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야 강해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사42:1-9)

호걸영웅 2013. 8. 30. 06:01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42:1-9` http://blogimgs.naver.net/imgs/nblog/spc.gif )http://blogimgs.naver.net/imgs/nblog/spc.gif

 

[]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 42: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 42: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 42: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 42: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 42: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 42:7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 42: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 42: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오늘 우리가 봉독한 이사야 42 1-9절의 말씀은여호와의 종의 노래라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붙들려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 의해 구원될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42장에 들어와서는 구원의 영역이, 이스라엘아니라 세상 열방으로 까지 열려지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함을 예시하고 있습니다(42:9).

이스라엘 민족에 제한된 구원이 아니라 세상 모든 열방이 구원을 얻게 되는 영광스럽고 찬란한 미래의 도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종의 노래 통해서 선포하시는, 세계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경륜을 받아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제한된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잘못된 신앙 때문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사야서에는 모두 4편의여호와의 종의 노래 일컬어지는 시가 있습니다(42:1-9; 49:1-7; 50:4-9; 52:13-52:12). 이들 노래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특별히 보내실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이사야 42:1-9 첫번째여호와의 노래로써, 오실 메시아의 성품과 사역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으로 오시는 메시아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보증하시고 그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두려고 하는 것은 여호와의 종이신 메시아의 성품과 사역입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3절에 있습니다
.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

첫째로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신다 했습니다.

갈대(reed) 습지나 물가에서 자라나며 유프라테스 강 하류와 나일강 주변, 그리고 팔레스틴의 요단 강에서도 많이 자라나는 흔한 식물로 고대 근동의 문학이나 성경에 상징적, 비유적 표현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갈대는 연약하여 바람에 흔들리고 가지가 부러지기 쉬워서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곤 했습니다. 여기상한 갈대(a bruised reed) 문자 그대로 반쯤 부러진 상태의 갈대를 나타냅니다.

본문에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돌이킬 없을 만큼 타격을 입은 상태나 특별히 죄악으로 인해 영혼이 더러워진 인간의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인간들을 꺾어버리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사실 상한 갈대는 아무런 이용가치가 없기 때문에 내어다 버려도 별로 아깝지 않습니다
.

이런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는 말은, 장차 오실 하나님의 종이 육체적, 정신적, 영적 상태 모든 면에서 절망적인 상황, 비관적인 상황, 사망에 이르는 상황에 처한 인간들을 세상의 왕들처럼 무자비하게 심판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치유하여 새 생명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땅에 오신 우리 예수님께서는, 마치 상한 갈대처럼 세상에서 버림받고 아무런 소망도 기대할 없었던 죄인들, 세리들, 창녀들, 불치의 병에 걸려 있던 문둥병자들, 앉은뱅이, 중풍병자, 귀신들린 자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감싸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을 찾아가셔서 소망을 주시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다시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로는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등불 당시의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필수품이었습니다. 등불역시 고대근동문학에서 비유와 상징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에서도등불 어둠을 밝히는 빛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빛을 발하는등불 인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6;23), 인간의 양심(20:27),혹은 하나님의 축복(왕상15:4),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생명, 혹은 소망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18:6).

  세상에서 희망이 없이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 죄악의 어둠 가운데서 방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버리지 않고 그들에게 언제나 생명의 빛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꺼져가는 등불희미한 심지(dim flax), 또는연기 나는 심지(smoking flax) 의미합니다.

의미를 살려 공동번역에서는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하며 번역하였습니다. 기름이 없어 깜빡이면서 꺼져버리려는 순간이나, 혹은 꺼져서 연기가 나는 상태의 등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때의 등불은 등불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차라리 꺼버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은 이런 등불도 소중히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람이거나 시들어진 생명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메시아는 누구도 거부하지 않고 자비와 사랑으로 용납하여 주심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종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이미 사람들 앞에 떳떳이 나타날 없는 남편을 다섯이나 두었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찾아가셔서 그녀에게 삶의 소망을 주시고 삶의 공간을 열어주셨습니다.

일곱 귀신에 붙들려 절망스런 삶을 살던 막달라 마리아를 받아주시고, 귀신을 내쫓아 그녀를 속박하고 있던 사슬을 끊어 주셨음은 물론, 그녀에게 생명을 주시어 삶을 소생시켜 주셨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우리 주님은 결론적으로 택한 자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신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실망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목격할 때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을 후회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
1:2-9) 에서부터 하나님의 책망과 실망은 극에 달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무어라고 탄식하셨습니까? 가로되『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머리는 병들었고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
30:9-14) 에서도『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을 의지하니,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 그가 나라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웅덩이에서 물을 것도 얻지 못하리라』고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셔서, 원수의 손에서 건지셔서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
43:1-2)에성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것이라. 네가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 하십니다.


  가운데서도 물이 침몰치 못하게 것이며, 가운데 지난다 할지라도 불이 사르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택한 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까지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택한 자를 존귀히 여김을 받게 하시겠다는 다짐을 여러 하십니다. 이유는 택한 자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지은바 되었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43:21)

(2007. 4. 12일자) 동아일보에 이어령 씨의 개종기사가 실렸었습니다.

 이화대학 교수도 역임했고 문화부장관도 역임한 대표적인 학자요, 작가입니다. 그분은 상당한 기독교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3 입장에서 기독교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기독교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만 바라보던 그분이, 기독교신앙을 받아드리고 세례를 받겠다고 선언했다 해서 신문기사 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어령씨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드리고 교회를 다니기로 결심하는 데는 사랑하는 딸의 암 투병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영의 눈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민아(47)라는 그의 딸이 지난 15년간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 이겨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예수님을 발견하는데 역할 했습니다
.

