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강해

다니엘 9장 강해(이스라엘을 위한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 및 참고 자료

호걸영웅 2017. 6. 15. 02:17

다니엘 9장 강해(이스라엘을 위한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

 

서론)

본 장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뉩니다. 먼저는 1~19 까지의 이스라엘을 위한 다니엘의 기도, 다음은 20~27까지의 칠십이레에 대한 예언 부분입니다. 이 후반부인 칠십 이레는 매우 다양한 해석이 나와 있어 다 배우기는 어렵지만, 오늘은 세대주의, 곧 침례교도들이 주로 믿는 바에 대한 해석을 배우도록 합니다.

 

)(1-19) 이스라엘을 위한 다니엘의 기도
다니엘은 BC 605 (포로로 잡혀간 시점)부터 BC 536 (고레스 3)까지 약 70년간 활동했습니다. 즉 다니엘의 활동 시작과 마지막은 이스라엘의 포로 시작과 마지막과 거의 일치하죠. 9장의 사건이 발생한 때는 BC 538 또는 539년으로 봅니다.

 

다니엘과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생활이 68년 째 접어들던 때, 바로 그때에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바벨론 포로가 70년 만에 마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는 고레스에 의해 BC 536년에 이스라엘의 첫 번째 포로 귀환이 이루어졌으니, 앞으로 이스라엘의 포로 기간은 2년 남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는 거의 끝나가고 회복의 여명이 비취기 시작한 때였죠.

 

당시 포로 상황 속에서도 다니엘은 페르시아 제국의 총리라는 높은 위치에 있었기에 포로에서 귀환하도록 간절히 기도할 특별한 이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말하며 얼마든지 현실에 안주할 수 있었죠. 그러나 예레미야서를 읽는 도중 성령님은 다니엘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개인적인 안락함이나 영달보다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말씀하신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3절에 보니,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을 위해 기도하며 간구했다 했죠.

9:4-19절에서 다니엘은 베옷을 입고 재를 뿌리며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3). 그는 하나님을 광대하시며 두려운 분으로 고백했고 (4).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위해 언약을 지키고 인자를 베푸시는 분으로 고백합니다 (4).

 

 5-6절에서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포로의 원인이 자신들의 죄악임을 고합니다. (30번이나 ‘우리’가 범죄하였다고 고백함)

: "범죄하여-패역하며-행악하며-반역하며-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으며-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라며 겸허히 기도했습니다.

9절에서 다니엘은 긍휼과 사유하심이 주님께 있다고 고백했고 하나님은 긍휼로써 그 죄과를 사유하실 수 있다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계속 포로 중에 있다면 이방인이 볼 때 하나님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라고 19절에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이방 땅에서 제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절기를 지키지도 못하고, 율법이 시행되지 못하고, 이방인의 조소거리가 되며, 이방 우상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비극에 종지부를 찍어 주시도록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애통하며 드리는 간구이다. 자신의 안락한 삶이 아니라, 구약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기도이다.

 

)70이레의 예언 (20-27)

 

1. 성경이 다른 종교들의 경전들과 비교되는 가장 큰 특징(탁월성)은 예언과 그 정확성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언들이 문자적, 역사적으로 성취된 많은 증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선지자 미가는( 5:2)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을 예언하였는데 이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2:16). 이사야 53 9절에는 예수님이 부자의 무덤에 묻히실 것이라 예언되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27:57).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에 대한 여러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성취되었다는 겁니다. 수백 년 심지어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예언들이 역사 속에서 정확하게 문자적으로 성취될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을 주신 분이 바로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다니엘서에는 주목할 만한 여러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에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펼쳐질 세계의 역사와 마지막 종말의 때에 일어날 사건들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예언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다니엘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천사장 가브리엘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거룩한 성을 위한 70이레의 계획’을 알려주십니다(24). 구체적으로 살펴핍니다.

 

 2. 70 이레의 의미

 

먼저, 70이레 할 때, ‘이레’(week) 7일로 계산 된 시간입니다. 성경에서 ‘한 이레’라 함은 일주일 혹은 7년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본문에서는 7년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70이레=70 곱하기 7년의 시간, 490년을 의미합니다.

24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 된 70 이레 기간 동안에 다음과 같은 일이 있을 것이라 설명합니다.“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될 것’이라는 말씀은 초림의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실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 건설과 관계된 예언입니다. 이 땅에 장차 기름부음 받은 자(메시야)가 일어나 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의 성취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시작되었고,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세상 나라를 심판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천년왕국)를 건설하심으로 완성되어질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다니엘에게 보여준 70이레의 환상은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490년의 시간이 주어질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서 70이레에 대한 예언은 또 다시 7이레와 62이레, 그리고 한 이레의 대한 예언으로 구분되어지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25절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3. 일곱 이레

 먼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7이레와 62이레가 지나갈 것”이라 하십니다(25).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은 기원전 445년 니산 월 1일에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에 의해 성취됩니다.

