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강해

시편 104편 강해 (창조의 주를 모시고 살자

호걸영웅 2018. 6. 2. 01:19

시편 104편 강해 (창조의 주를 모시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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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입으셨나이다
2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3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4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지를 삼으시며
5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6
옷으로
 덮음 같이 주께서 땅을 깊은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로 솟아올랐으나
7
주께서
 꾸짖으시니 물은 도망하며 주의 우렛소리로 말미암아 빨리 가며
8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곳으로 흘러갔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9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10
여호와께서
 샘을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사이에 흐르게 하사
11
각종
 들짐승에게 마시게 하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12
공중의
 새들도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는도다
13
그가
 그의 누각에서부터 산에 물을 부어 주시니 주께서 하시는 일의 결실이 땅을 만족시켜 주는도다
14
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15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16
여호와의
 나무에는 물이 흡족함이여  그가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들이로다
17
새들이
  속에 깃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18
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 ...

서론)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04편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자연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노래합니다.  시편 104편의 저자는 누구인지 모릅니다. 
어쨌든  시는 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본론)

그래서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 "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입으셨나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존귀와 권위를 송축하되 특별히 이것으로 옷을 입으셨다고 말합니다.
옷은
  사람의 신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를 가지신 분이신가를  말해줍니다.

2
절에서도
 시인은 하나님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었다고 표현했습니다. 
빛은 우리에게 따스함과 생명과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이처럼 빛이신 하나님 안에는 사랑의 따스함과 생명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물과 빛이 없다면 생물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또 하늘에 휘장을 치셨다 했습니다. 대기권을 의미합니다.  이 대기권의 오존층은 태양에서 쏟아지는 방사선을 막아내는 기능을 합니다. 안 그랬다면 우린 다 피부암에 금방 걸려 죽고 말 것입니다.

 3절에서는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 거대한 구름을 이루고 또 바람에 밀려 공중에 둥둥 떠가는 구름을 바라볼 , 하나님께서 지금 수레를 타시고 지나가시는  같다고 노래합니다. 또한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는 서늘한 바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날개라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자연계의 모든 질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기에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실제로 자연의 광대함과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1:20절에서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었나니" 말씀하였습니다.

최근 과학자들이 하루살이를 연구했답니다. 그런데 하루살이는 꼭 하루만 사는 것이 아니라 약 삼일 이상도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입이 거의 퇴화되어 물을 약간 먹는 정도 외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은 후 죽는다고 합니다. 물론 성충이 되기 전에는 1년 정도를 먹고 성장한다고 합니다. 그간에 무려 20  이상을 탈피를 합니다. 하루에서 삼일 정도를 살아도 그들은 그 시간을 참으로 치열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히 사는지 모릅니다.

동남아시아 쪽에서 자라는‘두리안’이라는 과일이 있습니다. 두리안 나무의 높이는 25~40미터에 이릅니다. 한 나무에 200개 이상이 달립니다. 냄새는 지독해도 맛은 천국처럼 달다고 합니다. 이 과일은 매우 큽니다. 무려 무게가 1~8 킬로그램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껍질은 뾰족한 큰 가시돌기 같은 것이 온통 나 있는데 워낙 단단하여 망치와 끌 같은 것으로 부숴야 합니다. 그래서 만약 그것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것이 떨어지면 사람이 뇌진탕을 일으키거나 죽을 수도 있는 크기와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리안은 익으면 꼭 밤에만 떨어진다고 합니다. 고로 인도네시아에선 ‘두리안 나무 밑에선 한 밤에 사랑을 속삭이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두리안은 묘하게도 사람이 안 다니는 한 밤중에만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생명을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드신 만물을 통하여 그분의 능력과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 하셨고 들에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자연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분의 능력과 권능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자연은 2 성경이다"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연을 통해, 그것을 지으시고 운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손길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대자연의 질서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비를 보면서 감사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10절부터는 하나님께서 땅을 돌보신다는 고백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특히
 샘과 비가  척박한 땅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이렇게 하나님은 땅에서 샘물을 솟아나게 하여 생물들로 번성할  있게 하신 것입니다.   물들이 산들 사이를 흐르며 들짐승들과 공중의 새들에게 흡족한 생명수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었다는 것입니다. 

13-15절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대한 묵상입니다.(13-15)
13
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누각,  3절에서 말씀했던 하늘의 처소에서 산에 물을 부어주셨다고 노래합니다. 
 비가 땅을 만족하게 해서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비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합니까?
14
절에서
 하나님께서 비를 주셔서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셨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래서 15절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 포도주는 포도에서 나는 것이요 그 포도나무는 물이 없으면 자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포도주는 발효균에 의해 장시간 발효되면서 당분이 변해 알코올이 됩니다. 발효를 위한 누룩이 없다면 포도주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고로 '포도주' '기쁨' 상징하는 표현이 됩니다.  그 공기 중의 발효균은 하나님께서 창세 때부터 만드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포도주를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쁨의 근원이 되신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은 주로 감람나무에서 추출한 기름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상처를 보호하기도 하고 건조하고 더운 지방에서 피부의 수분 증발을 막아주는 보습제로도 이용되었습니다.   기름은 '풍부함' 흑은 '고귀함'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고귀하고 풍요롭게 하셨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6-18 말씀에 보면,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대변되는 나무들에게 비를 충분히 주시는 것과(16),   나무들을 통해서 학이나 다른 새들의 둥지를 지을 터전을 제공하는 (17),  바위 산에 사는 산양과 너구리(혹은 토끼 너구리)까지도 안전하게 거처하게 하시는 (18) 노래하고 있습니다.

결국
 시인은 하나님의 창조가  땅의 모든 피조물들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채움의 창조였다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아름다운 세상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하다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결론)

우리에겐 인생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치열했고 어려웠던 시절이 많았습니까?  얼마나 많은 위험을 지났으며 얼마나 많은 죽음의 고비들을 넘어 왔습니까? 그러나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순간 순간을 지날 때는 죽을 것처럼 힘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으로 먹이시고 입히셨고, 생명 길로 인도 하셨으며 피할 길을 내셔서 능히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해야 합니다.
창조신앙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렇게 나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돌보시고 먹이시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손길을 느끼고 경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시편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묵상이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바라보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셨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다는 합당한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그런
 감사를 소홀히 하거나 잊고 살아왔던 것을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때를 따라 먹이시고 입히시며,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온전히 거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일진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참새 돌보시고 들의 백합화를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아름답게 입히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모든 염려와 시름은 다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시고 우리는 오히려 그분의 신실하심과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는 오늘 이 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051018 안익선 목사/ 참조: 신성 주 마음교회 & 짱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