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통과하면(창22:9- 14)
[창] 22:9 |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
[창] 22:10 |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
[창] 22:11 |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
[창] 22:12 |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
[창] 22:13 |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
[창] 22:14 |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
서론)
1. 중세 유럽의 어느 수도원에서 제자를 뽑기 위한 시험을 했다고 합니다. 두 청년이 그 시험에 응했습니다. 첫 번째 관문은 '배추 심기' 였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장이 ‘배추 뿌리’를 하늘을 향하도록 심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제자가 되고 싶어 찾아온 두 청년이 밭으로 갔습니다. 한 청년은 수도원장의 말대로 배추 뿌리가 하늘을 향하도록 심었고, 다른 한 청년은 수도원장의 말과 반대로 배추 뿌리가 땅을 향하도록 심었습니다. 그리고는 수도원장이 배추를 심어 놓은 모습을 살펴보고는, 배추를 똑바로 심어 놓은 두 번째 청년을 불러 말했습니다.
"청년! 청년처럼 똑똑한 사람은 이곳을 떠나십시오. 당신은 선생으로서의 자격은 있을지 모르지만, 제자로서의 자격은 없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 순종’은 제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제자 삼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본론)
가) 믿음의 시험
1. 예수를 믿고 나면, 누구든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은 사람에게 복을 주실 때, 반드시 복 받을 자격이 있는지 자격시험을 치르게 하십니다.
2. 아브라함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큰 시험이 닥쳤습니다. 그것은 100세가 다 되어 얻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명령, 즉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상하고 극단적인 명령을 하시는지 아브라함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이었습니다. 앞뒤가 너무나도 맞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삭을 번제로 바치면 이삭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무지막지한 명령을 내리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이해할 수도 없고, 순종하기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전혀 안 되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기의 판단과 이성을 믿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이렇게 결단하고 나니 분명한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고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더 큰 계획이 있으심이 분명할 것이야.”라고 말이지요.
결국 아브라함은 가장 어려운 이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삭도 살고 아브라함도 살았던 것이지요.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이 장면을 “죽은 자 가운데서 돌려받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시험이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저마다의 시험에서 주저앉습니다. 하나님을 믿긴 믿지만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쉽게 실망합니다. 작은 고난에도 쉬 낙심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이 모든 것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2. 이렇게 시험에서 승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본문15-18절에서 놀랍고도 엄청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돌려주심으로써 이미 아브라함에게 상을 주셨습니다. 그의 자손이 크게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 대적을 정복할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아지고 대적을 이기며 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승리했습니다. 우리도 시험에 승리하여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데로 나아갑시다.(벧전1:7)
나) 아브라함 역사의 절정(하이라이트)=여호와 이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일생의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단연, 아브라함이 받은 세 가지 시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첫째는 어느 날 갑자기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신 시험입니다. 둘째는 자녀를 생산할 능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네게 후사가 있을 것이라는 시험입니다. 셋째는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입니다.
창12장의 첫째 시험=모든 것이 갖추어진 안전한 현재를 떠나 ,불확실한 미래를 향하여 갈 수 있느냐? 하는 시험이며, 창15장의 둘째 시험=사람으로는 불가하나 하나님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믿느냐?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둘 다 예사로운 시험이 아니었으나 아브라함은 그래도 나름 멋지게 그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85점?)
그러나 창22장의 셋째 시험=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은 앞의 두가지 시험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달랐습니다. 물론 앞의 두 시험도 웬 만한 믿음 아니면 통과할 수 없는 시험이었으나, 셋째 시험은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평면적 차원이 아니라 믿음 그 자체가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고차원적 시험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 여호와 이레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 의미는?
다) 여호와 이레(여호와의 산에서 준비 되리라)의 세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첫째 의미: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시험하시고 도전하시고 단련하십니다(창22:1, 욥1:12, 욥2:6, 잠17:3, 고전10:13). 왜일까요? 그것은 우리 믿음이 정금 같은 믿음, 장성하는 믿음 되게 하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태어나 항상 아기로 있으면 엄청 큰 병이 있다는 증거이듯이, 구원받은 성도가 믿음이 전혀 자라지 아니하면, 그 역시 너무도 무서운 ‘중병’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끊임없이 도전하시고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본문처럼 시험하셨고, -나는 못 갑니다, 못 간다니까요 하는 모세에게와,-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에게,그리고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나는 아이라 말할 줄 모릅니다 하는 예레미야에게, 그리고 -니느웨 가기를 싫어하는 요나에게… 시험을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2. 둘째 의미: 여호와 이레는 아브라함처럼 이사야처럼, 기꺼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할 때, 축복을 더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순종했던 아브라함은 뿔이 수풀에 걸린 나무에 뿔이 걸린 수양을 보았습니다. 욥은 귀로 듣기만 하던 주를 눈으로 뵈었습니다(욥42:4). 엘리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왕 상 19:12). 기꺼이 순종하여 믿음으로 행하였더니 복이 왔습니다.