 

느헤미야 2장에 보면, 니산 월에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 일하던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명령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내려갑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었지만, 대적들의 방해로 아직 예루살렘 성도 재건하지 못한 체 버려져 있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려진 때(BC.445)로부터 70이레의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합니다.

 

70이레 가운데 7 이레(49) BC 445년으로부터 BC 397년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BC 397년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가 활동했던 시기입니다. 바로 이 49년의 기간 동안 예루살렘성이 재건되고 이스라엘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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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62 이레

 7이레에서 62이레를 더하면 69이레, 483년의 시간이 됩니다.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뒤 정확히 483년의 시간을 계산하면 AD 30년 니산 월 10일이라는 날짜가 나오는데, 이 날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종려주일)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여 대관식을 치루었던 이스라엘 왕들의 전통을 따라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정확히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난 시점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난 것”입니다(25).

 

하지만, 26절에서는 또 다시 이렇게 찾아온 기름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요, 그 후 한 왕의 백성이 와서 예루살렘 성읍과 성소를 훼파할 것이라 예언하고 있습니다. “육십이 이레 후에”(26) 즉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입성하신 종료주일 사건 이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 죽으실 것과, 그 후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훼파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육십이 이레 사건, 즉 종료주일 사건 이후 예수님은 정확히 닷새 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있은 지, 40년이 지난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멸망 받게 됩니다.

 

개역성경에는 명확한 묘사가 빠져있지만 KJV을 보면, 26절에 등장하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야의 죽음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shall Messiah be cut off, but not for himself - “메시야가 끊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메시야의 죽음은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인류를 죄를 속하기 위한 대속의 죽음이 될 것임을 명확히 드러낸 말씀인 것입니다.

 이런 해석은 매우 단순하고 일반적인 해석이기도 합니다.

 

5. 한 이레

 여기까지는 70이레 가운데 69이레에 대한 예언이고, 이 모든 예언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정확히 문자적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마지막으로 남은 한 이레, 7년에 대한 예언인데, 27절에 보면 한 왕이(그가 - 적그리스도를 의미) 와서 이스라엘과 한 이레 동안 언약(평화조약)을 맺음으로 이 예언의 성취가 시작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26절에서는 기름부음 받은 자가 끊어진 뒤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자들이 바로 이 ‘한 왕의 백성’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KJV에서는 이 한 왕을 ‘장차 임할 통치자(the prince that shall come)’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 왕의 백성’ 혹은 ‘장차 임할 통치자의 백성’은 AD 70년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로마군대를 의미합니다. 이 사건 이후 예루살렘은 26절의 예언처럼 철저히 훼파되고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과거 역사와 몇 가지가 좀 맞지를 않습니다.

 

여기엔 우리가 지난 다니엘 2장과 7장 강해에서 살펴본 것처럼 로마와 유사한, 마지막 때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의 나라 정부를 암시해 줍니다.

교회시대 끝부분에 앞으로 세워질 적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저는 장차 말세에‘많은 사람들’(27) ,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나라를 재건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맺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지만, 3년 반의 시간(이레의 절반)이 지난 뒤, 말세의 적그리스도는 성전에 자신의 우상을 세우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우상 앞에 경배하기를 강요할 것이라 했습니다.

 

역사적 로마는 예루살렘 성전에 자기 우상을 세우고 경배하라 한 적은 없습니다. 7년 평화조약을 맺은 적도 없습니다. 고로 이 부분은 종말 사건에 대한 예언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한 이레가 바로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심판에 관한 예언, 즉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7년 대 환난과 일치하는 예언이죠.

 

극심한 대 환란과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사건들이 7년 대환난 가운데 오늘 본문에 묘사된 ‘한 이레의 절반’, 즉 후반기 3년 반의 기간에 일어날 것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 30 7절에서는 ‘야곱의 환난의 때’라고 묘사하고 있고, 다니엘 7 25절에서는 ‘작은 뿔’이 통치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 5절에서도 바다에서 올라온 한 짐승이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았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 (그리고, 또한) 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예루살렘의 운명을 걱정하며 기도하던 다니엘에게 주신 70이레 즉, 이스라엘에게 허락된 490년의 시간에 대한 약속 가운데, 69이레 483년에 대한 약속이 문자적으로 역사적으로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나머지 한 이레, 7년 대환난에 대한 약속도 문자적으로 정확히 성취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참고적으로 정동수 목사는 예수의 초림과 부활을 첫번째 산으로 표현하고 예수 재림을 두번째 산으로 보았으며, 첫 산과 둘째 산 사이의 계곡이 교회시대이며 유대인들에겐 가리워져 잘 보이지 않은 산이 둘째 산이라고 했다. 그리고 1년을 유대달력에 근거, 360이로 보았다. 이것이 매우 성경적 해석으로 보아야 한다.)

