제, 친교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승리는 곧 신앙생활의 승리입니다. 신앙생활의 승리는 곧 삶의 승리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도 온 땅을 두루 살피시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을 찾으실까요?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잃어버린 보물을 찾듯, 간절히 찾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과 함께 하셔서 축복하시고자 찾으시는 것입니다.


온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한 사람의 예배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온 땅을 두루 다니시며 이 시간도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눈에 합당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0-03-07 10:2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