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다(
사 35;1-10)
[사] 35:1 |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
[사] 35:2 |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
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
[사] 35:3 |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 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 주며 |
[사] 35:4
|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
[사] 35:5 |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
[사] 35:6 |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
[사] 35:7 |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
[사] 35:8 |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
[사] 35:9 |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
[사] 35:10 |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
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
서론)
어떤
목사님이 이스라엘에서 한 달 동안에 집을 한 채 빌려서 5명의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였다고 합니다. 그 때에 차를 몰고 ‘엔게디’라는 곳의 근처를 달리는데 종려(대추야자)나무 농장이 펼쳐졌습니다. 마침 종려 열매를 추수하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종려 추수하는 장면을 보고 싶어서 농장에 들어 갔습니다.
크레인을 놓고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종려 열매를 따고 있었습니다.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멜
정도로 컸습니다. 한 송이에 10만원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농장이 주인은 손님을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수많은 관광객이 우리 농장 옆을 지나가지요. 그러나 우리 농장에 들른 관광객은 당신들뿐이요>
그리고 라면 상자로 한 상자 정도될 종려열매를 주었답니다. 그것을 한 달 동안 5명이 실컷 먹었답니다. 그 목사님과 주인과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답니다.
<종려 나무가 몇 수 인가요?>
<1000수 정도이지요>
<한 나무에서 일년에 얼마나 수확하나요?>
<한 나무에서 100만원 가량 벌고 있지요>
<일년 수입이 10억 원 정도되는 군요. 그런데
이 사막에 비가 오나요?>
<일년 내내 비가 오지 않지요>
<그러면 물은 어디서 끌어 오나요?>
<엔게디에서 파이프로 연결시켜 끌고 오지요. 일년 내내 햇빛이 비치고 밑에 물을 충분히
공급하니까 물도 많고 일조량도 많아서 당도가 높아서 꿀같이 단 종려가 되지요.
사막이라도 물만 있으면 최고의 땅이지요.>라고 했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사막에서도 물만 있으면 최고로 달콤한 결실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사막에 물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최고의 축복을 선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사막과 같은 생활이란 어떤 생활일까요?
본론)
가)사막생활이란
무엇인가?
1. 변화가 심한 생활
사막의 특징은 변화가 심합니다. 낮에는 강철을 녹일 듯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밤이면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가서 얼음이 어는 곳이 사막입니다.
낮에는 철판에 달걀을 깨뜨리면서 후라이드가 되고, 밤에는 조그만 물기가 있어도 얼어 붙기도
합니다. 사막은 변화가 많습니다.
바람도 많습니다. 한번 바람이 불면 막히는 것이 없으니까 요란하게 폭풍처럼 불어 닥칩니다. 그래서 모래 산이 이 곳 저 곳으로 옮겨 다니기에 금방 길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변화가 많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사막과 같은 삶입니다.
정신적으로도 사막 생활이 있습니다.
기분이 좋았다가 기분이 우울하여 지는 때가 빈번합니다. 해가 났다 비가 왔다 그런 생활을
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하늘을 나를 것 같은 데, 기분이
안 좋을 때에는 장맛비 속에 살 듯이 우울합니다. 사막 같은 정신상태입니다.
어느
남자가 벤츠를 샀습니다. 2억 원짜리 자동차입니다. 보험에
아직 들기도 전에 아내가 타고 나갔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습니다. 그 남자는 헤헤대고 웃다가 엉엉
울다가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원수 같은 아내가 죽어서 웃는 것이고 자동차 생각나면 아까워서 우는 겁니다>
인생도 종종 사막 같은 생활이 있습니다. 종잡을 수 없습니다.
영적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승리감에 도취되었을 때에는 엘리야처럼 혼자서 이방 바알 선지자 400여명을 혼자서도 죽일
능력이 나옵니다. 그러나 한번 좌절하고 나니까 광야로 도망가서 나무 밑에 누워 한탄합니다.
<하나님! 죽기에 넉넉하오니 내 생명 거두어 주옵소서>…그래서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2. 열매가 없는 생활
사막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나무도 풀도 자라지 못 하는 곳에 무슨 열매가 있을 가요? 나무도 없고 물도 없는 곳에 열매가 있을 수 없습니다. 도무지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사막의 생활입니다. 이리 뛰고 저리
일하는 것 같은 데 열매가 없습니다. 소득이 없습니다. 결실이
없습니다.