3. 셋째 의미: 여호와 이레의 축복. “여호와-이레” 라는 말은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었다=뜻입니다. 킹제임스 버젼엔
[창] 22:14 |
And Abraham called the name of that place Jehovah-jireh: as it is said to this day, In the mount of the LORD it shall be seen이라 했습니다. 좀더 쉬운 영어 버젼으로는 |
“On the mountain of the LORD it will be provided” 라고 했습니다.
고로 믿음으로 순종한 자들마다 받은 복의 모양은 달랐으나, 저들의 심령 속에 맺혔던 것-막혔던 것-간절히 원하던 것이 한 순간에 탁! 트여 새 지평이 열리게 되고, 새 하늘에 오른 듯한 감동과 감격이 몰려 왔습니다. 저들의 심령이 물 댄 동산 같아졌다는 것, 저들의 심령에 한없는 은혜의 쓰나미 같은 물결이 밀려들었다는 것은 동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뼈 속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여호와 -이레’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끝까지 가봐야 하는 것입니다. 자살은 일순간의 도피처일 뿐입니다.
하나님까지 피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라)오늘날에 있어서, 모리아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모형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여전히 아낌없이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 이레”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여호와 이레입니까? 저와 여러분 모두를 위한 여호와 이레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합니까?
아! 그 정도였어? 하나님 사랑이 그리도 크셨어? 아, 나 같은 죄인을 그리도 위하실
만큼 크셨단 말이지?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삭을 드릴 때, 아브라함의 고뇌 그 이상으로, 하나님의 고뇌는 극에 달하셨습니다. 예수께 십자가에 달리시고 운명하실 때, 하나님의 슬픔이 천지를 요동쳤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눅23:44-49절에,
[눅] 23:44 |
때가 제 육 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하며 |
[눅] 23:45 |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
[눅] 23:46 |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
[눅] 23:47 |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
[눅] 23:48 |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 |
[눅] 23:49 |
예수의 아는 자들과 및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고 했습니다. |
무려 세 시간 동안을, 해가 빛을 잃고 땅에 어둠이 가득 임하였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고뇌, 하나님의 슬프고도 견딜 수 없는 그 고통의 참담함을 나타내 주는 증거입니다. 그 어둠 속에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다 표현 못한 찢어지는 자식을 잃어버린 하나님 아버지의 절규! 으아!!!!!하는 …바로 그것이 그 어둠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너무도 고귀한 희생의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으로 극진하신 인류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바로 여러분과 저에 대한 감당 못할 사랑, 다 표현 못할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고로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 이 사랑 앞에서 나의 생각과 계획을 포기할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간혹 어떤 분은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예배를 등한히 하면서도, 나는 진정 구원받았다
예수를 모셨다 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이 예수 믿었다는 사람의 정상적인 행동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진정 구원받은 사람의 삶 속에는 구원의 감격과 감사와 열심이 있습니다. 헌신이 있습니다. 사랑이 넘칩니다. 그렇지 않다면 죽어있는 믿음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여기며 헌신과 교제를 등한히 여기는 그런 사람 속에 예수의 영이 진정 있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믿음에 대한 지식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마음의 문 밖에서 노크하시는 소리는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아직 그 마음에는 못 들어가신 것입니다. 혹 잠시 들어 오셨더라도 금새 쫓겨나 버리셨을 같습니다. 내가 왕이 되어 예수님께서는 그저 시종에 불과한 모습으로 서 계신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살면 복을 달라고 기도하지도 못하겠지요? 다른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죄인 줄 알긴 아는데, 과거로부터의 습관적인 죄라서 쉽게 끊지 못하는 성도들 얼마나 많습니까? 복 달라고 기도하기 어렵지 않겠어요?
좀 믿음의 차원을 높이고 스케일을 키워 보십시다. 하나님께 진정 변화된 모습을 보여 드리시길 바랍니다. 복 주실만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사탄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을 좋아합니다. 사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길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정말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스스로 답해 보시길 바랍니다.
결론) 삼상15: 22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은 시험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우리는 그래선 안되겠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순종하는 믿음, 사랑하는 믿음, 큰 복 받을 만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화끈해야 좋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도 화끈해야 좋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분 모두가, 아브라함과 같은 산 믿음, 누가 봐도 멋지게 시험을 통과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차고도 넘치는 화끈한? 큰 복 받아 누리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참고: 한태완 목사/편집:익선 02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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