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권해야 할 이유 (사25:6-12, 참고;눅14: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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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25:6 |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
[사] 25:7 |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
[사] 25:8 |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
서론) 사25:1-5절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체험하는 것들, 곧 그의 위엄과 공의,그리고 은혜입니다. 6-8절은 하나님의 은혜의 잔치와 초청에 대한 말씀이고, 9-끝까지는 모압에 대한 경고입니다. 오늘은 그 핵심이 되는 하나님의 초청에 대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영원한 천국의 은총에 참여하는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초청이 있습니다.
회사의 사장님이 어느 직원을 은밀히 불러 파티에 초청을 했다면 그 사원은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충성을 다짐할 것이며, 나라의 대통령이 만약 저와 여러분을 초청해 준다면 이것은 큰 행운이요 가문의 영광이라고까지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들의 초대는 극히 제한된 초대요, 신분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초대입니다. 어떤 잔치는 잔치와 함께 악을 행하는 잔치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니엘서 5장에 벨사살 왕이 대신들과 귀인들을 초대하여 잔치할 때, 전쟁에서 탈취한 하나님 성전 기명을 가지고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실 때 갑자기 손 하나가 나타나 맞은편 벽에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 즉 “저울에 달아보니 모자랐다”는 글을 보고 충격을 받고 그 날 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6장에 헤롯 왕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하는 중에 동생의 아내를 취했던 그가 조카 딸 살로메의 춤을 보고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는 말을 했다가 새로 맞은 아내 헤로디아의 요청을 받고 동생의 아내를 취한 부도덕함을 책망한 침례 요한의 목을 베는 악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2)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의 초대는 차별이 없고, 상하가 없고, 구별이 없습니다. 남녀노소, 인종의 차별이 없고,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이 그 누구도 제한하지 않는 초청입니다. 사55:1-2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때에, 가끔 잔치 자리에 계실 때 세상 사람들의 지탄을 받았던 세리와 죄인들이 같이 있는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어떠한 죄인도 참여할 수 있는 천국 잔치입니다. 이러한 초청의 내용이 성경 여러 곳에 나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불교는 초상집 같고, 유교는 제삿 집 같고, 기독교는 잔치하는 집과 같다.' 대개 절에 가면 계속 향불을 피우기 때문에 초상집에 온 기분이 납니다. 그래서 불교는 깊이 믿으면 믿을수록 허무해집니다. 불교에서는 극락을 말합니다. 이 세상은 욕심 때문에 고통이 생기는데 극락은 욕심이 없는 곳 '미르바나'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열반, '무념무상'의 땅입니다. 생각해 보면 허무한 것입니다.
유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있기 때문에 제사 지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유교는 믿으면 믿을수록 격식을 따지는 일에 골몰하게 됩니다. 공자는 조문도 석사가의라고 했습니다.(뜻 풀이). 도를 구하기는 하지만 도를 얻지는 못합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가 있기에 믿음 안에서 금새 도에 이르게 됩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기독교는 찬양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기독교를 믿으면 믿을수록 기쁨이 충만하고 감사와 즐거움이 넘칩니다. 성결해 지고 영혼이 아름다워 집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잔치하는 집과 같습니다.
3)하나님나라 잔치의 초청은 천국에로의 초청입니다.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는 자들은 두 종류의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첫 번째 잔치는 현재적인 잔치로 이 땅에서의 잔치에 참여하는 예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국잔치는 죽어서만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확한 말은 아닙니다. 천국 잔치를 지금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천국을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교회,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가정,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공동체가 바로 그 잔치자리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가 바로 천국 잔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시간에 풍성한 음식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영혼의 양식인 말씀의 푸른 초장, 성령을 통한 은혜의 물가로 인도 하시고, 때로 성만찬의 거룩한 식탁에 초대하시어 거룩한 영적 교제를 나누게 되는 은총을 받습니다.
두 번째 잔치는 주님 오실 때 참여하는 잔치입니다.
계19:9절에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는 누가 참석합니까? 하나님의 초청장을 받고서 수락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참석을 합니다. 이미 세상에서 천국 잔치의 기쁨을 맛본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땅 위에 사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혼인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잔치의 풍성함에 대해, 본문 사25:6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 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수께서는 천국의 기쁨을 맛보고 있는 성도들은 함께 이 기쁨을 맛보도록 강권하여 하나님의 집을 채우라 하신 것입니다.
2.영원한 심판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강권해야 합니다.
1)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은 구원의 기회를 잃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본문 말씀의 주제는 주인으로서 우리를 위해 잔치를 베푸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랑이란 주고 싶은 마음,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더불어 살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오늘 본문에 잔치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영국인이 요크셔 해안에 아름다운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해안 한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바다를 향해 불쑥 나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영국인은 딸을 데리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들이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는 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야, 위를 올려다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아래를 내려다보아라." 아버지의 말대로 딸은 하늘이 비춰지는 바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이번엔 저 앞을 내다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했습니다. "내 딸 도로시야, 이처럼 높고 한없이 깊고 끝없이 넓고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말을 들은 딸은 아버지를 향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이처럼 높고 깊고 끝없이 광활하다면 우리는 그 한가운데서 살고 있군요."하고 똑똑히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딸의 이 말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기꺼이 초청에 응하지만 이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않는 자들은 주님의 초청을 거절 합니다.
