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행복의 주인공 되기 (마 5:1-6)
1. |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
2. |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
3. |
|
4.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5.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6.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
7.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8.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9. |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10. |
|
11. |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12.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서론)
이 시간 “행복의 주인공”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행복을 아울러 주셨는데 그 행복을 제멋대로 사용하였기에, 천사들이 행복을 회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행복을 어디다 숨겨놓아야 할지 의논을 했습니다.
한 천사가 말했답니다. “저 깊은 바다 밑에 숨겨놓으면 어떨까요?” 천사장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건 안 돼. 인간은 머리가 비상하기 때문에 바다 속쯤은 금방 뒤져서 찾아낼 거야.”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천사가 “그러면 저 산꼭대기에 숨겨 놓으면 어떨까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천사장은 “인간의 탐험정신 때문에 아무리 높은 산 위에 숨겨두어도 찾아내지.”라고 했습니다.
한참 고민을 하며 천사들이 의논한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면 행복을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두기로 합시다. 아무리 저들의 두뇌가 비상하고 탐험심이 강해도 자기들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것은 좀처럼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요. 그래도 찾아내면 그 사람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겠지요.”라고 했답니다. 결국 행복은 마음에 있습니다. 만족하는 마음에 있고 감사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찬양하는 마음에 있고 사랑하는 마음에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의 마음에 행복이 있습니까? 행복도 종류가 많고 차원도 다 다릅니다. 알사탕하나로 만족하는가 하면 때론 1억짜리 자동차라야 만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크고 참된 행복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모시는 마음이 되기 전에는 진정한 최고의 행복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 짜잔한 행복이요 행복 비슷한 모조품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말씀이 가르쳐줍니다. 그런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가)세상 것을 버리는 자가 행복합니다.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야 천국을 누립니다. 마음에 세상 염려 근심 미움 욕심 탐심 세상사랑 분주함 등 세상에 얽힌 마음으로 차 있다면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소유할수록 고통스럽습니다. 버리는 것이 영성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바로 모실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예수 한 분으로 만족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 '가난하다'는 의미의 헬라어 '푸토코스'는 구걸해서 먹어야 하는 거지와 같은 가난을 의미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아무 것도 없어야 하나님의 행복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린이와 같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는 아주 작은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딤전6:6에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이익이 되느니라" 했습니다.
나) 치유함을 받아야 행복합니다.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 했습니다. 여기 위로란 그 애통하는 마음에 상처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 말입니다. 그런데 상처란 미움 원망 좌절 슬픔 원한 저주 앙심 완악함 강퍅함 복수 마음의 살인에 이르기까지 무시무시한 악의 쓴 뿌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픔을 하나님 앞에 기도로서 온전히 애통하는 것들을 모두 내어놓으면 하나님의 치유 곧 위로가 시작됩니다. 그 애통을 기쁨으로 바꿔주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찾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제가 한번은 제 후배되는 마산에 사는 강 목사님이란 분과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아는 어떤 분이 악귀에 들렸다가 예수의 은혜로 치유되었었는데 다시 악귀에 들린 분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분은 왜 다시 악귀에 들렸을까? 라고 마산의 강 목사님에게 묻자, 그 목사님 왈, 그 분이 성경공부를 안 해서 그런가 봐요…… 라고 했습니다. 결국 악귀가 나가고 텅 빈 마음이 그냥 있으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 텅 빈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대신 가득 채워져야 했던 것입니다. 참된 치유는 하나님이 그 안에 계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채워져야 합니다. 애통은 그러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로 그냥 인간적인 애통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애통하면 참 행복이 찾아오게 됩니다.
다)내가 내 안에서 사라질 때 행복합니다.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 했습니다. 여기 땅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우리 마음 속의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나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의 원문은 ‘프라우스’인데 그 뜻은 “부드러운, 친절한, 겸손한, 동정심 많은” 등의 의미로서, 자기감정을 제어할 줄 아는 훈련된 인격의 요소를 가리킵니다. 즉 훈련을 통해 그 야생마 같은 기질이 죽어지고 내가 새롭게 훈련되어 개조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내가 온전히 깨어지고 부서지고 사라지는 것이 온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훈련시키실 때 환경 속에 가두시고 훈련시키십니다. 우리는 환경이 변화되기를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고 찬송하는 수준에 도달하기를 바라십니다.
바꿀 수 없는 환경을 탓하지 말고 거기서 나를 변화시키므로 기쁨을 누리고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 방법은 내가 바로 죽는 것입니다. 내 개성, 내 주장, 내 행복, 내 자존심, 내 인격, 내 기대치, 나를 내려놓으면 편해집니다. 나를 낮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 죽은 자들입니다. 자신을 욕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내가 부서지고 죽어지면 작은 일에도 기쁨이 옵니다.
그래서 시37:11에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했습니다. 성경에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이 온유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깨뜨러짐이 그 과정이었습니다. 민12:3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크게 쓰신 이유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히 쓰실 수 없습니다.
라) 양심의 평안을 누려야 행복합니다.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여기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의”는 원어로 ‘디카이오쉬네’라 해서, 이 의는 인간의 의가 아닙니다. 즉 이 의는 신적 본질의 속성이나 복음의 의이기도 하고 곧 그리스도 자신이기도 한(롬1:16)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죄를 덮어주시는 의입니다. 성막 지성소의 법궤 덮개를 속죄소라고 하는데 왜 덮개를 속죄소라고 했을까요? 죄를 덮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죄소는 히브리어로 덮개, 또는 화해의 뜻으로 ‘죄를 덮다’ ‘무마시키다’ ‘감추다’ ‘잊어버리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 공로를 믿는 자는 어떤 죄라도 정죄하지 않으시고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 공로보다 내 죄책감을 더 크게 느끼며 가책 속에 살아갑니다. 믿음이 잘못됐거나 부족한 탓입니다.
사61:10에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이런 구속으로 인한 의를 날마다 누리는 기쁨을 소유하여야 행복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죄사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정의의 은혜가 이 땅에 넘치기를 기도하며 헌신하는 자가 됨으로써 우리는 행복한 자들이 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요14:27)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의 행복, 하나님의 행복을 누리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 것에 얽매이지 말고 다 버리세요. 치료함의 성령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내가 사라지게 하고 성령님의 뜻이 내 마음을 채우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로 완전해진 거룩함, 곧 의로워진 양심의 평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예수 안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참된 행복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참조: 일맥/편집;익선 102315
'설교모음(Korean sermon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피림은 누구인가 ?(창6:1~4) (0) | 2015.11.06 |
---|---|
성문 어귀의 네 사람(왕하 7장1~7절) (0) | 2015.11.06 |
치료하시는 하나님 (출 15:22-26) (0) | 2015.11.06 |
바벨탑의 교훈! (창 11:1-9) (0) | 2015.11.06 |
자녀를 축복하라! (창 27:26~30) (0) | 2015.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