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애가 강해

예레미야 애가 5장 강해(이스라엘의 긍휼을 간구함)

호걸영웅 2016. 7. 3. 08:26

    예레미야 애가 5장 강해(이스라엘의 긍휼을 간구함)

 

1.

여호와여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보옵소서

 

2.

우리의 기업이 외인들에게, 우리의 집들도 이방인들에게 돌아갔나이다

 

3.

우리는 아버지 없는 고아들이오며 우리의 어머니는 과부들 같으니

 

4.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나무들을 가져오며

 

5.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우리의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기진하여 쉴 수 없나이다

 

6.

우리가 애굽 사람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

 

7.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8.

종들이 우리를 지배함이여 그들의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

 

9.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

 

10.

굶주림의 열기로 말미암아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

 

11.

대적들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읍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

 

12.

지도자들은 그들의 손에 매달리고 장로들의 얼굴도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

 

13.

청년들이 맷돌을 지며 아이들이 나무를 지다가 엎드러지오며

 

14.

노인들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청년들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

 

15.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그쳤고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었사오며

 

16.

우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

 

17.

이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들이 어두우며

 

18.

시온 산이 황폐하여 여우가 그 안에서 노나이다

 

19.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

 

20.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22.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

서론)5장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파멸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탄식과 간구의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본론)

)파멸된 백성들의 모습들

[1-5] “여호와여, 우리의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수욕을 감찰하옵소서. 우리 기업이 외인에게, 우리 집들도 외인[이방인들]에게 돌아갔나이다. 우리는 아비 없는 외로운 자식[고아들]이오며 우리 어미는 과부 같으니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섶을 얻으오며 우리를 쫓는 자는 우리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곤비하여 쉴 수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인해 당한 비극적 상황과 수욕을 하나님께서 돌아보시고 기억해주시기를 구합니다. 이런 간청의 내용은 21절에서도 동일한 의미로 거듭 됩니다. 유다와 북 이스라엘이 당한 이런 모든 불행에 대해 탄원할 곳이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없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 아뢸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그 백성에게 희망적인 일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출애굽 이후부터 그때까지 무려 800여 년 간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살며

강성하게 하신 그들의 땅과 집들은 다 침략자들에게로 돌아갔죠. 그들은 아비 없는 고아들이나 어미들은 남편 없는 과부와 같았습니다. 각 가정은 실제로 자녀들을 보호하고 지켜주고 책임져줄 어른들이 대부분 죽거나 사로잡혀 가 없었으며 그런 사정은 나라 전체가 다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들은 가과엔 다 거저로 얻어 마시고 사용했던 물을 마시기 위해서도 돈을 주어야 하였고 땔감을 얻기 위해서도 값을 주어야 했습니다. 기본적인 식생활에 조차도 엄청난 어려움이 참으로 심각하였습 니다. 그들을 쫓는 자들은 그들의 목을 눌렀고 그들은 피곤하며 휴식을 취할 수 없다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6] 예레미야는 또,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악수한다’는 원어의 의미는 ‘손을 준다’는 말로서 상대에게 충성을 맹세하거나 복종하겠다는 뜻입니다. 에스라 10:19, “저희가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손을 주며] 그 아내를 보내기로 하고.”라고 한바 있습니다.

[7-8] 예레미야는 또 말하기를 “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종들이 우리를 관할함이여, 그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들이 당하는 현실이 바로 그들의 조상들의 죄악들 때문임을 다시 고백하였습니다.

유다의 선조들은 범죄하였고 지금은 다 기근과 칼과 염병으로 죽고 없어졌습니다. 자녀들은 그 선조들의 죗값을 계속해서 대를 이어 치러야 했습니다.

죗값은 그 크기에 따라 당대에 치르든지 그 자손 대에 치르든지 반드시 치뤄져야 했던 것이지요.

바벨론 나라의 신하들이 유다 백성을 다스렸을 때, 유다 백성은 온갖 학대와 수탈과 곤란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손에서 유다 백성들을 건져내어 줄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지요.

[9-11] 예레미야는 또 말하길“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 주림의 열기로 인하여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 대적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라고 했습니 다.

