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욥9:1-35)
(서론) 오늘 함께 나눈 욥기 9장 말씀은 빌닥의 정죄에 대한 변론으로써,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찬양한 그 어떤 성경말씀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위대성이 장엄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욥은 본문에서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천지를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위대성이 장엄할 정도로 언급이 됐습니다. 이는 지극히 보잘것 없는 인간과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엄청난 차이에 대한 탄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지적합니다.(시53:1) 소경이 태양이 없다고 말한다 해서 엄연히 있는 태양이 없어지지 않듯이 무신론자들의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주장은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맑은 날 밤 하늘의 뭇 별을 보며, 혹은 자라나는 어린 생명의 신비를 보며 위대한 창조자의 섭리와 질서를 문득 문득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인간의 얄팍한 지식이나 과학의 힘이나 의학의 힘으로도 깨닫거나 어찌할 수 없는 일들과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이렇게 말합니다. '산이 깨닫지 못한다'(5절)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다 (10절)'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실로 무지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겸손히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절대자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어떤 한계들을 가지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까요?
첫째,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다. 2절의 말씀에 보면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2절)고 말합니다. 이 한마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하여 말하는 시끄러운 천 마디의 입을 막아 버리기에 충분합니다. 욥이 하나님께 할 말이 없음도 이 때문이요 욥의 세 친구들이 하나님을 들먹이며, 자신들은 의인인체 할 수 없음도 이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나설만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인격이 뛰어난 사람도 있고, 인류가 성인이라고 추앙하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훌륭한 덕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스스로 정결케 될 수 있는 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악 된 인간의 판단력으로 감히 하나님을 저울질 해선 아니되겠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의심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여 세상 만물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앞날까지도 주관하십니다. 들의 백합화와 공중의 새들을 기르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은 우리들의 앞날까지도 인도하고 보호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 인간은 하나님과 쟁변 할 수 없다. 오늘 3절 말씀에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3절)고 했습니다.(하나님의 질문에…)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천 마디로 지적하신다 하더라도 인간은 거기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답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단정입니다. 아무리 경건한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막막한 경우를 만나기도 합니다만 그 경우가 심각한 것일수록 잘못된 것은 하나님편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편임이 드러나기 일수라는 것입니다.
일본의 어떤 그리스도인 소설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지금 엄청난 실수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되이 일한 저에게 어떻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그는 하나님께 원망하고 항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즉시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주님! 제 자신도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용서하소서'
너무나 힘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탄식하기도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땅에다 죄와 고통을 만들어 냈느냐 원망합니다. 이는 마치 불량한 자녀가 자기 부모에게 왜 나를 낳았느냐고 항변하는 것과 같고, 마치 진흙으로 만든 토기 그릇이 자기를 만든 토기장이에게 항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그 분의 섭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최선의 도리입니다.
셋째, 인간은 하나님을 힘으로 항거할 수 없다. '그는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그를 거슬러 스스로 완악하게 행하고도 형통할 자가 누구이랴'(4절)
힘으로 하나님을 항거하다니 이 세상에 그처럼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세계 각처에서 홍수와 지진과 가뭄과 전쟁과 기근의 소문들을 듣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재지변으로 고귀한 생명을 잃고 힘들여 장만한 삶의 거처들을 상실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렇다고 티끌만도 못한 존재인 인간이 우주 만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힘으로 대항한다면 이는 허공에 발길질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화> 인류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일 중 하나인 제 2차 세계대전은 1936년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삼국의 동맹체결로 한층 가속화 되었습니다. 이 삼국동맹의 결과로 평화로운 지구 곳곳은 온통 화약 냄새와 피비린 내가 진동하는 전쟁터로 변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적인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 대신 자신들을 신격화 한 것과 기독교인을 학대하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후 삼국동맹의 주역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유태인을 600만이나 학살한 히틀러는 벙커에서 아내인 ‘엠마 브라운’과 함께 스스로 자결하고 시신을 불태우게 하고 죽습니다. 전쟁으로 700백 독일인이 죽었고, 베를린은 폭격으로 거의 대부분의 빌딩이 무너지고 불에 타서 걸어 다니기 조차 힘들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뭇솔리니는 1945년 연합군에 패전 후, 국경 밖으로 도망쳤으나 공산주의 유격대원들에게 붙잡혀 총살되고 맙니다.
일본의 히로히토(裕仁 넉넉할 유, 어질 인) 천황은 전쟁 중에 국민들로부터 신으로 떠받들어지던 이미지를 모두 상실한 채, 88세에 한 평범한 인간으로 병사하게 됩니다. 일본의 전범들은 군사 재판을 받고 대부분이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일본이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당시, 원자폭탄으로 인류 최초로 대량살육을 당한 나라가 되었으며, 자기 백성을 일억 인구 중, 오백 육십여만 명을 이상을 죽게 했고, 오키나와 전투에서만 해도 215,000명의 일본인 사망자 중, 민간인이 12만 명(징집병 3만 제외)이나 죽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전쟁의 악령에 사로잡혔던 세 사람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마쳤던 것입니다. (위안부+징용 조선인1만 포함)
인간은 하나님을 대항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욥이 증언한대로 하나님의 권능은 인간의 영역을 엄청나게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11) 고로
또한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보다 의로울 수도 없고 그분과 쟁변할 수도 없고 그 분을 힘으로 항거할 수도 없습니다.
결론)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통제될 수 없으며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무력할 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 한계를 깨닫고 오직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된 의지할 자가 필요합니다. (In God We Trust=세계 최 강국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며 최고의 방식이다. 오늘날 미국의 약해짐의 근본 원인은 바로 이 법을 소홀히 하고 잊어버리는데 있다; 안익선) 고로 나약하고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취해야 할 최선의 태도는 자기 겸허와 참회의 길 밖에 없습니다.
욥의 증언처럼 나는 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임을 고백하며, 욥처럼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무익한 죄인이었음을 늘 기억하며,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지혜를 취하는 성도님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참조: yourcrown/편집: 익선 120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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