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2장 강해 (이스라엘 지도자와 백성의 죄) 오늘은 미가서 2장을 상고하겠습니다. 미가 선지자의 이름은 '누가 여호와와 같으리요?'라는 뜻이며 그 내용은 당시의 죄악을 책망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장래의 소망을 보여 주었습니다.
1장에서 미가는 먼저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심판을 예언했는데, 2장에서는 심판의 원인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런데 1장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죄악을 고발한 데 비해 2-3장에서는 인간 대 인간의 범죄를 책망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두 범죄의 양상은 모두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기인합니다(롬 8:28).
즉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자행하는 모든 범죄의 밑바닥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는 교만죄가 깔려 있습니다.
2장에 기록된 사람들 간의 죄악들을 크게 분류해 보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권력자의 폭력과 압제(1, 2, 8, 9절), 둘째 참선지자를 거부함(6, 7절) 그리고 셋째 거짓 선지자를 좇는 것입니다(11절).
이제 본문을 보시면서 자세히 상고해 보십시다. 1절: 사람이 중심에 악을 궁리를 하며 음모를 꾸민다는 것은 화를 받을 일입니다. ‘잠자리’는 휴식을 위하여 있는 곳이지 악을 계획하기 위한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층은 빈약한 자들을 착취하기 위하여 밤중에 조차도 악한 짓을 연구하였습니다. 권력이 있는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이, 그저 탐심을 채우기 위하여 쉼 없이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침상에서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반성을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거기서 악을 계획한다면 그는 자아 성찰의 기회를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저들의 반역하던 곧은 목이 장차 꼼짝 못하며 피하지 못합니다. 교만히 행하던 지도자들의 목에 도저히 벗길 수 없는 무거운 멍에가 지워져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을 예언하십니다.
실제로 이 예언은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공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처럼
교만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오직‘회개’뿐 입니다(7:9).
이러한 이방인의 비아냥거림은 유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실 하나님의 명예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당신의 명예가 훼손되심에도 불구하고 유다를 징계하시는 이유는 공의를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땅을 차지하는 자들이 취하는 행동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희년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의 기업을 받는 의미에서 가나안 땅을 나누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 같은 축복을 받을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약속의 땅은 범죄자들에게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는 자에게 분배되기
때문이었습니다(레 26:3; 신 11:8). 그러므로 이들의 모든 산업이 다 원수의 것이 되고 마는 비참함을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멸망시키는 죄인은 하나님 백성의 회중에 들지 못할 것입니다. 이들은 종말의 예언을 듣기 싫어하였고 오히려 대항을 하였습니다. 본 절은 이 2장의 요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순종하지 않는 강퍅한 자들은 언제나 진리를 전파하는 것 조차 싫어합니다.
(암 7:16)= 아모스도 역시 같은 금지의 명령을 받은 적이 있었다 했습니다. 사도들도 역시 그런 핍박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으니 계속적으 로 예언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미리 경고를 주심은 그들로 하여금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키도록 깨우쳐 주시는 사랑입니다.
딤후 4:3=육신의 정욕을 따르는 자는 진정한 전도자의 말씀을 배척합니다. 그들은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둘 것이라 했습니다. 충성된 말은 귀에는 거슬려도 행실에는 유익합니다.(양약은 고구이나 이어행이요 충언은 역이이나 이어행이라/ 양약(良藥)은 고구(苦口)이나 이어병(利於病)이요 충언(忠言)은 역이(逆耳)이나 이어행(利於行)이라-했어요 )
회개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들을 원망할 뿐만 아니라 그 심령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뒤꿈치로 가시나무를 걷어 차는 자와 같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연이어서 거짓 예언자들을 따르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질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강퍅한 자들을 벌하심은 결코 성급하심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받지 못하는 원인은 대개는 자기 자신에게 달린 것입니다(시 18:25-26). 그러나 회개한 자는 자기의 불행의 원인을 자기에게 돌리고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한 심판을 내릴 것이나 말씀을 지키는 자는 오히려 유익을 보도록 할 것이되
순종치 않고 세상의 물질만을 탐하는 자들은 오히려 더 큰 멸망이 올 것입니다.
‘내가 준 복’이라는 말씀은 그 어린 자녀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되어 있는 원래의 복된 유업과 축복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포학한 지도자들이 채권자로서 그 할 수 없는 채무자인 과부들의 자녀들을 자기 종으로 데려가거나, 혹은 외국인에게 종으로 파는 것을 가리킵니다(왕하 4:1). 자유의 상실이요 행복의 상실이요 인권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경건한 자는 이런 약한 자들을 돌아보면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성별 생활을 합니다(약 1:27). 그러나 불경건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불쌍히 여기시는 자들을 학대하고 억압하며 권리를 강탈합니다.
여기서 ‘포도주’와 ‘독한 술’은 세상 복리와 방탕함과 쾌락주의 물질만능주의를 상징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죄인들에게 이 세상 평안을 말해 주며 걱정 할 것 전혀 없다고 합니다. 거짓선지자들은 사람의 죄악을 무시하고 도리어 사람들에게 아첨하며 기복주의에 빠지도록 합니다. 진리를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이런 거짓된 자를 환영합니다.
‘남은 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시련을 통하여 더욱 연단될 정의로운 소수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이 회복의 약속은 메시야의 재림 때에 온전히 성취됩니다. 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 하에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길을 여는 자’라는 말은 ‘The Breaker'라는 뜻입니다.
The Breaker'=이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의 결박을 깨뜨리시고 우리에게 참된 해방을 주십니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모든 장벽을 깨뜨리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사탄의 세력들을 깨뜨리시며,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십니다. 마치 북극의 얼음을 깨는 쇄빙선( ice-breaker ship)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참된 자녀를 한데로 모으시고 초장의 양떼 같이 보호하되, 여호와께서 친히 선두로 행하시므로, 여호와의 자녀는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전장에서 훌륭한 지도자는 선두에 섭니다. 백성만 앞세워 죽게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역사가 하나님의 온전하신 주권적인 사역이심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심으로 독생하신 아들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고, 친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모든 죄를 사하십니다.
이제 이 구속함을 받은 백성들도 달려서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강력한 행진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이 말씀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훈이 무엇입니까? |
010318 안익선 목사/ 참조:Y.J.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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