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야 강해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사1:1~20)

호걸영웅 2013. 5. 9. 02:01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 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 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 1: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 1: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 1: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 1: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 하나님은 사랑의 징계를 하셨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를 대셨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매를 때리셨습니다. 그들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었습니다. 곪은 곳을 짜며 싸매며 치료함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의 땅은 외적의 침입으로 황무하였고 성읍이 불에 탔습니다. 토지는 이방인이 점령하였습니다. 그곳을 재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곳을 또다시 외적이 침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아람 왕과 이스라엘 연합군을 보내서 징계하셨습니다. 아람 왕은 하루 동안에 용사 12만 명을 죽였습니다. 왕자, 궁내 대신, 총리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아람왕은 북이스라엘에서도 많은 사람을 죽이고 20만 명을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이렇게 매를 때리신 이유는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백성들은 이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회개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더욱 더욱 패역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불신의 쓴 뿌리를 가지고 대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다시 매를 드셨습니다. 이번에는 불레셋과 에돔을 보내사 이들을 치셨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유다의 평지와 남방 성읍들을 침공하여 벧세메스와 아얄론과 그데롯과 소고와 딤나와 김소와 그 동네들을 점령케 하였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유다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당시의 강대국인 앗수르를 의지하였습니다. 앗수르왕에게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하스 왕은 심히 고통스럽자 이번에는 자신을 침공한 아람의 신들을 데려다고 섬기고 분향하였습니다. 아람신이 하나님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은 구제 불능이었습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대항하는 이들을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처럼 불로 완전히 심판하실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가운데도 소망을 남겨 두셨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심판하지 않으시고 포도원의 망대처럼 참외밭의 원두막처럼 조금 남겨 두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소망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렇게 남겨두 시고 이들 남은 자를 통하여 메시야를 보내시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동기가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징계하는 목적은 이들을 훈련시켜서 쓰시고자 하시는 소망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심하게 때리십니다. 그러나 죽기까지는 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징계하시는 중에도 남은 자를 통하여 구원역사의 소망을 가지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통하여 마침내 죄악 된 이스라엘을 구원할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죄악 된 이스라엘과 온 인류를 때리는 대신에 메시야 그리스도를 때리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맞은 모습을 보면 메시야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5,6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 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이 모습은 바로 빌라도의 뜰에서 심판받고 채찍으로 맞고 가시면류관 쓰는 모든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는 예수님의 매맞는 모습을 보다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머리부터 발끝 가지 성한 곳이 별로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매를 맞고도 싸매고 치료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모습이 언래 나의 모습이어야 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만 하는 것입니다.

) 유다는 하나님의 징계를 경외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같고 고모라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소돔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멸시하였듯이 말씀을 멸시하였습니다. 롯의 사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듯이,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겼습 니다. 성적으로 문란함이 극에 달하였고 동성애가 난무했습니다. 폭력이 그 성에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소돔과 고모라 처럼 멸하지 않으시고 이들에게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은혜의 말씀으로 초청하십니다.

11-1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 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 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열심히 종교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들은 무수한 제물을 바쳤습니다.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월초와 안식일과 여러 부흥 성회로 자주 모였습니다. 그리고 손을 펴고 기도하였습니다. 많이 기도하였습니다. 이 정도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이 모여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제물을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제물을 가증히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이는 것이 무거운 짐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손을 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눈을 가리우십니다. 그들이 부르짖어 기도하면 귀를 막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무엇입니까?

첫째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이러 온다. 마당만 밟을 뿐이다 라는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행위는 있었지만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봐, 예배에 나가고 사람들이 안 좋게 볼까 봐 헌금을 드렸습니다. 마음이 없는 신자들은 헛되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행위도 보시지만 마음도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마음과 행위로 함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둘째 악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제물만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도 보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악은 사랑이나 진실된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말라기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말라기 16-10절입니다.

