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애가 강해

예레미야 애가 1장 강해

호걸영웅 2016. 7. 3. 08:21

예레미야 애가 1장 강해

예레미야 애가예루살렘 멸망 후에 썼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예레미야 애가의주요 내용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함이다.

본서의 특징적 진리는 하나님의 진노이다. 본서에는 ‘진노’, ‘노’라는 말이 14, ‘원수’, ‘대적’이라는 말이 24, 또 ‘멸망’ ‘황폐’라는 말이 19회 나온다.

예루살렘 멸망의 원인은 죄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그 거민들의 죄가 많으므로(1:5), 그들이 크게 범죄하므로(1:8),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였으므로(1:18), 나의 모든 죄악을 인하여(1:22), 우리의 범죄함과 패역함 때문에(3:42),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중하므로(4:6), 그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을 인하여(4:13),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5:16) 멸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범죄할 때에 심히 노하셨다.

또 본서는 인간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음을 계시한다. 5: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이것은 성경 전체의 요지이다.

개관: 예레미야 애가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쓴 슬픔의 노래이다. 이 책은 예루살렘 멸망을 보면서 쓴 선지자의 고통스런 심령에서 나온 표현들이요 그의 눈물로 얼룩져 있는 글들이다.

1: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슬퍼함 1-6, 슬프다, 이 성이여

[1]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 . . .

예레미야는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라 했죠.

예루살렘 성은 거민의 수가 심히 줄었죠.. 바벨론 군대의 침입과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어떤 이들은 사방으로 도망쳤으며 또 많은 이들은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적막한 곳이 되었죠.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과부와 같다고 표현합니다. 보통 여인들과 대조하면 한가하고 쓸쓸하며 행복과 낙이 없이 지내는 과부와 같았죠.

또 예레미야는 열국들 중에 크고 지방들 중에 공주같이 존귀하던 성 예루살렘이 이제는 종이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예루살렘 성은 다윗 왕의 성이며 솔로몬 왕의 성이며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성이었습니다. 그 성은 세상적으로도 부귀와 권세와 영광이 있었던 성이었죠. 그곳은 이스라엘 영토 중에서 가장 귀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아름다운 성이 바벨론 관리들의 종처럼 그들의 지배와 통제를 받고 있으며 그 거민들은 학대와 강제 노역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2]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 . . .

그 성의 거민들은 밤에 애곡하였죠. 왜 그들이 밤에 애곡하였는가? 그들이 아마 낮에는 노역으로 수고로운 시간을 보냈고, 밤에는 심적 곡통으로 쉬지 못하고 웃지 못하고 애곡한다는 뜻입니다.

 

 [3] 유다는 환난과 많은 수고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도다. . . .

예레미야는 또 “유다는 환난과 많은 수고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도다. 저가 열방에 거하여 평강을 얻지 못함이여. 그 모든 핍박하는 자가 저를 쫓아 협착한 곳에 미쳤도다.”라 했죠.

 

[4] 시온의 도로가 처량함이여, 절기에 나아가는 사람이 . . . .

 ‘처량함’이라는 원어(아벨롯 t/lbea})는 ‘애곡함’이라는 뜻이죠. 이것은 시적 표현입니다. 도로들은 애곡하는 것 같았죠. 그것은 기쁜 절기에 나아가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었죠. 또 모든 성문은 황폐하고 적적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고 고통을 당하며 그 성 자체가 곤고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5-6] 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 . . .

예레미야는 “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처녀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저의 목백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이 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림 같도다.” 유다 백성의 대적들은 그들의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은 형통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곤고케 하셨죠. 목백=귀인 왕족등입니다. 영역엔  프린스즈 라 했습니다.

7-11, 그 결말을 생각지 않음

[7] 예루살렘이 환난과 군박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 . . .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환난과 군박(窘迫)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생각함이여, 백성이 대적의 손에 빠지나 돕는 자가 없고 대적은 보고 그 황적(荒寂)함을 비웃도다.”라 했죠.

