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강해

아삽의 신앙회복 (시편 73편 )

호걸영웅 2018. 5. 2. 00:50

아삽의 신앙회복 (시편 73 )

서론)
본문의 저자는
아삽이라는 다윗 왕 시대의 사람입니다. 아삽은 성전의 성가대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죄를 피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르고도 다양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 현재 자신이 처하여 있는 상황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가 하면,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아삽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인가?
“경건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하는 것을 고민하며 살았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본론)

 

)아삽의 고민

본문은 아삽이 겪은 신앙의 위기에서 신앙을 회복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6절은 아삽의 신앙 회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삽이 이해하는 하나님은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셨습니다.
1
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의로운 사람에게 선을 행하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리고 정결하지 못한 악인에 대해서는 악으로 갚으시는 그런 하나님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현상들을 가만히 보니까,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입니다. 14절에서 아삽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날마다 종일토록 있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하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이 아삽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삽이 처한 상황은 무엇일까요?
그는 지금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 힘든 상황을 만났습니다.
아삽은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내가 하나님을 잘못 섬기는 것인가? 정말 하나님이 계신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실족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고 말합니다. ‘실족’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발에 힘을 못 써서 비틀거리다가 넘어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는 지금 할 말을 잃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의인은 고통 중에 있고 악인은 형통함을 누리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3절에서“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하고 고백합니다.
, 악인의 형통은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알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면, 악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기에 아삽이 그토록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을까요?
4
절에 보면, 그들은 일평생 건강하게 살고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이 죽습니다.
5
절에 보면, 그들은 어려움을 당하는 일도 없고, 병으로 고생하는 일도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6절에 보면 희한하게도 폭력을 써서 재물을 쌓는데도 아무런 일이 없습니다.
강포가 그들의 옷입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그들의 보편적인 일상입니다. 그들의 말은 다른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는데도 누구 하나 잘 못했다고 덤비는 사람도 없습니다.
말의 도를 지나쳐서 이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에게 말을 마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재산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간다는 것입니다. 7절에 보니까,“저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이번에는 한10억쯤 벌면 좋겠다”하고 마음을 먹으면 한100억씩 번다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고 악행을 행하는 사람들이 이러니 아삽이 분하고, 원통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이죠.

본문에 나타난 이 아삽의 고민은 물론 아삽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우리 가운데서도 많은 분들이 이런 문제를 만나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곧잘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고, 신앙을 버리고 마침내 다시금 세상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이런 문제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흔히 경험하게 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아런 문제는 우리의 신앙성장을 위해서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삽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 이외에
악인들 때문에 발생하는 심각한 몇 가지 문제들이 본문을 보면 계속해서 나옵니다.

아삽이 자꾸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는 것 중에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엄청난 죄악들도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놓고 욕하고 거슬리는데도 묵묵히 그냥 가만히 계시는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아삽은 16절에 보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고통이 되었더니”하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심히 답답하고 곤란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삽은 결국 이 문제를 해결받습니다.
17
절“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했습니다.
이는 성소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문제를 해결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고민과 울부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종말을 보여주시므로 마음에 얽힌 문제들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기도의 응답

17절의 말씀은‘기도의 응답’입니다. 악인들의 최후는 미끄러져 파멸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위풍당당하던 악인들, 평생 건강하고, 병도 없고, 온갖 모욕적인 말로 위협하던 자들, 돈이 많아서 남을 업신여기던 자들,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었던 자들이 깊은 수렁으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악인들을 보면 처음에는 잘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이 세상을 살아갈 동안 내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잘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고 하십니다.

18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면,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두는‘버림받은 인생들’입니다. ‘사랑’의 반댓말은 ‘미움’이 아닌‘무관심’이라 했습니다.
잘못을 하고, 죄를 저질러도 하나님의 간섭도 없고, 멸망의 길로 달려가도 그냥 내 버려두는 것이야 말로 가장 비참한 인생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128절은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라고 하셨어요.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관여하시고, 역사하시고, 인도하시고 징계해 주시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했을 때, 채찍을 들어서라도 우리를 책망하시며 올바른 길로 인도함을 받는 그 자녀야말로 얼마나 복된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못을 해도 그냥 내버려 두는 사람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입니다.

히브리서 126절 말씀에“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아삽은 비로소 성소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23
절에 보니까, 그는 날마다 넘어지는 연약한 자신이지만 미끄러지지 않게 하나님의 손이 붙잡아 일으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교회에 꼬박꼬박 찾아 나와 겸손하게 엎드리는 예배자들을 사랑으로 감싸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눈은 너무나 근시안적입니다. 고로 양 같다 했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것만 보고, 멀리를 볼 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과거를 아시고, 현재를 아시며,
먼 미래를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현재의 고난이라는 산을 넘을 때, 그 뒤에‘은총’을 예비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납득이 가지 않고, 계산이 안 되어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558-9절“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의 첫 걸음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자꾸만 인간의 기준으로 맞추다 보면 문제만 크게 보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고로 아삽은 23절에서 주님은 나의 오른손을 붙들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아삽은 미끄러질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왜 미끄러지지 않았나요? 그의 오른 손을 붙잡아 주신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결론)
성도들의 삶이 자꾸만 꼬여가고, 악인들은 번성하고 형통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민 될 때, 이 시편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고로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8
절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28절은 아삽이 내린 최종적인 결론입니다. 할렐루야!

042718 안익선 목사/ 참고: 정승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