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정금 같은 믿음이 되려면(욥 23:10-17)

호걸영웅 2013. 8. 30. 05:52

 

정금 같은 믿음이 되려면( 23:10-17)

 

[]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 23: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 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 23:13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 23:14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 23:15

그러므로 내가 그의 앞에서 떨며 이를 생각하고 그를 두려워하는구나

[] 23:16

하나님이 나로 낙심케 하시며 전능자가 나로 두렵게 하시나니

[] 23:17

이는 어두움으로 나를 끊지 아니하셨고 흑암으로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셨음이니라

서론)

1.-본문 10절에는 정금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정금순금이라고도 하는데, 100% 순금을 24K(캐럿)으로 표시합니다.  금은 물렁한 금속이기에, 용도에 따라 은이나 구리 등의 다른 금속을 섞는데, 다른 금속 속의 순금 무게 정도에 따라, 18K 금은 순금함량이 75%이고, 14K 금의 순금 함량은 58.3%라고 합니다.

 보통 금화는 90%, 치과 보철은 83.3~91.7%, 장신구는 75%, 금 펜촉은 58.3%의 금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고로 값으로 따지면 순금, 곧 정금이 가장 비싼 금이라 하겠습니다.

2. 요즈음 청소년들을 보면 예전의 우리들 보다 체격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청소년들은 체격은 크지만 체력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시력과 구강 상태가 매우 나빠졌습니다. 체격에 비해서 지구력(끈기)이 많이 적어졌다고 합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의 모습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들은 성장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알지만, 영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신앙인의 모습을 많이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내심이나 기다리는 힘, 포용력 등이 부족해졌다는 것입니다.

 

3. 생활 속의 인내가 중요합니다.
사람마다 그 믿음도 다 차이가 있습니다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나이 75세에, 자녀를 주어서 아브라함의 족속을 번성케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었습니다

그것도 이미 사라의 상태가 생리적으로 임신을 할 수 없는, 그 나이에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10년이란 세월이 지나자, 아브라함 부부는 조급해 지기 시작 했습니다
결국 약속의 자손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여종인
하갈을 취하여 아들 이스마엘을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적어서 오래 참아 기다리지 못한 결과입니다. 결국
하갈이 잉태를 하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
여종
하갈이 본처인 사라에게 말하기를 너는 잉태도 못하는 것이라 조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한 결과 가정 불화가 극심하게 되었고, 결국  
이삭이 태어나자 얼마 못되어, 하갈 모자는 광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참 믿음의 삶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점을 우린 이해해야 합니다. 아울러 본문이 말하는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는 길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단락 23:1-9절에서 욥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 무죄를 변론하고자 갈망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침묵하심을 탄식하였습니다.그리고 단락에선 자신의 무죄 결백에 대해 진술하고 하나님의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 있습니다.

결국 욥이 시련을 이기고 정금 같은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을까?

본문에 그 답이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삶을 살아야 한다 했습니.(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10 말씀은 욥의 신앙고백입니다.

욥이 그전에는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자 했지만 찾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자신이 곁에서 역사하시지만, 자신은 하나님을 발견할 없음을 탄식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누구시며, 인생의 바다 속에서 자기의 삶을 이끌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이해할 없는 상황에 대해, 극심한 슬픔과 원망의 감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길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자신의 무죄를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욥의 무죄를 알고 계시기에, 결국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발견할 수도 이해할 없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하나님께서 자기 삶을 가장 좋은 곳으로 하실 것이라는 아름다운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백합니다.

 

자기의 무죄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이라는 고백인 동시에, 시련이 그치고 나면 하나님이 자신을 다시 높이되 처음보다 높이실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욥기 말미에서는 욥의 시련이 끝난 , 욥은 7명의 아들과 명의 딸을 다시 두었습니다.

가축의 숫자는 갑절이 되었습니다.

 

물론 욥이 시련을 받기 전에는, 그가 의인 중에 의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엔 사실 아직도 완벽한 믿음의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정금 같은 믿음이 되려면 아직도 많이 부족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이 보실 때에는 아직도 허술한 구석이 많은 믿음임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우리도 구원받은 성도이긴 하지만, 살다 보면 의도적이든 부지불식간이든, 죄를 짓게 되는 경우가 허다함을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시련이라는 용광로에 집어넣고, 고난이란 열을 1000도이든 3000 이든, 원하시는 만큼 가열하셔서, 나의 덜된 , 스스로 고개를 뻣뻣하게 치켜든 것들, 교만, 자아, 탐욕스러움 등의 불순물을 모두 불태워 사라지게 되길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때 단순한 용광로에서 열만 가하는 것이 아니라, 담금질을 통해 두드려 강도를 높이십니다.

정금이나 강철 따위는, 이와 같은 연단과 정제의 과정을 거쳐서 겨우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 때, 얼마나 우리는 힘이 들까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차라리 죽는 게 나을걸!!! 하나님 날 그냥 죽여버리세요!!! 하고 속으로 부르짖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도 목숨이 붙어있는 한, 견디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에,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를 시련 속에 던지실 때도 있으시지만, 악한 길이나 멸망의 길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험산준령을 넘어야 하는 강한 훈련과제를 주시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을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강한 신앙의 사람과 정금 같은 순수한 신앙의 사람으로 키우고자 하시는 믿으시길 바랍니다.

