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야 강해

첫사랑을 찾으라 (이사야 1:21-31)

호걸영웅 2013. 5. 9. 01:58

첫사랑을 찾으라 (이사야 1:21-31)

 

[] 1: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 1:22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 1:23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 1: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 1:25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 1:26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

[] 1:27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 1:28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 1:29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 1:30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 1:31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첫사랑을 찾으라 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한국인은 유시유종이 매우 드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과 끝이 다르기가 일수라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 살 때 여름철이면 딸기를 종종 사먹게 됩니다. 딸기가 굵고 탐스러워 좀 비싸더라도 사게 됩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위 칸을 먹고 다음 칸을 먹으려면 알이 잘아지고 맙니다. 때로는 상한 것들도 종종 있습니다. 욕이 나오게 됩니다. 처음과 나중이 다른 것은 하나의 속임수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처음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면 기뻐하십니다. 처음같지 않은 사랑 역시 처음과 같이 회복시키시길 원하십니다. 계시록에서도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하시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십니다.

본문)

)원래 예루살렘에도 처음에는 신실함과 공평과 의리가 있었습니다.

1.“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 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라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본래 모습은 신실하고 공평이 있었고 의리가 있었습니다.

신실한 사람은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며 입술에 낸 말은 그대로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실한 사람은 말은 신뢰할 만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하루 세 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 사자 굴에 들어갈 위험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이때도 변함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결국 승리했습니다. 이런 신실한 기도를 통하여 다니엘은 이방 땅에서 승리하 고 바벨론과 메데 왕국에 걸쳐서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를 예언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찌되었든지 이사야가 살던 당시의 예루살렘은 신실함이 사라지고 창녀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처음 남편을 버리고 돈만 주면 어떤 남자에게든지 몸을 주듯 하였습니다.


2. 과거 예루살렘은 공평함이 있었습니다.

공평은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평등함을 의미합니다. 가장 흔히 쓰는 예로 측정단위인 저울이나 됫박을 동일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공평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고자하였으나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기 때문이였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사울의 후손을 평생 보살피는 공의로운 왕이었습니다. 이렇게 공의로운 사람은 나를 중심으로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공평치 못한 사람은, 나의 것을 사용할 때는 큰 것을 사용하고, 남의 것을 사용할 때는 작은 것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부자를 판단할 때는 법 적용을 헐렁하게 하고, 가난한 자를 판단할 때는 법을 엄격하게 하면 이는 공평치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예루살렘은 살인자 집단의 거주지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연약한 사람들을 함부로 죽였습니다.

23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지도자는 돈을 더 좋아하고 사례물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뇌물을 주는 사람 편을 들어서 재판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돈이 없는 과부나 고아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된 일을 판단할 때는 관대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일을 판단할 때는 엄격합니다. 또한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합니다. 남이 천천히 운전해 가면 거북이 운전이고 내가 천천히 가면 안전 운전이 됩니다. 남이 다른 여자와 사귀면 스캔들이고 내가 사귀면 로맨스입니다. 내가 땅을 사면 투자고 남이 땅을 사면 투기입니다. 어느 것도 공정한 판단이 아닙니다. 판단은 하나님 편에서 서서 중심을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공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본래 예루살렘에는 의리가 있었습니다.

룻은 의리가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남편이 죽고, 시아버지와 시아주버니가 죽고, 동서가 집을 떠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시어머니 나오미와의 의리를 지켰습니다.

다윗은 요나단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의 아들 므비보셋을 평생 왕과 함께 밥을 먹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의리가 있는 사람은 부부간에 이혼하지 않습니다. 의리가 있는 목자는 양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기도합니다. 의리가 있는 양은 목자나 교회를 함부로 떠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돕기 위해서 자신에게 돌을 던진 유대땅으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때 도마는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죽으러 가지고 하였습니다. 도마는 부활신앙은 없었지만 예수님과 의리를 죽음으로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22절은 말합니다.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순결성을 상실했습니다. 은과 찌끼가 섞였습니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습니다. 포도주에 물이 섞이면 맛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살면서 가나안 땅의 사람들이 섬기는 종교를 함께 섬겼습니다. 그들은 농경의 신인 바알을 섬겼고 풍요의 신인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당시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섬겼지만 돈을 더 섬겼습니다.

요즘도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종교 혼합주의가 있습니다. 교회는 기복주의에, 물들었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복만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생각하는 것은 불교신자와 같이 운명적이고 인과응보적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하는 지도자인데 생각하는 것은 유교적인 권위주의에 물들어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마음에는 돈을 숭배하고 명예를 숭배하고 쾌락을 숭배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성경보다 내 생각이 앞장을 섭니다. 동성연애는 분명한 죄인데 지난 월요일 오바마는 그들을 두둔하고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였습니다. 동성연애자가 시를 낭송하였습니다. 오바마는 해선 안될 말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홀히 여길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징계요 고난이요 심판입니다. 차기 오바마 정부는 이전의 4년과는 전혀 다른 재앙과 환란이 있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 될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혼합주의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의 모습으로 회복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실 것을 한편 생각하시니 마음은 심히 슬프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피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하고 혼합주의가 된 이스라엘을 대적이요 원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에게 복수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대적이 되어서 심판하시는 이유는 이들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이들의 심판을 통하여 이들을 성결하게 하며 순수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은을 어떻게 순전하게 만들 수 있습니까? 은을 용광로 속에 넣어 높은 온도로 태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불시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러워진 옷감은 펄펄 꿇는 물에 양잿물로 삶아야 합니다. 그래야 혼잡물과 불순물은 다 녹아서 없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북이스라엘 아람 블레셋 에돔의 군대를 보내사 많이 죽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이들을 순전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깨끗하고 순수한 신앙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어야 합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같이 본래와 같이 회복시키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의의 성읍, 신실한 성읍, 공평의 성읍이 되게 하십니다.

여기서 처음같이 본래와 같이가 중요한 말입니다. 이는 처음과 같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열정적으로 만든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 예수님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났을 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때는 예배 시간이 기다려졌고 말씀공부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말씀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처음의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

계시록 2: 3,4절을 보면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를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27절로 갑니다.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공평과 의로 돌아가기 위해서 구속하십니다. 구속이라는 말은 노예시장에서 값을 주고 노예를 사서 자유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좇아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값을 치러 주셨습니다.


28-31절입니다. 결론부입니다.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하십니다. 여호와를 버린 자들은 망하게 됩니다. 이들은 회개치 않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택한 동산에서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고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받게 됩니다. 시들어 잎사귀 마른 상수리 나무 같아지고 물 없는 동산 같아집니다. 그들은 삼의 끈이나 불티와 같이 타서 사라지게 됩니다. 마른 풀로 만든 끈이 얼마나 불에 잘 타겠습니까? 우리가 처음으로 돌아가서 순순하고 열정적인 믿음을 갖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처음사랑으로 돌아가야 신실함과 공의와 신의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아멘!

참고: 오요한 편집:안익선 201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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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사야 12부 메시지 처음과 같이 |작성자 onoin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