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안을 열어라(열왕기하 6:15-20)
[왕하] 6:15 |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 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
[왕하] 6:16 |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
[왕하] 6:17 |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
[왕하] 6:18 |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
[왕하] 6:19 |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의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저희를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
[왕하] 6:20 |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저희의 눈을 여시매 저희가 보니 자기가 사마리아 가운데 있더라 |
서론)모든 인간의 구성은 세가지 요소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영 혼 육입니다. 인간이 동물보다 위대한 이유는 동물은 혼만 있는 반면, 인간은 영과 혼이 동시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이란 부분은 하나님을 깨닫는 부분이요 하나님을 이해하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영은 인간창조 시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우리에게 심기워 진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영은 죄악으로 인하여 무뎌지고 혼탁해지고 마비되고 닫혀지는 성질이 있습니다. 고리고 예수를 믿을 때, 이 영의 눈이 여리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요, 창조주요 역사의 주인공이요,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알고 믿게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영안이 더 떠지면 영원한 하늘나라가 보이고 예수의 부활이 믿어지고 세상에 자질구레한 욕망이 하찮은 먼지 찌꺼기로 보이고, 우리의 지었던 죄는 너무도 선명하게 죽음의 근원덩어리인 것임을 생생하게 알게 됩니다. 소스라치게 놀라게 됩니다. 더럽기 한이 없고 추하기 한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1. 영안이 열리면 미워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이 정말 허망한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부부 싸움을 하여도 정말 세계 평화와 진정한 미주주의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 싸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감자를 소금에 찌어 먹어야 하느냐 설탕에 찍어 먹어야 하느냐 때문에 싸우고, 왜 치약을 끝에서 짜지 중간에서 짜느냐? 때문에 싸우고, 김치를 담글 때, 무를 얇게 썰어라! 아니다 더는 굵게 썰어야 한다 라며 싸우는 것입니다.
이는 아이들이 사탕 하나 더 빨아 보려고 아웅다웅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것입니다.
영안이 열리면 우리가 살아 오는 것이 얼마나 짧은지 얼마나 이세상의 욕심이 헛되고 헛된 것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좀 떨어져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누군가에게 훈수를 둘 정도는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열왕기 하 20:19~27절을 보면 ‘게하시’라는 엘리사 선지자의 종이 나오는데 이 친구가 참 한심한 친구입니다.
[왕하] 5:19 |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평안히 가라 저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진행하니라 |
[왕하] 5:20 |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 가지고 온 것을 그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저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취하리라 하고 |
[왕하] 5:21 |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 내려서 맞아 가로되 평안이냐 |
[왕하] 5:22 |
저가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생도 중에 두 소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 왔으니 청컨대 당신은 저희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
[왕하] 5:23 |
나아만이 가로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저를 억제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저희가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
[왕하] 5:24 |
언덕에 이르러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취하여 집에 감추고 저희를 보내어 가게 한 후 |
[왕하] 5:25 |
들어가서 그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대답하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
[왕하] 5:26 |
엘리사가 이르되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
[왕하] 5:27 |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 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
게하시의 거짓말, 죄에 대한 은익 시도, 탐욕의 제어 실패 등이 게하시를 문둥병자가 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욕심은 영의 눈을 멀게 하고 미래를 망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제일 기도제목 중의 하나가 이런 것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욕심으로 눈이 가려지지 않게 하시고 찬란한 내일의 거룩한 비전을 보며 열심히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 영안이 열린 삶의 의미 > 그러면, 오늘날 영안이 열렸다는 말은 무엇을 말할까요? 네 가지 부분 살펴봅니다.
1.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
ㄱ.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과 아람이 전쟁할 때 아람 왕 벤하닷이 밀실에서 작전을 짰습니다. 그런데 아람이 왕이 계획한 비밀 작전은 번번히 실패하고 맙니다. 그때 한 신하가 엘리사는 영적인 능력으로 그 작전 짜는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 왕이 어디로 가서 어디를 방비해야 할지 철저히 대비시키니까 아람이 당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8-10절). 아람 왕이 내부 스파이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하자 한 신하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저쪽에 엘리사란 선지자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도 다 듣고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는 것입니다(12절).” 그러자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으려고 병사를 보내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을 포위하게 됩니다(14절).
사환이 아침에 나가보니, 무수한 아람군대가 성을 둘러싼 것을 보고 놀라서 그것을 보고하자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도다(16절).”라고 합니다. 그때 엘리사는 ‘영안’으로 아람 군대보다 더 많은 하늘 군대가 자신과 함께 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왕하] 6:17에서 |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통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을 가진 것이 바로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ㄴ.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에서 맹렬히 좇아오는 애굽 군사들과 앞에 가로 막고 있는 홍해의 넘실거리는 거센 파도를 바라보며 겁에 잔뜩 질린 채로 모세를 보고 악을 쓰며 원망을 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매장하려고 여기로 끌고 왔느냐!?”
그때 모세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곧 영안은 믿음의 눈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물론 믿음이 있다고 해서 전혀 근심이 없는 강철영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살면서 위험한 것을 조심하게 만드는 근심과 두려움은 필요합니다. 과속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에 안전운전을 하고,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에 힘들어도 건강을 위해 땀을 흘리며 열심히 운동을 합니다. 약간의 긴장은 건강에 오히려 도움을 줍니다. 문제는 불신앙에서 오는 절제 못하는 두려움입니다.
2. 영적인 자원을 사용하는 삶
엘리사가 사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그 기도대로 하나님께서 사환의 눈을 열어 주시자 사환의 눈에 불 말과 불 병거가 보였습니다. 조금 후 아람 군사들이 공격해올 때 엘리사가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들의 눈을 어둡게 하소서(18절).” 그 기도대로 그들의 눈이 멀었습니다.