2)많은 사람들이 핑계를 대며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본문 눅14:18에 다 일치하여 사양했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은 밭을 사서 가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육적인 재산을 늘리는 일에 바빠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 보다 구원의 은혜보다 육신적인 재산 늘리는 일에 더 기쁨을 두고 재물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은 소를 다섯 겨리를 샀기 때문에 시험 하느라 초대에 응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소는 밭을 가는데, 짐을 싫어 나르는데 유용한 동물입니다. 그에게 큰 힘이 되는 요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 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고 살지만 주님을 떠난 자들은 자신의 힘, 물질의 힘, 권력의 힘을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그 힘을 가지고 남을 짓밟고, 빼앗고, 과시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사욕과 정욕을 만족하게 하는 불의의 도구로 악용하고, 남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장가들어 가지 못하겠다고 거절 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새로 장가 든 사람에게 일 년간 병역 등을 면제해 주는 것은 아내를 즐겁게 해 주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장가들었다는 핑계로 주님의 초청을 거절하는 것은 더 귀한 즐거움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시급합니까? 무엇이 우선순위여야 합니까? 더 중요한 일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더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을 반드시 구분하여 행동하여야 합니다.
3)주님의 초청을 거절한 자들에게 다른 잔치가 있고, 영원한 심판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한 자들에 대한 심판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까? 새들의 잔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계19:17-21에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 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 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들이 산 채로 유황불 불 못에 던져지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했습니다.
17절에 '새들의 잔치'라고 하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큰 잔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잔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새들이 모든 자들의 살을 먹는다고 합니다.
끔찍한 잔치입니다. 새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거부하고 저주한 사람들의 살을 먹는다고 것입니다. 여기에 참여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와 미혹된 자들, 불신앙의 세상 임금과 장군들, 우상 숭배자들, 거짓 신앙을 가진 종교인들입니다. 이들을 위해 예비 된 곳은 불 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는 가족, 친척, 친구, 동료들 중에서 아직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이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도록 강권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3.강권 하는 일은 구원 받은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본분입니다.
1)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잔치 시간은 다 되었는데 모두 바쁘다는 핑계로 초청 받아 온 사람들이 없자 분노하셨습니다. 이들은 전에 잔치에 참여하겠다고 수락한 적이 있었고 또 그 초청을 기뻐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 수효에 맞추어 음식을 장만하고 자리를 준비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2장의 말씀을 보면 큰 주인이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고 함께 즐기자고 합니다. 그러나 믿었던 사람들이 초청을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준비한 모든 음식이 쓸모 없이 되어버리게 됐습니다.
분노한 주인은 다시 종들에게 명합니다.“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눅 14:21).
종들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시내의 거리와 골목을 뛰어다니며 가난한 사람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 시각장애인들, 다리를 저는 사람들을 데려다 잔치 자리에 앉게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아직도 빈자리가 있다는 종들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아직 주인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마지막으로 종들에게 명합니다.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3). 이제는 성 밖으로 더 멀리 퍼져 나가서 만나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상관하지 말고 사람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의미하는 마지막 통첩입니다. 가슴 아프고 애절한 주인,곧 하나님의 요청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명하시는 말씀입니다.
2)강권하는 일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입은 성도가 주님을 본받아 사랑을 실천할 때 여러 모양으로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구제하는 모습으로, 봉사하는 모습으로, 섬기는 모습으로, 용기와 소망을 주는 모습으로,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는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그 외에 여러 모습으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의 실천은 복음을 전하여 주님을 믿게 하는 일입니다. 그 일은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주님께서 지상 명령으로 주신 것입니다.
어떤 신학교에서 설교학 시간에 설교실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신학생이 처음 실습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순서가 되어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긴장이 되어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어떨 결에 입을 연 그는 "여러분,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모든 청중들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때 그 학생은 "여러분이 모르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하고 내려왔습니다. 노발대발한 교수는 다음 날도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또 할 말을 잃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학생들이 웃으면서 "다 압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그 학생은 "여러분이 다 아는 것을 제가 말할 필요는 없지요." 라고 말하고 강단에서 내려왔습니다.
화가 난 교수가 그 다음 날에도 다시 그를 강단에 세웠습니다. 다음날 강단에 올라간 이 학생은 또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제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아십니까?" 이때 학생들은 웅성웅성 하면서 안다는 학생도 있었고 모른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 때 이 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에게 전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이 학교의 전도표제가 되었습니다. "예수를 아는 사람은 예수를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를 전해주자" 이것이 전도입니다. 주님의 지상 명령을 따라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의 증인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3)강권하는 일은 가장 큰 보람과 상급이 따르게 됩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게 되면 누구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함께 구원의 은총과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일이니 얼마나 보람이 따르겠습니까? 얼마나 큰 상급이 따르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어린 양 잔치의 즐거움에 초대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일 그 자체가 큰 잔치입니다. 큰 축제라는 말입니다. 부활의 축제, 구원의 축제, 영원한 축제입니다. 우리는 먼저 믿어 이 축제에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한 권속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사람을 강권하여 주님 앞으로 데려 와야 합니다. 나만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고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나만 기뻐하며 즐거워할 일이 아닙니다. 이 가슴 벅찬 잔치에 어찌 나 혼자 즐길 수 있겠습니까? 더불어 즐겨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도, 내 친구도 함께 즐겨야만 합니다. 나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이 이 잔치를 함께 즐겨야만 합니다. 이것이 잔치를 베풀고 초청하시는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결론)
오늘도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고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며 "사람들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하신 우리 주님의 간절한 부탁을 몸으로 실천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신실한 복음의 청지기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참고:참 좋은 군사/편집:익선 201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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