‘군박’이라는 원어(메루드 dWrm;)는 ‘집이 없음, 정처 없음’을 뜻함.

 ‘황적함’이라는 원어(미슈밧 tB;v]mi)는 ‘멸절’이라는 뜻(BDB). 예루살렘은 멸망하였고 대적들은 그 상황을 비웃었죠.

[8]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같이 되니 전에 . . . .

예루살렘의 근본적 문제는 그 거민들이 크게 범죄한 데 있었죠. 소돔과 고모라 성은 그 거민들 중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을 당하였는데,  예레미야 5:1에 보면, 예루살렘 성은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하였어요.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죄를 끝까지 회개치 않는 자를 반드시 벌하십니다.

예루살렘의 죄는 또한 ‘불결함’이라는 말로 표현되었으니 도덕적 불결입니다. 예루살렘 거민들이 우상을 섬기고 부도덕하게 행한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더럽고 추한 모습입니다. 고로 예루살렘 성전은 다 부서져 공개되었고 왕궁도 공개되고 왕후와 공주들과 궁녀들은 다 짓밟힘을 당했습니다.

[9] 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나 결국을 생각지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나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게 낮아져도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다’는 말은 예루살렘의 영적 음란의 죄를 묘사한 것 입니다. 예루살렘은 심히 죄악되었고 더러웠으나 그 결말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0] 대적이 손을 펴서 보물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 . . .

예레미야는 또 “대적이 손을 펴서 보물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을 금하여 주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사오나 저희가 성소에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라 했죠. 성전은 이스라엘에게 가장 귀한 곳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거룩한 성소로 이스라엘과 이방을 구별하셨죠. 그러나 이방인이 성소를 짓밟고 그곳에 들어갔고 성도들은 이제 그것을 보고 탄식해야만 했습니다.

 

[11]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소성시키려고 보물로 식물들을 . . . .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소성시키려고 보물로 식물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옵소서.”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에게는 먹을 것이 심각하게 부족하였죠. 그들은 보물로 식물들을 바꾸어 먹었고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해야 했죠.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형편을 대신해 “나는 비천하오니”라고 표현합니다. ‘비천하다’는 원어(졸렐라 hl;le/z)는 ‘무가치하다’는 뜻. 선지자는 다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옵소서.” 멸망당한 이스라엘의 남은 소망은 그것뿐이었죠.

 

12-17, 주께서 징벌하심

[12]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 . . .

예레미야는 말하기를,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라고 합니다.

유다 땅을 지나는 자들은 유다 백성의 근심과 고통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그들은 유다 백성의 고통을 동정하지 않았죠. 고통 받는 자에게 무관심한 것도 죄의 하나입니다( 16:49).

 [13] [그가] 위에서부터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 . . .

선지자는 또 말했죠.  [그가] 위에서부터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그가] 내 발 앞에 그물을 베푸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그가 나를] 종일토록 고적(孤寂)하여 곤비케 하셨도다.

“위에서부터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뼈들에 불 같은 고통을 보내셔서 견딜 수 없게 하셨다는 뜻이죠. 또 하나님께서는 유다백성들의 발 앞에 그물을 베푸셔서 그들로 물러가게 하셨고 종일토록 쓸쓸하여 곤비하게 하셨습니다.

 

[14] 내 죄악의 멍에를 그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 . . .

예레미야는 또 “내 죄악의 멍에를 그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케 하셨음이여, 내가 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붙이셨도다.”라 했죠.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손으로 묶고 얽어 그의 목에 올리셨고 그의 힘을 피곤케 하셨고 그들이 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그들을 패망케 하셨습니다.

 

[15] 주께서 내 지경 안 모든 용사를 없는 것같이 여기시고 . . . .