 메마른 광야에 조차도 바벨론 군인들이 숨어있거나 주둔하고 있어 그들의 칼이 곳곳에 있기 때문에, 양식을 얻기 위해 광야지역 조차도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날 먹지 못하고 퇴약볕 아래 헤매 다녀야 하였기에, 그들의 피부는 장작 아궁이처럼 시커멓게 타고 말았습니다.

더군다나 대적자들은 시온에서 부녀자들을, 유다 각 성에서 처녀들을 학대하고 강간을 일삼았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마치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숱한 수탈을 하고 위안부로 어린 여자들을 마구 끌어가 성노예를 삼았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12-14] 예레미야는 또 탄식합니다. “방백들의 손이 매어 달리며 장로들의 얼굴이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 소년들이 맷돌을 지오며[돌리오며] 아이들이 섶을 지다가 엎드러지오며 노인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소년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 방백들의 손이 매어 달렸다 함은 붙잡혀 구금 당하고 구타 당하고 심문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장로들의 얼굴이 존경을 받지 못했다 했습니다.. 이는 이전에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장로들이 이제는 전쟁의 패전의 책임으로 인해 모욕과 부끄러움을 당했죠. 이전에 그렇게 힘든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어린 소년들 조차도 무거운 맷돌을 돌렸고, 어린아이들은 땔감을 져 나르다가 힘들어 엎드러져 기진맥진 할 정도가 됐습니다. 노인들은 이전처럼 성문에 앉아 담소하거 나 성 안의 재판사건을 처리하는 일을 하지 못하였고, 소년들은 이전처럼 즐거운 노래를 부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15-18] 예레미야는 또 말합니다. “우리 마음에 희락이 그쳤고 우리의 무도가 변하여 애통이 되었사오며, 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 이러므로 우리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이 어두우며 시온산이 황무하여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이젠 다 그쳤고 즐겁게 추던 춤들이 애통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머리에서는 아름다운 면류관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영광이 떠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모든 비극적인 현실이 그들의 죄 때문이라고 거듭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행은 대개 죄 때문에 옵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이죠. 죄의 결과로, 그들의 마음은 피곤하였고 그들의 눈은 어두웠으며 성전이 세워져 있는 시온산은 황무해져서 사람들이 거하는 대신 여우들이 뛰노는 황량한 곳으로 변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간구

[19-20] 예레미야는 또 탄식하기를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앙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그의 영원한 통치자 되심을 고백합니다.

다른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장합니다.

‘시편 9:7,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 다.”라고 했고, 시편 29:10도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라 했습니다.

선지자는 영원하신 통치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진정으로 영원히 잊으시고 버리실 것인지 질문합니다. 물론 예레미야가 원하는 답, 아니 알고 있는 답은 아니다 입니다.

[21-22] 예레미야는 또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특심하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의미심장한 기도를 드립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라고 했습니다.

선지자가 성령의 감동 가운데 올린 이 기도는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력해져 있음과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귀한 진리를 증거합니다.

사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쓴 예레미야서는 이 진리를 밝히 계시하고 강조한 성경입니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일 했고, 예레미야 13:23= “구스인(이디오피아 사람, 혹은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진리는 신약시대에 사도 바울을 통해 밝히 증거되었습니다. 로마서 8: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했고, 로마서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선언입니다. 물론 인간의 의지도 어느 정도 필요하고 중요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와 자비가 더더욱 크고 갈급한 상황이라 할 수 밖엔 없습니다.

결론)

본장의 교훈은 분명합니다. 첫째로, 죗값은 크고 무섭다 입니다(7, 16). 하나님께서는 참된 심판자이십니다. 그는 죄에 대해 고생과 파멸, 영육의 죽음과 영원한 지옥 등으로 반드시 벌하십니다( 21:8).

둘째로, 그러므로 죄 용서 받고 하나님과 다시 화목케 되기 위해 그분을 갈망하며 도우심을 간청해야만 합니다.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내신 그 아들 예수를 구주로 모셔 섬기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이것이 온 인류에게 준 마지막 희망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에스겔서를 공부합니다.)

참고: 안드레 홍/편집:익선 062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