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야 강해

오직 여호와 (사 46:1-13)

호걸영웅 2013. 12. 15. 00:57

오직 여호와 ( 46:1-13)

[] 46:1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리웠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은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 46:2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도 잡혀 갔느니라

[] 46:3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 46: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 46:5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 46:6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장색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 46:7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 46:8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다시 생각하라

[] 46: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 46:11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 46:12

마음이 완악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나를 들으라

[] 46:13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상거가 멀지 아니하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하나님이 왜 이토록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입니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외에 인간들이 믿고 있는 신이라는 것들은 모두가 다 우상이고 악한 사탄의 창작물들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매하고 무지한 인간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믿고 따르므로 인해 원수 마귀가 가야할 곳 지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구원받은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늘날 종교 다원주의가 무섭게 퍼지면서 “가는 길은 달라도 목적지는 같다” 고 어떤 정신 나간 목사들 입에서조차 나오고 있는 시대입니다. 마지막 때에 오직 일편단심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오직 예수 신앙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첫 번째. 바벨론의 우상

(46:1-7)  

  바벨론 제국이 멸망받기 전에 바벨론의 우상이 먼저 멸망 받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바벨론의 우상들은 무능하고 허망한 것들이므로 바벨론을 지켜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러한 우상들을 무너뜨리고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어떤 세력도 이 멸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대표적인 우상은 “벨” 과 “느보” 였는데 “벨” 은 가나안 명칭으로 “바알” 에 해당되는데 바벨론 발음의 이름이며,“주”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바벨론의“주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느보” 는 “벨”의 아들로서 학문, 천문학의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많은 우상들 중 “벨”과 “느보”의 지위가 두드러진 것처럼, 바벨론의 많은 왕들이 이 우상들의 이름을 따서 “느부 갓네살, 느부 사라단, 나보 폴라살, 나보 니두스” 짓기도 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은 한때에는 두라 평지에 60규빗 (27m 건물 십층높이) 의 금우상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그들은 모든 축복이 태양과 바람과 폭풍의 신인 “벨”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바벨론은 고대 시대에 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곧 문학의 신인 “느보” 에게서 오는 축복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이 멸망의 위기에 놓여 있을 때 그 우상들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무능함을 나타내었습니다.

  바벨론의 우상들은 자신을 숭배한 자들을 돕기는커녕 가축의 무거운 짐이 되어 어디론가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형상 앞에 절을 하고 섬기는 우상도 무지하고 무서운 저주를 받을 짓이지만 더욱 무서운 우상은 우상인지 모르고 섬기고 있는 우상입니다.

돈이 그런 우상이 될 수 있고, 자식이 우상이 될 수 있고, 더욱 무서운 것은 내 자신이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십계명 중에서 첫째와 둘째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5:7-10) 하나님보다 그 어떤 것을 짝으로 섬기고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질투를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절대로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되는 것을 3절에서부터 다시 강조하고 계십니다.

  3절에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엇을 명심하고 들으라는 것입니까?

  첫째로 너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하나님은 40장서부터 계속해서 창조에 대한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너희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원래의 태생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밀을 아는 자라면 어떻게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전능자가, 창조주가 나를 택하시고 나를 지우셨는데 어떻게 우상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이 비밀을 아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둘째로 너를 조성하시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4)

  노년이 될 때까지, 백발이 될 때까지 안아주시고 품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지키시고 조성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조성”이란 말도“창조”처럼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대로 방치해 두신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우리 또한 택하시고 그냥 방치해두지 않으십니다.  정원의 주인은 볼품 없이 자라나는 나무 가지를 칠 때, 나무의 모양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가차 없이 가지들을 잘라버립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조성해 가시는 분이심을 깨닫기 바랍니다.

  우상의 거짓 신들은 죽은 신들이기 때문에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조성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택한 자들을 이모저모로 조성해 가시는 분이십니다.

  셋째로 우상에 대한 것을 자시 한 번 강조하시면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5-8)

  우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계획과 수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금과 은을 저울에 달아 장색(기술자)에게 갖다 주는 이유는 우상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장색은 돈을 받고 고객이 요구하는 대로 크기와 모양을 정해 우상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형태는 순전히 장색과 고객 사이에 이루어지는 흥정에 의해 결정되는 셈입니다. 이것이 우상의 본질입니다.

    7절 끝에 말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고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상은 본질상 돌이나 나무나 금속에 불과한 것이므로 스스로의 힘으로는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돌이나 나무나 금속은 사람에 의해 다른 데로 옮겨지지 않는 한 그대로 제자리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의지하고 숭배하는 일처럼 우매하고 무지하고 어리석은 행동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대형 교회 목사들이 언제 성도들에게 우상처럼 섬겨달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길 바라는 목사들도 가끔은 보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그 목사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고 섬긴다면 성도들이 목사를 우상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죽자 그의 시체도 감추어 버렸고 묘도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4:5-6)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이러한 모세의 시체를 사탄은 이용하기 위하여 천사장 미가엘과 싸웠다고 하였습니다.

(1:9)“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왜 사탄이 모세의 시체를 탐내었을까요? 모세를 우상화 시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락케 하려고 하였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도 조심하여야 하지만 혹시라도 내가 우상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 깊이 깨닫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 이 일을 기억하고 다시 생각하라.

(46:8-11)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다시 생각하라 (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11)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다시 기억하고 다시 생각하라는 것입니까?

  첫째로 나 외에 다른 이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기억하시고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셔야 합니다. “나 외에 다른 이는 없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오직 예수 신앙만이 이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 보루다”

  예수 놓쳐버리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큰 교회를 지었고, 평생을 말씀 전하며 살았다 할지라도, 아무리 수 만 명을 예수 믿게 했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오직 예수 신앙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둘째로 미래를 계획하고 계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10)

  “처음부터 고하며” “옛적부터 보이며” 라는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이 말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어진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했지요?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되어질 일들을 지금까지 다 이루셨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에 될 말씀도 분명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계획은 구체적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11)

  “동방의 독수리”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 누구를 의미합니까?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입니다. 44장에서도 언급된바 대로, 바벨론 제국은 바사 왕 고레스에 의해 멸망될 것이고 그 결과로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70년 포로생활에서 벗어나 해방될 것이라 했습니다.하나님은 이미 이사야 시대에 즉 약 150년 후에 일어날 일들을 구체적으로 사람의 이름까지 정하시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레스를 보내서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주신 것을 소망하고 생각하라고 하신 것처럼, 오늘날엔 예수를 믿는 자들도 진정한 자유와 기쁨의 날을 소망하고 확신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 날은 반드시 속히 올 것입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예언들은 상징적인 사건이 아니라 반드시 마지막 때에 속히 이루어질 일들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계시록에는 “장차 속히 될 일” 이라는 말씀이 8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이 땅에 현실적으로 일어날 마지막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결론: (벧전4:7)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태복음 25장에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믿습니다” 라고 말로만 외치는 자들이 되지 말고, 매일의 삶 속에서 성령 충만의 기름을 예비하여 기도로 준비하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되시기 축원 드립니다.       : 곽노아 /편집:익선2013.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