미국으로 유학을 딸은,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어, 때는 로스앤젤레스 지방검사까지 역임했던 전도가 양양한 유망주였습니다. 그러나 딸이 1992 갑상선암 판정을 받으면서부터 시련이 불어 닥치기 시작했습니다. 수술을 받았지만 1996년과 1999 차례나 암이 재발했습니다.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딸의 둘째 아들이 특수자폐 아동으로 판정되어 지난 10년간 울지 않고 잠든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들의 치료를 위해 하와이로 이주를 하면서 받은 고통, 망막이 파열되어 시력을 잃어버렸던 일들로 하나님을 원망했었다는 것입니다
.

2007 43, 딸이 한국에 가서 새벽기도회 시간에 간증할 때에, 교우들은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이어령씨는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못해준 것을, 해준 분이 있다면 대단한 아니냐 세례를 받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이어령 씨의 이민아씨는 이혼과 함께 엄청난 시련을 겪으며,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까지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으셨음을 있습니다. 이제 잃었던 시력도 다시 찾고, 아버지까지 구원받게 했으니 하나님의 섭리는 신묘막측할 따름입니다. 이민아 시는 지금은 재발한 병으로 이 세상 사람은 아니로되 아비를 구원하는 귀한 씨앗이 되었고 지금 이어령 씨는 매우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천국에서 그 딸과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택한 자를 결코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패역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멀리 떠나 살아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이 너무 좋아 가끔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뿌리치고 맘대로 세상을 살려고 하는 때가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님 아들이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교인들이 아버지 험담을 하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결심만 앞섰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무시하는 교인들에게 복수하는 길은, 돈을 버는 길밖에 없다고 결심을 했답니다.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사업도 번창해갔습니다. 돈이 힘이 되어 제법 사회적 위치도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술에 취해 집으로 오는데, 누군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슬피 우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다가가보니 어머니였습니다. 아들의 손을 잡은 어머니가 통곡합니다. 아들아, 사랑하는 아들아, 언제까지 이더냐, 언제까지 이더냐? 돌아오너라. 돌아오너라.정신을 차려보니 환상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환상 중에 나타난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이 쏘아보면서아버지가 내게 것이 무엇이 있어. 아버지는 사업에만 미쳤지 내게 무얼 주었어!소리를 치더랍니다.

기가 막힐 일입니다. 어려서부터 가난한 목회자의 아들로 천대받던 일이 너무 싫어서 자식은 절대로 그렇게 기르지 않겠다고 열심히 사업을 하여 풍족하게 길렀는데, 아들의 반응은 아니었습니다. 내게 해준 것이 무엇이냐 아들의 반항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삶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

! 이것이 아니구나.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돈이 다가 아니구나. 우리 아버지는 비록 가난했어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있어서 우리를 반듯하게 기르셨는데 나는 아니었구나!”라고 하며 후회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42:6-7) 신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 백성을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 미국에서 서부개척바람이 한창 때입니다.

 시카고에 사는 하트만(Hartman)이라는 가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여러 아들들이 있었는데, 열아홉 셋째아들 (John) 속을 썩였습니다. 어느 아들의 비행을 아버지가 몹시 꾸짖었습니다. 나가라. 같은 자식을 적이 없다. 다시는 앞에 나타나지 말거라.아버지의 호령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자 아들은“나갑니다.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오라고 초대하기 전까지는 것입니다.”라며 집을 나갔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비통한 가슴을 안고 기다렸으나 아들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들은 서부 개척지로 떠났습니다. 서부에 가면 노다지 금광이 있다는 소문이 하늘을 덮고 있을 때였습니다. 캘리포니아로 일자리를 얻기 위한 마차를 타고 떠난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는 아들을 찾아 나서기 위해 재산을 팔았습니다. 나머지 자녀들과 아내가 먹고 만큼 재산을 남겨두고는 캘리포니아를 향해 떠났습니다. 서부개척 캠프마다 들려보았으나 언제나 한걸음씩 늦었습니다
.

캘리포니아까지 이르렀을 갖고 돈이 떨어졌습니다. 아들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집으로 그냥 가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바위에 페인트로 아들에게 글을 남겼습니다. 존아, 아버지가 너를 사랑한다. 집으로 오거라(John Hartman, your father loves you. Come home!). 서부개척 캐러반(이동하는 무리들) 지나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바위 위에 페인트로 글을 놓았습니다. 아들이 마침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

처음에는, 나를 내쫓을 때는 언제이고 이제는 오라구? 안 간다구. 안 갑니다.혼잣말로 반항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아버지의 글이 있었습니다. 아들 존아, 아버지가 너를 사랑한다. 집으로 돌아오거라.(John, my son, your father loves you. Come home, please. Come home, please!). 마침내 아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그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가야겠다. 아버지에게 가야겠다.(I am going home). 결국 아들은 아버지에게 돌아갔습니다. 디스 타임즈(These Times)라는 잡지에 실린 글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택함 받은 자녀들(the chosen children)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택함 받은 사람들입니다.

비록 한때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방황했었어도, 패역한 자녀로 죄를 짓고 타락했었어도, 실패하여 넘어져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나는 하나님이니라.(I am your Lord) 내가 너를 도우리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라고 지금도 우리에게 다가오시면서 말씀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13.8.27. 안익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