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성경난제에 대한 대처 1>

호걸영웅 2015. 9. 11. 04:20

<성경난제에 대한 대처 1>

 

 *창세기 6:6 “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으로 인해 슬퍼하시며 또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근심하시고! (And it repented the LORD that he had made man on the earth, and it grieved him at his heart.)

 

* 32:14 “주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내리려 하던 그 재앙에서 뜻을 돌이키시니라. (And the LORD repented of the evil which he thought to do unto his people).

 

*(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뜻을 돌이키지[repent] 아니하시는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은즉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리요? 그분께서 이르셨은즉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리요?

 

서론)

성경에 보면 어떤 경우는 하나님은 후회하신다 했고 어떤 구절에서 돌이키신다는 말씀들을 하셨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후회하시거나 슬퍼하시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는 성경의 오류인가, 하나님의 속성에 문제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성경안제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에덴에 두셨는가?

 

 종종 우리는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왜 선악과를 에덴에 두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데 왜 그런 위험한 실과를 거기에 두어 그것을 먹음으로 타락하게 하셨는가? 얼마나 하나님의 모순된 장난인가? 라고 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먼저 여기에 대한 신학자들의 공통적인 주요 답변은 대개,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있으며, 또 인간은 로봇과 달리 그 자유 의지를 행사하도록 인격적으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의 잘못은 아니며 인간의 잘못이다- 라고 대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해는 잘 안 가지요.

 

2. 둘째로 저는 개인적으로, 물론 자유의지가 중요했지만, 전지전능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물론 인간이 죄를 지을 수 있음을 아셨습니다. 이는 마치 자동차의 설계자가 5년만 지나면 자동차는 여기 저기가 고장 나고 사고도 나고, 리콜을 해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을 알면서도, 자동차를 설계하여 판매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자동차는 물론 고장이 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설계목적대로 아주 먼 거리를 열심히 달려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많은 비용을 치르면서도 또 새 차를 사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도 인류가 사탄의 꼬임에 빠졌을 때, 그 심각성의 경우를 아셨습니다. 그러나 긍적적인 면을 하나님은 더 중요시 하신 것이라고 보아야만 합니다. 자식을 낳아 키우다 보면 물론  불효 자도 있겠지만 대개는 효자들이 많으리라는 기대를 하는 우리 부모들의 심정과도 같습니다. 또 불효자도 영원한 불효자는 없으리라 믿고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이지요.

 

3. 셋째로 그러면 왜 선악과를 하필이면 에덴에 두셨는가? 거기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일차적으로는 인류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아니 하는가에 대한 시금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지으신 참으로 보기 좋았던 인류에겐 불완전성이 있음을 이미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완전하신 하나님과 불완전한 피조물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로 불완전한 피조물이 완전해지기 위해선, 시금석을 통해 완전케 되기 까지 변화 내지는 성숙, 혹은 개선되어야만 하는 숙제를 갖고 있었으며 그 숙제는 반드시 풀어야만 할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합격 처리된 인간에게 안타까움을 가지시고 가죽옷을 해 입히시고 수치를 가리워주시며 메시야를 약속해 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4. 넷째로 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심보다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더욱 크고 귀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혹 잘못될 수 있기는 하지만, 잘될 가능성에 더 기대를 두신 것입니다. 이는 불량률이라는 말과 연관 지을 수 있겠습니다. 공장에서 기술자들이 어떤 부속품을 만들다 보면 기압이나 온도나 재료 비율이나 화학적 처리 등의 원인으로 불량품이 반드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부터 불량인간이 나올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 불량인간을 가려내는 척도의 하나가 바로 선악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자기 만드는 사람이 잘못 구워질 도자기를 대충 예측할 수 있는 바와 같은 이치입니다.

 

5. 다섯째, 또 우리는 모르지만 선악과는 에덴 동산이라는 천혜의 낙원을 유지하기 위한 어떤 필수 요소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성경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지 않기에 확언할 수는 없겠지요?

이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선악과와 같이 위험한 것을 도대체 왜 에덴에 두셨나? 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 가정엔 많은 위험물들이 있습니다. 전기 콘센트 -라든지 가스버너라든지, 부엌칼이나 심지어 총기류나 쥐약이나 농약 따위도 그렇습니다.