052317 안익선 목사/참고:송영목,정동수 , 방월석 목사,밤중소리(끝 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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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적인 주요 참고사항:

여기서 한이레는 7일을 나타내는데 성경의 다른 예들에서 처럼 (13:34 . 4:1-8) 여기서 하루는 1년으로 계산하는 것이 예언의 해석을 위해 합당합니다. 이것은 곧 밑에서 증명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70이레 즉 70주는 원래 490년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이 예언을 받을 때는 BC 540년경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BC 540 년 이후의 어느 시점에서 예루살렘을 회복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그때로부터 69이레 즉 483년이 지나면 메시아가 죽을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AD27-33 년경에 있었습니다. 이때로부터 476년을 빼면 BC 449-443년경이 됩니다. (원래는 69이레의 483년을 빼야 하지만 성경의 한 해는 360일을 기준으로 하고 태양력의 한해는 365,25 일을 기준으로 하므로 483년은 태양력으로 476년이 됨)

 우리는 역사의 기록을 통해 BC 449-443년경에 느헤미야 시대에 예루살렘 성벽을 쌓으라는 명령이 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2:1-8) 이런 연대들을 정확히 아는 것은 큰 의미가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출생 시기나 처형시기를 정확히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니엘의 환상 이후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뒤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시점부터 예수님의 죽음까지 69 이레. 483 (태양력으로 476) 이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니엘은 메시아의 죽음이 자기를 위한 죽음이 아니라. 대신 속죄 죽음이었음을 미리 예언 하였습니다. (9:26)

이런 시간 프레임을 보면서 우리는 다니엘 70이레의 해석을 위해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는 것이 정당함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남은것은 한이레. 7년입니다.

 여러 역사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BC 4년경에 출생하여 AD30년 경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이경우 예루살렘 을 회복하라는 명령은 BC 445년에 느헤미아의 청원을 받아들인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 내려진 칙령으로 볼수 있습니다. (2:1-8) 이때로부터 메시아가 출현한 AD 30년 까지가 484년이지만 기원전 1년과 기원후 1년 사이에는 1년의 기간이 없으므로 1년을 빼면 483 (태양력 476) 이 됩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 연도를 계산할 때 정확한 날짜까지 알 수 없으므로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지만 예루살렘 성벽의 중건 명령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은 69이레 (483) 의 시간 프레임에서 확실히 이루어 졌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등이 시간까지 정확히 이루어진 사실을 볼 때 그리고 명확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속성을 볼때 진짜 날짜는 매우 정확히 69 이레임을 우리는 나중에 천국에서 확인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26절에서는 이렇게 69 이레가 끝난 뒤 갑자기 장치 임할 통치자가 등장합니다. 이 통치자는 25절의 메시아 통치자가 아닙니다. 그는 유대인들과 한 이레(7) 동안 언약을 맺는데 갑자기 그 이레의 한 중간 즉 3년 반 되는 시점에 그 언약을 파기하고 희생물과 봉헌물을 드리지 못하게 하며 가증한 것으로 성소를 황폐하게 합니다.

 이것은 교회 시대가 유대인들에게 계시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다음 그림에서 보듯이 구약의 대언자에게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교회 계곡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69 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가 연속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며 그 사이에 다니엘을 포함해 구약의 대언자들이 보지 못한 최소한 2,000년의 기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도들에게 계시되지 않는 교회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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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정리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70 이레의 490년 중 69 이레 (483) 는 이미 지나갔고 마지막 한 이레. 7년만 남았습니다 69 이레 이후부터 70째 마지막 이레가 시작될 때 가지의 공백기는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루어지는 때 즉 교회시대입니다. 마지막 한 이레는 물론 7년 환난기이며 이것이 끝날 때 유대인들의 전체적인 회심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천년왕국이 이어질 것입니다.

 다니엘서 70 이레의 역사와 시기

             

               역사

         실제 기간

 7 이레 + 62 이레 = 69 이레 (483)

 예수살렘을 회복하라는 명령~ 메시아가 죽을 때까지

      BC 445 ~ AD 30

  공백기  (현재 포함)

 교회시대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루어지는 때

    메시아가 끊어진 후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을 때까지

 나머지 한 이레 (7)

 장차 올 통치자 (적그리스도) 가 이스라엘과 7년간 언약을 맺고 3년 반 뒤에 (성소 파괴.홍수. 끝까지 전쟁이 있음)

          ? (미래)

 70 이레가 다니엘에게 주어진 이후에 그 안의 세부적 내용은 그대로 역사에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70 이레는 원천적으로 다니엘의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므로 신약교회나 신약 성도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에게 계시되지 않은 공백기 즉 69 이레 후의 공백기가 바로 우리 이방인들의 교회 시대에 해당합니다.