아들은 아비를 어렵게 알고 종은 주인을 어렵게 아는 법인데 나를 아비로 어렵게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나를 주인으로 어렵게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나 만군의 야훼가 너희 사제들에 게 말하였다.

'너희 사제라는 것들은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있다.' 그랬더니, 너희는 뻔뻔스럽게도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 너희는 제단 위에 더러운 빵을 바치면서도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제단을 더럽히다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야훼의 제삿상 쯤이야 아무러면 어떠냐고 하는구나.

눈이 먼 짐승을 제단에 바치면서도 잘못이 없다는 말이냐?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바치면서도 잘못이 없다는 말이냐? 그런 것을 너희 고관에게 바쳐보아라.

나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그러고도 융숭한 대접을 받을 것 같으냐? 그 따위를 바치면서 긍휼을 빈다고 너희를 곱게 보아주겠느냐?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너희는 내 제단에 공연히 불을 피운다. 그러지 못하도록 아예 문을 닫아걸었으면 좋겠구나. 너희가 하는 짓이 나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너희가 바치는 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제사를 지내면서도 하나님을 멸시하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더러운 떡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먹지 못하고, 팔지 못하는 눈 빠지고 병든 양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것은 총독에게 바쳐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총독만도 못하게 여겼습니다.

우리가 예배에 경외심이나 성실함,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나 정성이 없이 참석한다든지 마지못해 봉사하거나 헌금하는 것 따위와 공통성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한 주간 내내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토요일 밤늦게까지 게임하고 세상 일에 골몰하다가 주일날 나와서 말씀을 듣는 둥 마는 둥 왔다 갔다 한다든지 하는 것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준비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아벨처럼 우리의 가정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셋째 약자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16-18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지 않으며 고아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뇌물을 따라서 판결하고 약자를 탄압했습니다. 그들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와 변론하기를 원하십니다. 일종의 법정투쟁이라고 할까요?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고 하십니다. 변론하자는 말은 논리적으로 한번 따져 보자는 것입니다. 과연 그들이 잘하고 있는지 따져 보자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했는지 따져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조목조목 말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낱낱히 자신의 죄들을 생각해 보 아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를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늦었더라도 그들이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는 진홍 같고 주홍 같아서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붉을지라도 하나님은 흰 눈처럼 양털처럼 희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우리의 과거의 죄악을 기억도 하겠다고 하십니다.

우리에겐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지워주십니다. 도말 하실 수 있으십니다. 도말(塗抹)이란 말은 "페인트 칠을 해서 지우거나 없앤다"는 뜻입니다.

작년 가을 제가 사택에 새로 입주했는데 벽이 제법 더러웠었지요? 보기가 많이 흉하였습니다. 그런데 성우와 제가 페인트를 벽이니 난간이니 천정이니 이심일 수고하여 발랐더니 얼마나 깨끗하고 보기가 좋습니까? 물론 우리 교회도 페인트 칠할 것이 많습니다. 금년 겨울이 지나면서 날씨가 좋아지면 페인트를 새로 칠해야 될 것입니다. 어쨋든 지저분한 건물이라 할지라도 새 칠을 하면 새 집(뉴 하우스)처럼 되는 것이지요. 더러운 것이 전혀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우리 죄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의 피로 페인트 칠 하면 하나님도 그것을 보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죄의 논리적인 이유입니다.

저는 주일학교에서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 세가지"라는 제목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못하시는 세가지는 뭘까요?

먼저 하나님은 죄를 짓지 못하시고, 두 번째는 하나님은 죄를 그냥 두고 보지 못하십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의 피로 도말 한 우리의 죄를 못 보신다는 것입니다.할렐루야!

이제, 19,20절을 보십시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즐겨 순종하여 죄를 회개하면 죄를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배반하여 회개치 않으면 칼에 삼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

기도하시겠습니다.

자료 출처: 오요한/ 편집:익선 2013.1.15.

[출처] 이사야 11부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작성자 onoin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