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비록, 없을 지라도의 믿음(합1:1~17, 2:1~4)

호걸영웅 2014. 5. 9. 23:46

비록, 없을 지라도의 믿음(1:1~17,  2:1~4)      

 

 

선지자 하박국이 하박국 1장에서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라고

3번이나 강한 의문을 토로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었습니다.

 

1:3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1:13 주께서는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1:14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족 같게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 같게 하시나이까? 라고 합니다.

 

그런데 선지자 하박국이 하박국 3장에서는 ‘없을지라도’ ‘없을지라도’ ‘없을지라도’라는 말을 3번이나 반복하면서, 하나님을 향해 감사와 기쁨의 찬송을 드렸습니다.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없을지라도)

(비록)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없을지라도)

(비록) 우리에 양이 없으며 (없을지라도) /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개역성경에 ‘없을지라도’가 1번 나오지만, 아래 NIV 영어성경과 대조해보면, 3번 나옵니다. 그런데 ‘없을지라도’가 6번 나온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and there are no grapes on the vines,

though the olive crop fails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though there are no sheep in the pen and no cattle in the stalls,

 

어떻게 ‘어찌하여’가 → ‘비록 ~~할지라도’로 바뀌어졌을까요? 어떻게 그런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가 있었을까요? 좀더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합1. 하박국 선지자의 강한 불만 ‘어찌하여~

 

하박국은 합 1장에서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라고

3번이나 부르짖으면서.. 하나님을 향해 강한 의문과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날도 하박국처럼, 이 세상에 불의한 일, 불공평한 일, 포악한 일, 불행한 일들이 왜 계속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1938 9월 제27회 한국 장로회 총회가 신사 참배를 찬성하는 안을 가결하였을 때, 주기철 목사는 아마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라고 울부짖으며 슬퍼하였습니다.

 

*1950 6.25 전쟁으로 온 나라가 폐허로 변했을 때, 부산으로 달아난 숱한 그리스도인들이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이 나라가 이리 되었단 말인가! 하고 울부짖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대자연의 재앙들이, 무죄한 부녀자와 아이들을 포함하여 수천 명씩 또는 한꺼번에 수십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지진과 쓰나미가 삼켜 버릴 때, 우리는 여전 히‘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라고 하는 극도의 흥분과 당황함과 항변의 부르짖음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던 당시의 군중들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아무 죄도 없는 저가 왜? 어찌하여……십자가에 못 박혀 처절하게 죽어야 했는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자신 조차도 이렇게 부르짖으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 까?(27:46)

 

*분만 아니라 왜 하필이면 어찌하여!!! 그리도 예수 안에서 열심히 바르게 살아왔던 내게 이런 병이 왔으며, 이런 파산이 왔으며, 왜 이런 자동차 사고나 비행기 사고가 찾아왔단 말인가?  라고 울부짖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선지자 하박국도 똑같은 심정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이 왜 3번씩이나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라고 부르짖었 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니다.

 

1)하박국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과 종교계에 죄악이 만연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1:3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위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이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구원받은 백성이거늘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저들보다 더 하나님 사랑을 받은 민족이 어디 있으며 저들보다 더 하나님께 배움 받은 자들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저들이 오늘날 이 모양 이 꼴로서 죄악에 철저하게 물들어 버린 민족이 되었으니 이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라고 하는 부르짖음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2)1:13에 하나님의 답변은 이것이었습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무섭게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1:6~8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그 발은 표범보다 빠르고 마치 식물을 움키려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이와 같은 무서운 심판 선언의 말씀을 듣고, 하박국은 더욱 더 너무나도 속이 상해서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십니까? 어찌하여 악한 자들을 들어서 당신의 백성을 치신단 말입니까? !!! 라고 부르짖습니다.

 

1: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갈대아인)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

하나님의 방식이 너무나도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1:14에서 하박국의 의문은 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바다의 어족처럼 산과 들의 곤충처럼 그렇게 무참히 짓밟아 죽이시겠다는 말씀을 들은 것이었습니다.

 

1:14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족 같게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 같게 하시나이까

 

선지자 하박국은 이스라엘의 범죄상을 바라보고 슬퍼하며 부르짖었고,

포악한 갈대아 사람들이 처 들어올 것을 바라보고 슬퍼하며 부르짖었고, 바로 당신께서 지으시고 사랑하셨던 이스라엘이 바다의 어족처럼 무참히 짓밟힐 것을 바라보고 슬퍼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라고 3번이나 부르짖으면서

하나님을 향해 강한 의문과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합2. 성루에서 기도하는 하박국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라고 처절하게 부르짖던 하박국은

그 답을 얻기 위하여, 성루에 올라서서 참담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2:1=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여기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고요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가장 겸손하고 올바른 자세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얼마가 지났는지, 그 후, 하나님은 고요히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그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2:2~3=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묵시가 이룰 날)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하나님께서 탄식하는 하박국에게 들려주신 응답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무질서하고 어둡게 보이지만, 심판의 과정을 거친 다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구원을 반드시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로‘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는 말씀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박국에게 주신 말씀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씀을 주십니다.

2:4=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The just shall live by faith!

 

700여 년 후에 사도 바울이 외친 말씀이었고, 그 후 다시 1500여 년 후에는, 마르틴 루터가 외친 말씀이 되었습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인이란? 오늘 나의 눈에 보이는 현실에 붙잡혀 살지 않고, 그 상황 속에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참고 구원이 이르기 까지 견디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선지자 하박국은 이제는 절망적인 현실에만 붙잡혀 살지 아니하고, 오히려 전체적인 그림을 보며 하나님의 구원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합3. ‘어찌할지라도’의 신앙을 고백한 하박국

 

▶하박국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서 부터는,  (비록) 없을지라도’ ‘없을지라도’ ‘없을지라도’ 라고 고백하면서 감사와 기쁨의 찬송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3:2).

 

▶그는 이제, 다음과 같은 놀라운 역설적인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이제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현실에 의해 좌우됨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3:19=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라고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개인적으로도 ‘어찌하여’……라는 탄식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득세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포자기 하여 주저앉습니다.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며, 폭약을 짊어지고 군중을 향해 뛰어 들어 가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너무 성급합니다. 초조해 합니다. 그러나 일을 망치기만 할 뿐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더 큰 부조리와 무죄한 피를 흘릴 뿐입니다. 더 큰 죄를 지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들은, 조용히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불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모든 문제들의 해결이 언제나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반드시, 우리의 논리의 틀(경계)을 뛰어넘는다는 사실! 그것을 잊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고요히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그리하여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조:김지윤/ /편집: 익선/2014.3.6. 기도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