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야 강해

생각하여 보라 (사 51: 1~ )

호걸영웅 2013. 11. 7. 23:33

 

생각하여 보라 ( 51: 1~  )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각하여 보라는 말씀으로 오늘 우리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을 한 사람이 있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유명한 조각 작품도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면이 있는 사람이 될 때에 진정한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사람들이 깊은 생각 없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는 너무 바쁘다가 보니 생각 없이 틀에 매여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내가 세상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다가 하나님 앞에 설까를 생각하고, 장차와 나의 죽음 문제를 생각하면서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무의미하게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에 “생각하여 보라” 며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어려웠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그 어려움에서 벗어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그에게 복을 주어서 창성케 하였지만, 그의 자손들은 과거를 생각 안하고, 현재의 쾌락만을 쫓아서 눈에 보이는 만족만을 위하여 살아 갈 때에, 하나님은 한탄하시면서 과거를 생각하여 보라고 하시었습니다.

 

이사야서 1 3절은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왔고 현재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탄식하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알려고 힘쓰지도 않고 생각하기를 귀찮아합니다.

 

  전주에서 남원으로 기차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면 오수라는 정거장이 있습니다.  獒樹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는 주인이 잔칫집에 개를 데리고 가서 술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술에 취해 잔디밭에 누어서 잠이 들었을 때에 산불이 나서 불이 가까이 주인 곁으로 몰려 올 때에 같이 갔던 개가 주인을 깨워도 일어나지 않자 추운 겨울에 개가 물구덩이에 들어가서 털에 물을 적시어 그 주위를 적셔 놓아 불이 주인이 누운 곳에는 오지 못하고 그 주위에만 탔습니다. 주인이 술이 깬 후에 일어나 보니 개는 그만 그 옆에서 탈진하여 얼어 죽었습니다.  주인이 그 개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 자리에 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아직까지 있어서 그 동네 이름을 獒樹라고 오늘까지 부르고 있습니다.

 

개도 주인을 알고 은혜를 아는데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를 보답하기를 힘쓰면서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부담스러워 하지 말 것이요, 귀찮게 여기지 말고 감사히 생각하고, 그 은혜를 늘 생각하고 보답하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생각지를 못하기도 합니다.

 

  누가 나에게 1,000딸라를 주면 감사하고, 그 은혜를 생각하면서도, 평생토록 먹여 주시고 공기와 햇살과 물과 삶을 주시는 하나님께는 감사 드릴 줄도 모르고 생각 할 줄도 모릅니다.

 

목마를 때에 물 한 그릇을 먹고서는 감사를 하면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을 먹으면서는 감사를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캄캄한 밤에 촛불 하나 얻어 키고는 촛불을 준 사람에게 감사를 하지만, 밝은 태양을 주신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점심 한 그릇 얻어먹고 감사하는 사람이, 평생토록 양식을 대에 주시는 하나님께는 감사를 생각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일은 은혜가 너무 커서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크게 받았으니 크게 감사할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 할 줄을 아는 자녀가 됩시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하여야 하며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내게 지금 하나님이 주시고 은혜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보답하며 살아가는 생각하는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생각하여 보라 하시며 나를 한번 다시 돌아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한번 돌아봅시다.  나는 과연 무엇 인가도 한번 생각하여 봅시다.

 

1. 나의 연약함을 생각하여 보라

  이사야 2 22절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나는 강하고 힘이 있고 건강하고 오래 오래 살리라는 착각 속에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사람 같은 연약한 존재가 없는 것입니다. 호흡은 3분만 안 쉬어도 숨막혀 죽고, 모기에 물려서 학질에 걸려, 뇌염에 죽는 인간들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는 선교사의 고백은 선교하는 것보다 더 힘이 드는 것은 200여종이나 되는 말라리아 약을 먹는 것이라 합니다. 이 약을 1주일마다 한번씩 먹어야 하는데 귀찮아서 한번이라도 거르면 모기에 물려서 학질을 심히 앓게 되고 그러다가 죽습니다. 

 

우리 인간의 죽음은 너무나도 연약하여 허무함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천년, 만년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는 언제 숨이 끊어질지 모르는 연약한 인생입니다.

 

이러함을 생각하여 보고 장래를 생각하여 영원한 생명을 위한 생각을 하여 보아야 합니다.

  병들고 늙어야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닙니다. 젊어 죽는 자가 늙어 죽는 자보다 더 많습니다. 나의 연약함을 생각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우리 인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계용 목사가 40년간을 월남하여 홀로 살다가 은퇴를 한 후에 40년만에 북한을 찾아가서 부인을 만났습니다. 부인을 만난 후에 하룻밤을 손을 꼭 잡고 같이 잔 후에 갑자기 그곳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우리도 언제 이같이 갑작스런 예측 불허의 죽음을 맞을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연약함을 생각하여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항상 하면서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영원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할 우리 인생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여 보라

 

시편 116 12절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은 이와 같은 말이 나오게 됩니다. 

