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강해

시편 50편 강해(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들)

호걸영웅 2018. 5. 2. 00:48

시편 50편 강해(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들)

50
[1] [
아삽의 시]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3]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4]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5]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너의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6]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셀라)
[7]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서론)

이 시편 50편의 저자 아삽은 왕상 16:4-5을 통해 살펴보면 레위사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하나님을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케 한 무리중의 지도자, 오늘날로 말하면 국립 찬양목사? 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임무보다 찬양을 지휘 감독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죠.. 시편에 포함된 아삽의 시는 73-83편까지 무려 11편이나 됩니다.
 
오늘의 본문 시 50편의 1-7절은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후반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일들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잠시 안톤 슈나크의 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소개 해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는 ´아이세여, 내 너를 사랑하노라.......´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음을 볼 때.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씌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 어린 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 사건이었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 때 아버지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가를 왔다갔다하는 그 동물의 번쩍이는 눈, 무서운 분노, 괴로움에 찬 포효,
앞발에 서린 끝없는 절망감, 미친 듯한 순환,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더없이 슬프게 한다.

휠데를린의 시, 아이헨도르프의 가곡.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 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 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사냥꾼의 총부리 앞에 죽어 가는 한 마리 사슴의 눈초리. 자스민의 향기. 이 향기는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 그루 노목이 섰던 나의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날아가는 한 마리 해오라기
추수가 지난 후의 텅 빈 논과 밭
술에 취한 여인의 모습

어린 시절에 살던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는 이 없고
일찍이 뛰놀던 놀이터에는 거만한 붉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데다

당신이 살던 집에서는 낯선 이의 얼굴이 내다보고
왕자처럼 경이롭던 아카시아 숲도 이미 베어져 없어지고 말았을 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어찌 이것뿐이랴
오뉴월의 장의 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 색과 그리고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얼린의 G
가을 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있는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가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만월의 밤 개 짓는 소리
크눗함센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이의 모습

철창 안으로 보이는 죄수의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
이 모든 것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출처: http://copyi.tistory.com/888 [잔잔하고 조용한 음악의 세계로])

물론 이 글의 내용은 슬픈 일들이긴 하지만, 신앙의 눈으로 볼 땐, 가장 슬픈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모든 것들은 예수님을 통해 새롭게 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비록 안타까운 어느 성도의 죽음일지라도 예수께서는 새롭게 해 주십니다.
(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라 하셨습니다.

(
살전 4:13,14)도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했어요.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것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공감한 안톤 슈낙의 글의 내용도 그다지 슬픈 것이 아니라면 그럼 무엇이 슬픈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으로 부터 들려지는 절망적인 말씀입니다. 그 모습은 오늘 본문 아삽의 시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략 세 단락으로 나눠 생각해 봅니다.

본론)
)첫째, 하나님께 드린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지 못하셨다는 말씀이 제일 슬픈 말씀입니다.
(
50:8-13) [8]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여기 하나님께서는 8절에서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다르게 생각하면 네가 드린 제물은 있으나 제물을 드리는 너 자신은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겨우 사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온전히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고, 그렇게 됨으로 생명의 관계 속에 우리가 연결되며,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제물을 통하여 우리를 받길 원하십니다.

 

예배를 아무리 드려도 아무리 많은 제물을 드려도 그 제물을 받치는 사람의 마음이 드려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한 상태는 남방 유다의 이사야기 활동하던 시대의 부정적인 상황과 유사합니다. 그때에도 많은 무수한 제물들이 받쳐졌으나 하나님께 제물을 받치는 사람들이 드려지지 않기에 제물도 아무 소용없다고 하셨죠.

(
1:11-13)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받지 못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입니다.

고로 신약에선 사도 바울이 ( 12:1)을 통해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했어요.

- 그럼 산제사, 곧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12:2)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했으니 바로 이 말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이 세대 본받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을 본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생애이다. 둘째,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 이전의 죄된 삶, 불신앙의 삶에서 떠나야 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과 정반대로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제일 슬픈 말씀입니다.
(
50:16-20) =[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라 했어요.
-
본문의 악인의 정의는 말씀과는 정 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 혹은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을 잘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는 하지만, 예배 중에 들은 말씀과 현실의 삶이 전혀 다른 삶을 살 때 ......이것은 바로 가장 슬픈 일이 됩니다.

이사야의 시대를 다시 살펴보면,  
(
1:13-15)에서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고 했습니다.

 
-
참된 예배의 삶이 아닌 정반대의 삶을 살기에, 아무리 그가 하나님께 기도해도 듣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눈을 가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로 약214부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이 제일 슬픈 일입니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
하나님을 잊은 사람들의 선택의 결과는 사망과 영벌입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께선  발기발기 찢어버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잊으면 생명을 잃는 것이다. 바람의 겨와 같은 삶. 의미와 목적을 상실, 그를 조종하는 사단의 뒤를 따라서 살게 된다. 고통과 좌절 죄책감, 후회, 그리고 결국에는 비극적인 사망의 결과를 얻게 됩니다.

결론)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첫째,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지 못하셨다는 말씀이 제일 슬픈 말씀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와는 정반대로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제일 슬픈 말씀입니다. 셋째, 너희가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이 제일 슬픈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슬픈 말씀이 들려지지 않게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본문은 두 가지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고 했습니다.

첫 번째, 감사의 제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둘째, 바른 행실을 통해 하나님과의 신뢰와 사랑의 관계가 늘 유지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참으로 복된 생명력이 공급될 수 있습니다.

              040518 안익선 목사/ 참고: 부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