그 후, 곧바로 엘리사는 눈먼 병사들을 이끌고 사마리아로 갔습니다(19절). 그리고 사마리아에 들어서서 엘리사가 또 다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무리의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기도대로 하나님이 그들의 눈이 열립니다. 그때 아람 군사들은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20절). 엉뚱한 곳까지 죽을 힘을 다해 행군을 한 것입니다. 힘이 빠질 데로 빠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대는 이미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아람 군대는 독 안에든 쥐처럼 된 것입니다. 본문 왕하6;21~23엔 이롷게 기록되었습니다.
[왕하] 6:21 |
이스라엘 왕이 저희를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
[왕하] 6:22 |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소서 |
[왕하] 6:23 |
왕이 위하여 식물을 많이 베풀고 저희가 먹고 마시매 놓아 보내니 저희가 그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
그때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이 “그들을 어떻게 전멸시킬까요?”하고 엘리사에게 묻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아람 군사들을 죽이지 말고 편히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21-22절). 그들을 사마리아로 데려온 것은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게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여호람 왕이 엘리사의 말대로 아람 포로들을 잘 대접한 후에 놓아주자 그들이 돌아갔고, 그 후 아람 군대는 한 동안 이스라엘 땅에 쳐들어 오지 않고 엘리사를 생각할 때 마다 몸서리를 치며 공포에 떨었던 것이지요(23절).
이 장면에서 엘리사는 사환의 눈을 뜨게 할 때도 먼저 기도했고, 아람 군대의 눈을 닫게 할 때도 먼저 기도했습니다. 성도의 영적인 자원 중에 최고의 자원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성도의 가장 큰 축복이고 기도를 잃어버린 것은 성도의 가장 큰 불행입니다.
성도들의 진실한 기도는 어느 한 시간도 헛되지 않습니다. 내일이든, 내달이든, 내년이든, 10년 후든, 심지어는 자녀와 손자에게든 그 열매는 반드시 나타납니다. 진실하게 기도하면 응답은 오직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삶
영안이란 ‘신기한 것을 보는 눈’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바로 보는 눈’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과 손길을 느끼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려는 것이 영안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 핵심은 바로 십자가와 나눔입니다. 결국 천국과 지옥을 보는 삶이 영안이 열린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나누려는 삶이 영안이 열린 삶입니다.
어느 날, 부목사로 5년 지내던 A목사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저도 담임 목사가 되게 하소서!” 그때 몸에 이상한 부스럼이 생겨 병원에 가보니까 피부암이었습니다. 점점 암세포가 퍼져 얼굴도 이상해졌습니다. 그 즈음에 한 신학교 동기였던 어떤 목사가 유학가면서 자기 교회 성도들에게 “A목사님 설교를 한번 들어보라!”고 해서, 그 교회는 A목사님을 초청해서 설교를 들었습니다. 예배 후 청빈위원회가 열렸습니다. 대부분의 성도가 A목사님의 설교는 좋은데, 암 투병으로 머리카릭이 다 빠지고,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분을 담임 목사로 모실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한 집사님이 일어서서 “여러분!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분을 담임 목사님으로 모십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미쳤다는 듯이 쳐다보자 그 집사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모시면 진실한 설교를 들을 것 같습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기에, 가장 진실하게 설교하지 않겠습니까? 단 한번 설교하고 돌아가셔도 그런 설교를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건강해도 내일 죽을 수 있고 아파도 기적적으로 나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저렇게 암 투병하는 목사님을 모시면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회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어 결국 A목사님을 청빙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교인들이 고마워 간절히 기도했답니다. 병 치유나 목회 성공을 위한 기도가 아닌 이런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저 같은 암 환자를 초빙해준 이 아름다운 교회에 좋은 후임 목사님을 보내주셔서 모두 복 받게 하소서!” 그렇게 기도하던 중, 피부암이 그만 나아버렸고, 그 후 목회를 잘하시다가 은퇴를 했다는 것입니다. 선한 뜻을 좇으면 영안이 열리고 복을 받습니다.
4.. 미래의 비전을 보는 것
ㄱ.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린 창녀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의 과거나 현재의 모습만 보지 않고 귀신이 나가고 새로워지면 누구보다 귀한 헌신자가 될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실제로 나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12제자는 다 도망갔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예수님 곁을 지켰고 예수님의 무덤도 제일 먼저 찾아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미래의 모습을 보시고 그녀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처럼 사람을 현재의 외모로 보고 판단하지 말고 내일의 가능성을 보고 세워주십시오.
ㄴ. 또한 사람들은 다 삭개오를 더러운 세리 놈, 키 작은 난쟁이 같은 놈이라고 욕하고 흉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뽕나무 위에 올라가 주님을 간절히 추구했던 삭개오에게서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예수님의 은혜에 감동되어 전적인 회개를 결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구원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그처럼 우리는 어떤 영혼의 부족하고 일그러진 현재 모습보다는 내일의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현실이 어려워도 지금의 현실을 비관하지 말고, 문제에 부딪혀도 당황하지도 말고 너무 힘들어 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믿고 내일의 찬란한 비전을 가지고 믿음으로 전진하십시오.
. 결론) 결국 영안이 열린 삶을 인도해 주는 키워드, 곧 열쇠는 믿음, 십자가, 나눔, 감사, 기도, 그리고 소망입니다.
얍복강 가에서 환도뼈가 부러져도 하나님만을 부여잡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의지하였던 붙들었던 야곱처럼, 하나님을 꼭 부여잡고 그분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참고: 이한규/편집: 익선 0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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