 

여러 성도님도 한번 생각하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가장 큰 은혜가 무엇인가?  이 은혜를 생각하고 하나님께 보답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큰 은혜를 받고서도 은혜를 잊어버리면, 하나님은 소나 나귀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탄식하십니다.

 

3. 나의 장래 일을 생각하여 보라.

   나의 장래는 무엇인가?  나는 20년전에, 10년 후의 장래를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내가 정상적으로 살아온 삶을 그대로 살아온다면 내가 그 때에는 환갑을 맞을 것이요 우리 아이들은 결혼을 하고 손자를 낳을 것입니다. 

지금 과거 10년을 돌아보니 그 꿈이 현실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10년은 지금까지 살아온 10년과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할지도 모르고, 내가 주 앞에 어떤 갑작스런 일로 인하여 주님 앞에 설지도 모릅니다.

  나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장래의 10년 일을 생각하다가 결론을 얻었습니다.

“모르겠다” 내일 일도 알 수 없는데, 내가 어찌 장래의 10년 앞의 일을 알까 하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겠다는 복음 성가 3장 “내일 일은 나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라는 노래로 결론을 내리었습니다.  

그날 그날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따라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고이다라는 결론을 내리었습니다.

  장래 일을 생각하여 보니 이제 주 앞에서는 날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는 것만을 알게 됩니다.

  믿음에 믿음을 더하고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고 사랑 위에 사랑을 더 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장래 10, 20년을 더 살수 있을지는 몰라도 100년을 더 살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생명의 날 동안 하루하루를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장차 분명한 사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게 됩니다.

그때에 상급과 칭찬을 받는 내가 되도록 이제부터 더욱 잘 준비하며 그날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여 보라.

  하나님의 사랑을 눈으로 보려고 하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도 나를 사랑하여 나에게 사람이 주어집니다.

  찬송가 404장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말로다 형용 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을 두루말이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기록하려 하여도 못다 할 것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랑을 깨닫는 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말로 형용 못합니다. 

나는 O. HENRY의 작품을 좋아하고 더구나 CHRISTMAS 선물이라는 단편을 더 좋아합니다.  부부간의 사랑이 보이지는 않지만 사랑이 나타나는 단편이기에 좋아합니다.

우리가 부자가 되고 돈을 많이 벌고 잘 살아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까요? 

하나님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시계 줄을 사기 위하여 머리를 짜른 델라가 남편을 사랑하는 사랑이나 아내의 빗을 사기

위하여 자기의 시계를 팔은 사랑 등은 보이지 않는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자기보다도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이 사랑인 듯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끈임 없이 이 보다 더 큰사랑으로 사랑을 주고 잇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눈에 안 보인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참으로 사랑을 모르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5. 하나님의 공의를, 심판을 생각하라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독생자를 주셨지만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천국도 지으시었고 처참하고 무서운 지옥도 만드셨습니다.

  요한 계시록 21 8절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도 하여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의의 하나님을 증거하고 심판을 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와 함께 거하실 수 없고, 죄인은 반드시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피로 인하여 죄가 사함 받아 죄가 없는 의인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천국에서 거하게 됩니다.

내가 과연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어떠한 심판을 받을까를 생각하여 보아야 합니다.

공의의 심판으로 엄격히 판결하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사죄로 의로움으로 나타나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상급을 많이 받는 우리가 되도록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생각하며 지금부터 잘 준비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정리:

  우리 인생은 생각하면서 살아야 사람답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일을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썩어질 일, 없어질 일을 생각하며 헛된 날을 보내십니까?

아니면 영생을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장래를 잘 생각하고 그 장래에 다가오는 미지의 일들에 잘 대비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나의 장래와의 관계도 생각하여야 합니다.

  과거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背恩忘德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별히 자기의 죽음에 대하여서도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고 건강하고 재물이 많아도 이 길은 누구나가 다 가야 하는 장래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하여서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아브라함도 죽었고 힘센 삼손도 죽었고, 능력의 사도들도 다 죽었고, 죽은지 나흘만에 예수님으로부터 살림 받은 나사로도 결국 얼마를 살다가 죽었습니다.

  우리는 생각 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만 생각하여서도 안되고, 하나님의 공의만 생각하여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양면성을 생각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뜻을 생각하고, 그 뜻에, 하나님의 생각에 내 생각을 맞추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나는 무엇인가 깊이 생각합시다.

  나는 누구인가 깊이 생각하여 봅시다.

  나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를 매끼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내 생각을 맞추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작자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