(학 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되는 일이 없습니다. 탈무드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랍비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랍비님! 나는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습니다. 우산
장사를 시작하였더니 가뭄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영복 장사를 시작하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선풍기 장사를 시작하였더니 냉해가 왔습니다. 옷 장사를 시작하였더니
날씨가 갑자기 따뜻하여졌습니다. 장의사를 개업하였더니 사람이 죽지 않습니다.
하는 일마다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 가요? 먹고
살 수가 없어요>
랍비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음식점을 하세요. 최소한 굶지는 않을 거예요>
이것이 사막생활입니다. 사막생활은 도무지 되는 일이 없습니다.
3. 안정이 없는 생활
사막은 지나만 가는 곳입니다. 아무리 오아시스가 있어도 지나만 가지 머물러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도무지 안정이 없습니다. 공중에 붕 떠있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1. 변화가 심한 생활 2. 열매가 없는 생활 3. 안정이
없는 생활
이런 생활은 사막생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뻐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런 사막 같은 인생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물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런 약속을 하였습니다.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불신자들)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7-8)라고 하십니다.
나)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3가지 축복의 약속을 주고 있습니다.
1. 옥토 약속
이사야는 먼저 옥토의 약속을 주고 있습니다.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샘물이 솟아나는 곳)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7)
내 인생 사막에 하나님의 물을 쏟아 부어 주시면 연못이 생깁니다. 임시로 물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원천은 샘물입니다. 영원히 영원히 솟아나는 물입니다. 다윗 시대에 엔게디(사해 서쪽 계곡 지역)에 물이 있었습니다. 가서 보면 사방이 사막지역인데 그 곳만 원천이
있어서 작은 폭포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 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 물이 지금도 흐르고 있습니다. 수 천년 동안 물이 끊어지지 않고
흐르고 있습니다.
사막이라도 일단 물이 계속 흐르면 세 가지 풀들이 자라게 됬습니다.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사막이라도 물만 있으면 옥토가 됩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와서 같이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흉년으로 같이 애굽으로 떠났습니다. 돌아 올
때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둘 다,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할 때는 같이 사는 것이 가능하였는데, 재산이 많아 지니까 같이 살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성경은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창 13;6)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같이 있으며 다투는 것보다는 헤어져도 서로 편안함이 더 낫다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롯’에게 말했습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롯이 눈을 들어 보니 물이 넉넉하고 좋은 ‘요단
들판’이 보였습니다.롯은 ‘요단
들’을 선택하고 그 곳으로 떠났습니다.그 후를 보면 재미있는 결론을 볼 수가 있습니다.
롯이
하브라함을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동서남북에 바라보이는 땅을 모두를
그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손도 티끌같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롯은 재산의 상실, 아내의 죽음, 딸들과
불륜의 관계 등 가정은 쑥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사한 땅 소알 땅은 나쁜 땅이었으나, 나중에는 축복의 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2. 대로 약속
이사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8)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까 사막이 옥토가 되어 사람들이 많이 살다 보니, 그 곳에 대로가
뚫렸습니다. 대로라는 말은 듣기만 하여도 시원합니다.
사막에
하나님이 물을 주시니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막과 같은 내 생활에 하나님이 은총의 물을 주시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잘난 척하고 교만하면 안 됩니다.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가면 원수 마귀는 다 떠나 도망치게 됩니다.
부산 모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일본으로 새우를 수출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사장이 부도로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부하로
있던 그 장로님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사장님! 사장님이 감옥에 가서 앉아 계시면 우리 회사는 쓰러집니다. 내가 다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가 앉아 있을 터이니 사장이 수습하시고 내가 다시 나오면 섬기겠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갔습니다. 6개월 감옥에서 살다가 나왔습니다. 그 동안 사장님은 모든 것을 잘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맙다고
하면서 조그만 새우회사 분점을 하나 내주었습니다. 장로님은 더욱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지금은 그 전 사장님의 회사 보다 그 장로님 회사가 더 큰 회사가 되었답니다.
사막과 같은 생활이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면 대로가 열립니다. 그런 은총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3. 기쁨과 즐거움의 약속
사막과 같은 생활이라도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기쁨과 즐거움의 생활이 되게 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10)
사막은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사막의 삭막함이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이어지는 곳이 될 것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론) 돌 투성이 사막이던 엔게디가 엄청난 종려나무 농장이 되었듯이, 하나님은
사막을 옥토로.사막을 대로로, 사막을 기쁨과 즐거움의 장소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여러분, 모두 역시 각박한 사막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축복의 물 댄 동산같이 변화되어지는 은혜를 입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013.8.6.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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