이런 위험한 물질이나 도구들은 가정에 꼭 필요한 물건이지만 잘못 다루면 큰 사고가 납니다. 그러니 항상 잘 관리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선악과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로 선악과도 에덴이라는 환경을 최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꼭 필요한 것이었기에 하나님이 만들어 두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6.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이유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인격적인 가족의 관계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봇에게 느끼는 우리의 감정과 가족이나 자녀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전혀 별개의 것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로봇에게서는 신비로움이나 호기심을 느끼지만 사랑을 느끼진 않습니다. 그러나 가족관계에서는 무한한 사랑을 주고 받으며 인격적인 관계를 굳게 다지게 됩니다. 로봇은 고장 나면 버리고 또 만들 수도 있고 팔아버릴 수도 있지만, 자녀는 한번 잃으면 치명적인 정신적 고통과 타격을 받게 됩니다. 자녀의 불행으로 미치거나 큰 병을 얻거나 자살하는 부모가 있을 정도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너무도 소중한 존재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의 불완전한 부분이 있음에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맺기 원하셔서,그들이 불순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만드시고 복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케 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후회를 하시는가, 하지 않으시는가? 또는 하나님도 회개하시는가?

 

미리 결론을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결코 후회나 회개를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회개 혹은 후회 또는 돌이키시는 것으로 표현된 성경구절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6:7; 32:14; 32:36; 2:18; 삼상 15:11, 35; 삼하 24:16; 대상 21:15; 90:13, 135:14; 26:13, 19; 2:13; 7:3, 6; 3:9, 10, 4:2).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상호 모순처럼 보이는 부분으로 인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오류가 가득한 사람이 쓴 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순처럼 보이는 예를 또 하나 소개하면, (삼상 15:29)= "또한 이스라엘의 힘이신 이는 거짓말을 하거나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니[nor repent] 그분은 사람이 아니므로 뜻을 돌이키지[repent] 아니하시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같은 단락의 35(b)에서는 "...주께서는 자신이 사울을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신 것으로 인해 슬퍼하였더라[the LORD repented that he had made Saul King over Israel.]"고 기록되어있어요.


이런 경우, 보통 사람의 관념이나 상식으로는 하나님께서 마치 거짓말하시거나 일구이언하시는 것처럼 생각할 수 도 있고 성경은 참된 책이 아니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먼저 구약성경이 기록된 언어인 히브리어로 이 단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두 구절 모두 영어(KJB) repent로 번역되었는데 이 두 구절의 히브리어도 같은 단어 nacham(나캄) 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nacham의미는 '한숨을 쉬다'(to sigh), '숨을 강하게 내쉬다'(breathe strongly)에서 함축적인 의미로 '슬퍼하다, 불쌍히 여기다, 위로하다, 후회하다'(to be sorry, to pity, console, rue)등의 넓은 의미가 있습니다.

 

영어 repent에 대하여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생각은 ‘죄와 불법에서 돌이키는 회개’라는 의미이죠. 그러나 영어 repent나 히브리어 nacham, 모두 ‘(죄와 불법, 오류 등에서) 회개하다’는 의미 외에도 ‘슬퍼하다, 아픔이나 슬픔을 느끼다, 과거의 어떤 것에 대해 슬픔을 표하다, 과거 행동의 결과에 대해 마음을 바꾸다’ 등의 다양한 의미가 들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cf. 1828 Noah Webster ADOTEL).

 

특히 하나님에 관련하여 쓰일 때는 '섭리적인 다루심의 과정을 바꾸다(to change the course of providential dealings)의 의미로 쓰입니다(ADOTEL).


고로 하나님의 후회라는 의미는 어떤 사실이나 상황이 '하나님을 슬프게 한다'는 의미(cf. 6:6; 삼상 15:11, 35 ...)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repent가 연결되는 곳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매우 가족적이며 인격적인 관계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론)

( 2:13)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옷을 찢지 말고 너희 마음을 찢으며, 주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분은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큰 친절을 베푸사 재앙에서 뜻을 돌이키시나니(repenteth him of the evil)”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할 수 밖에 없는 정말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그 자녀들에게 다시금 돌아오라고 하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시려 하시고, 회복시키시려는 참 큰 은혜와 사랑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상상 못할 너무도 큰 복을 다시금 주시는 참으로 고마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고로 우리는 하루 하루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대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기를 늘 기도하고, 힘써 예수 안에서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cf. 69:31; 16:7; 고전 7:32; 살전 4:1).

 

 

 

참고: 서울제일침례교회 성경난제 제4/편집: 익선2015. 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