 

고로 다윗은 시119:71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 간증을 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시련을 이기고 정금같이 나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전하게 지켜야 합니다.(11-12)

 

사람은 먹는 즐거움에 매우 큰 행복을 느낍니다. 배부르고 편히 누워 쉴 수 있다면 왕이 어찌 부럽겠습니까?

 그러나 욥은, 자신은 일정한 음식보다 하나님의 입의 말씀귀히 여겼다고 자랑 같은 고백합니다.

일정한 음식이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규칙적으로 먹어야 하는 모든 양식을 말합니다. 단백질도 필요하고 칼슘도 철분도 소금기도 필요합니다.

 

사람이 사흘을 굶으면 담을 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먹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긴 하지만, 욥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음식, 삶에 여유를 주고 기쁨과 행복을 주는 음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 말씀을 먹으며, 기도를 마시며, 찬양의 노래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고로, 4:4에서“사람이 떡으로만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것이니라.”고 예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육의 양식이나 영혼의 양식이함께 필요한 것이지만, 육의 양식보다 귀한 것이 영혼의 양식입니다.

왜냐하면 육의 양식 오늘에 필요한 것이지만, 영혼의 양식 영원한 것이기에, 영의 양식을 더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시련을 이기고 정금같이 나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에 순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13-17)

 

13-14절에서 욥은, 하나님께서 뜻을 일단 정하셨으니 아무도 그분의 뜻을 돌이킬 수도 없으며, 결국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을 그대로 행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 뜻이라면, 현재 나에게 임한 모든 고난과 시련을 달게 받아 들이겠다는 것입니다.

 

일부 종교인들이 해보자! 하면 된다! 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되게 하라 것과 되어지는 다릅니다. 내가 모든 것을 이룰 있다는 인본주의적 사고방식에 하나님의 뜻까지 침범하거나 왜곡해선 된다는 것입니다.

 

긍정의 힘의 저자, 죠엘 오스틴은 몰몬교도 기독교라 인정합니다. 아닌 것을 맞다고 하는 것이 긍정의 힘입니까? 그것은 사람의 힘이지 하나님의 힘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몰몬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우린 긍정의 힘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순종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인간이 막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바꾼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뜻이 근본적으로 철회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성도의 기도를 포함시키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수명을 좀더 연장시키신다든가,병을 낫게하신다든가,사업을 부흥하게 하시는 등은, 다 하나님의 뜻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도 하나님 뜻과 다를 땐, 들어 줄 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고로 약1:17은 “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의 십자가 죽음이 변할 없는 성부 하나님의 뜻인 알았기에, 전지전능하신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조차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시거나 유대 종교인들과 로마 군인을 죽이시지 않고 스스로 자원하여 십자가를 선택하신 줄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백도 마26:39에서 “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신 예수님의 고백과 같은 고백을 할 줄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기의 의지와 뜻과 생각을 철저하게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가운데 소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5: 3-4>은“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암이니라”고 했습니다.

2,
고로 성도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길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
인내를 온전히 이루려면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
미국의 “팀 티보우”(Tim Tebow)라는 선수의 이야기입니다>
현재 미식축구 선수인 그는 매우 인기 있는 선수라고 합니다
.
그는 필리핀 선교사의 자녀로 태어났는데, 어머니가 임신을 했을 때 바이러스에 감염 되어서, 의사는 아기를 낙태를 시키라고 했지만, 끝까지 포기 하지 않고 출산을 하였다고 합니다
.
팀 티브의 어머니는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던 아이를, 집에서 “홈 스쿨”을 하면서 키웠답니다

그 과정 동안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고통과 고난을 겪었겠습니까?
그래도 자식에 대한 소망을 잃어 버리지 않고 끝까지 견뎠더니, 이제는 미식축구에 없어서는 안될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된 팀 티보우는 , 경기를 할 때 마다 얼굴에 성경구절을 그리고 시합을 하였는데,  심판들이 그렇게 못 하게 하니까, 다음에는 경기를 할 때마다 “세레머니”를 기도 하는 모습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소망의 줄을 끊어 버렸으면 그는 이세상에 존재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결론)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없는 고난에 직면한 욥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하면 마음이라도 후련할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보다 분명히 알게 된 욥은, 더 큰 믿음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더 큰 믿음에는 더 큰 축복이 따라 왔습니다.

 

욥은 감당키 어려운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보다도 욥을 더 잘 아시기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시련과 환난을 직접 감내하겠다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성도는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1)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2)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에 힘써야 합니다. 3)하나님 뜻을 늘 먼저 앞세울 줄 아는 성도가 되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한결같이!

모든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거룩한 삶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결국, 어떤 환난이든 이겨내며, 정금같이 변화되어 살아가는 , 여러분 모두가 되실 줄 믿습니다.     2013.8.24.익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