예레미야는 또, “주께서 내 지경 안 모든 용사를 없는 것같이 여기시고 성회를 모아 내 소년들을 부수심이여, [주께서] 처녀 유다를 술틀에 밟으셨도다”라고 말합니다. ‘없는 것같이 여기셨다’는 원어(실라 hl;s;)는 ‘경멸하셨다’(BDB), ‘거절하셨다’(KB, NASB, NIV)는 뜻. 주께서는 유다 지경 안의 모든 군사들을 경멸하며 거절하셨고 대회를 열어 그 청년들을 죽게 하셨고 처녀 유다를 술틀에 밟으셨다 했죠.

[16] 이를 인하여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같이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이를 인하여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같이 흐름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영을 소성시킬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참혹한 멸망의 현실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내 눈에’라는 말이 원문에는 두 번 반복되었다(에니 에니 ynIy[e ynIy[ ). 선지자의 눈에서는 비 오듯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17] 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사면에 있는 자를 명하여 야곱의 대적이 되게 하셨으니 예루살렘은 저희 가운데 불결한 자 같도다.

시온이 두 손을 펴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모습이며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죠. 그러나 시온을 위로할 자가 전혀 없었습니다..

 

18-22, 나의 거역과 패역 때문에

[18]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 . . .

예레미야는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이는]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거역하였음이로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근심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와 소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라 했죠.

 

여호와 그는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의롭다는 말은 ‘기준에 맞다’는 뜻이죠. 그 기준은 하나님 자신, 즉 하나님의 속성, 그의 뜻, 그의 계명과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사람의 양심에도 쓰여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일만 하신다. 그는 도덕적이십니다. 그의 심판은 의롭습니다. 이것은 의인에게는 감사한 일이지만 악인에게는 두려운 일이죠.

 

 [19]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불렀으나 저희가 나를 속였으며 . . . .

예레미야는 또 말했죠.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불렀으나 저희가 나를 속였으며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소성[회복]시킬 식물을 구하다가 성중에서 기절하였도다.

‘내 사랑하는 자들’은 유다의 이웃 나라들, 어려울 때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던 동맹국들을 가리키며,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인데, 그들은 전에는 유다와 친근한 교류가 있었지만, 유다가 어려울 때 관심과 동정을 가지지 않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죠. 그들은 유다를 속였고 동맹으로서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또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자기 영혼을 회복시킬 음식을 구하다가 성중에서 기절하거나 죽었습니다.

 

[20] 여호와여, 돌아보옵소서. 내가 환난 중에서 마음이 . . . .

예레미야는 “여호와여, 돌아보옵소서. [이는] 내가 환난 중에서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번뇌하오니[번뇌함이니이다]. [이는] 나의 패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으로는 칼의 살육이 있고 집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나이다.” 라 했죠.

예레미야의 마음은 괴롭고 번뇌하였으며 평안이 없었죠.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호소하며 기도하였습니다.

 

[21] 저희가 나의 탄식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고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합니다. “저희가 나의 탄식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고 나의 모든 원수가 나의 재앙을 들었으나 주께서 이렇게 행하심을 기뻐하나이다. 주께서 반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시리니 저희가 나와 같이 되겠나이다.

사람들은 유다 백성의 탄식을 들었지만 그들 중에는 유다를 위로하는 자가 없었다고 거듭 말합니다.

 

[22] 저희 모든 악을 주 앞에 나타내시고 나의 모든 죄악을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합니다. “저희 모든 악을 주 앞에 나타내시고 나의 모든 죄악을 인하여 내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 행하옵소서. [이는]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곤비하니이다[곤비함이니이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이 그들의 모든 죄악 때문임을 다시 고백했죠.

그러나 예레미야는 바벨론 등의 원수 나라들도 유다와 똑같이 그들의 죄 때문에 멸망을 당하게 하시기를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바벨론의 죄란 우상숭배, 부도덕함, 무정함, 포학함 등의 죄악이라 했습니다.

18절부터 22절까지의 내용의 요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유다 멸망의 비참함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입니다. 18,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이는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였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참조:김효성 & 안드레 홍/편집:익선 06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