 이 기간에 정혼하신 우리의 신랑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셔서 신부인 교회 성도들을 위해 처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14:1-3) 공백기가 끝나면서 신랑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오셔서 자신의 신부를 채어 데리고 올라가시면 이제 인류 역사의 마지막 한이레인 7년이 이 땅에 임하게 됩니다. 바로 그 기간에 하늘에서는 그리스도의 신부에게 보상을 주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의 심판이 열리고 땅에서는 믿지 않다가 환난기에 들어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 대한 환난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마지막 한이레 말할 것도 없이 미래에 있을 환난의 기간인데. 이 기간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다니엘서를 인용하며 들려 주셨습니다

 "' 그런즉 대언자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신바 황폐하가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너희가 보거든 (누구든지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 (24:15) "'

 적그리스도는 3년 반이 되는 때에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깨면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자기를 가리켜 하나님이라 하며 경배를 요구할 것입니다. 이 멸먕의 아들은 바울도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언급했습니다.

 "'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그는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인 것을 스스로 보이느니라. (살후 2:3-4)

이때부터 세상의 창건 이후로 없었던 극심한 대화난이 3년 반 동안 지속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때의 극심한 환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들로 도망할지어다. 지붕에 있는 자는 자기 집에서 무엇을 취하려고 내겨가지 말며 들에 있는 자는 옷을 가지로 될돌아가지 말지어다. 그 날들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그러나 너희는 도피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너희는 기도하라. 그때에 큰 환난이 있으리니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이때까지 그런 환난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24:16-21)

 이때에 대해서는 다니엘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그때에 네 백성의 자손들 (유대인들) 을 위하여 일어서는 큰 통치자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고난의 때가 있으리니. 그것은 미족이 있은 이래로 그때까지 결코 없었던 고난일 것이며 그때에 네 백성이 구출을 받되 책에서 발견된바 기록된 모든 자가 구출을 받으리라.( 12:1)

 이때는 다이엘의 백성인 유대인들을 주요 목표로 하는 고통의 때입니다. 바로 이때에 유디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미가엘이 등장합니다. 이런 말씀을 영적인 환난으로 보거나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다 겪는 환난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단서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4 16절에는 " 모든" 이라든지 " 전 세계적" 이라는 암시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마태복음 24 16절은 " 유대에 있는 자들" 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 대환란이 유대인들의 환난임을 보여 줍니다.

 또한 " 겨울에 임하지 않도록" 이라는 표현은 이것이 국지적인 일임을 보여 줍니다. 북반구가 겨울일 때 남반구는 여름이기 때문입니다 " 안식일에 임하지 않도록"  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들은 오직 유대인들 뿐입니다.

이런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신학 체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영해를 하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성경은 점점 더 모호해지며 하나님의 단순한 말씀은 곡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한 시스템의 대표적 피해 사례가 바로 ' 신천지 ' 이단입니다.

  다니엘서 9 26절은 적그리스도가 성소를 파괴하고 황폐하게 하는 그때에 홍수가 있을 것을 말하는데. 요한계시록에도 이분분의 짝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사내아이를 낳은 그 여자를 핍박하더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았으니 이것은 그녀가 광야 곧 그녀의 처소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얼굴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양육 받게 하려 함이라. 뱀이 자기 입에서 여자의 뒤로 물을 홍수 같이 내 뿜어 그녀를 홍수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자기 입을 벌려 용이 그의입에서 내 뿜은 홍수를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진노하여 그녀의 씨 중에서 남은 자들 곧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진자들과 전쟁을 하려고 가니라."" (12:13-17)

 여기서 사내아이는 메시아이며 여자는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마지막 환난 때에 피난처로 숨겨져서 보호를 받게 되는데 이일은 계시록 12 6절과 14절에 있듯이 1260일 즉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입니다. 이것은 또한 다니엘의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인 3년 반입니다. 이때 뱀 즉 마귀는 홍수를 일으켜 유대인들을 죽이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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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다니엘의 예언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수학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알고자 하는 사람은 믿지 않을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휴거와 환난기를 포함하는 인류의 마지막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계시록이나 성경의 어느 한부분에만 의존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신구약의 여러 조각들이 합치되어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입체적으로 성경의 증거들을 살펴보지 않고 한두 곳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구절을 이용해 교리를 만드는 이단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 한 권이면 모든 논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바른 믿음과 맑은 정신으로 말씀을 겸허하게 연구하고 풀어가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 합니다.

 KJB.1611 킹제임스흠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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