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서론 (1~14장)
1. 총평
죠지 엘 로빈슨은 스가랴서를 말할 때,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메시야적이고, 가장 묵시적이고,가장 종말론적인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스가랴서에 메시야 사상이 강조된 까닭에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스가랴서를 자주 인용했는데, 무려 41회나 인용을 하였습니다.
2. 스가랴는 누구인가?
1:1에 그는 베레갸의 아들이요, 제사장 잇도의 손자라고 하였다. 짐작컨데 그
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학개선지자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으며 느헤미야서 12장 16절에는
스가랴를 선지자일 뿐 아니라 제사장 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신약에서는 이 스가랴가
순교한 것으로 예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역사적 배경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포로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복지로 돌아왔습니다. 이들이 바벨론에 서 포로
생활을 할 때에, 이들에게는 피맺힌 한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고 거기에서 다시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고향에 돌아오자 마자 성전 복구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학개서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뜻하지 아니한 여러 가지 방해로 인하여 대략 15년 정도가 지체되었습니
다. 자연히 백성들의 성전재건에 대한 열망도 식어졌으며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도 식어졌고, 개인의 안락을 먼저 추구하는 평범한 삶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때에 "너희는 너희 집을 꾸미는 데는 전념하면서 성전을 재건하고 우리
하나님의 사역을 부흥시키는 일에는 그리도 관심이 없느냐?"라고 부르짖으며 등장한
선지자가 학개였습니다. 이 학개 선지자가 등장하여 성전건축을 다시 시작하라고 외치
기 시작한 두 달 후, 학개선지자와 똑같은 역사적 사명을 띠고 등장한 선지자가 바
로 스가랴였습니다. 그러므로 학개와 스가랴는 동시에,같은
시대에,같은 대상,같은 민
족을 향하여 주의 메세지를 전달한 것입니다.
학개 선지자는 학개서에 기록된 내용을 전달한 후에는 별다른 활동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학개선지자가 불을 당긴 사람이라면, 스가랴는 그 바톤을 이어 받아 성전건축을 완료할 뿐만 아니라
그 이후를 담당한 선지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4. 학개와 스가랴 비교
같은 시대에 같은 목적을 가지고 활동한 두 사람의 선지자는 여러 면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첫째, 연대(연령층)가 달랐다.
학개선지자는 나이가 연로한 노인 이었으며 그는 포로로 잡혀가기 전 솔로몬 성
전을 보았을 것으로 추측되며 그의 나이는 어림잡아 80이상은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스가랴는 포로시대 이후의 젊은 세대였을 것이며 하나님은 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비돼어진 시대의 일꾼을 쓰시되 노인과 젊은이를
동시에 사용하셨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둘째, 스타일이
달랐다.
학개서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책망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가 중대한 과제를 앞
에 두었는데,이 과제를 망각하고 개인적인 안일한 삶 속에 빠져 있음은 어찜이뇨
?"라는 것이 대체적인 흐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스가랴서는 책망보다는 격려와 소망의 제시를 주로 하고 있어요. "우리가 이 일을 완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좋은 일을 준비하셨습니다.영광스러운 일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된다(4:6)고 외쳤습니다.
셋째, 표현이
달랐다.
학개서의 내용을 보면 대체적으로 평범하다는 인상이지만, 그에 비하여 스가랴는
완벽한 시적의 구조를 가지고 씌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학개를 서민스타일의 목
소리 였다면 스가랴는 완숙한 시인의 목소리를 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넷째, 관심
둔 성전의 유형이 달랐다.
학개의 사명은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빨리
지어야 한다고 독려했습니다. 그런데 스가랴는 그 뒤를 이어서 다음 단계인 마음의 성전을
강조합니다. 사실 건물을 짓는 일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전의 목적이 단순한 건물의 과시가 아니며 학개의 뒤를 이어서 한층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성전건축을 외치고 있는 것이
사가랴 였습니다.
다섯째, 서로의 관심이
달랐다.
학개의 관심은 지역적이었습니다. 학개는 예루살렘에 대한 관심이 높았죠. 그러나
스가랴의 관심은 한걸음 더 나아가 범세계적인 범위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범위를
예루살렘에 제한시키지 않고 우주적인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5. 주요 내용
스가랴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눈다.
첫째, 1장-6장= "성전재건에 대한 소망
둘째, 7 -8장= "성전 재건의 자세"
셋째, 9- 14 장= "메시야 왕국에
대한 비전.
이렇게 스가랴서는 환상과 교훈과 예언이라는 형식을 통해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 스가랴 1장 강해 >
오늘 본문 스가랴서 1:1-6절은 옛 조상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1-2)를 언급한 뒤, 현 세대를 향해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3). 나아가 오늘 본문에는 옛 선지자들의 회개촉구에 대한 옛 조상들의 불순종(4)과 그에 따른 옛 조상들의 심판, 그리고 심판을 경험한 그들의 참회적인 고백(5-6)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곧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다리오 왕 이년 팔월에 스가랴 선지자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스가랴에게 임한 여호와 하나님= 2-3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스가랴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돌아오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세 번이나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번이나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반복되는 것은 그 말씀이 얼마나 강력한 권면의 말씀인가를 말해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만군의 여호와란 언약궤와 결부되어 전쟁을 행하시는 것과 관련되어 사용되는 호칭입니다.
즉 당신의 언약을 신실이 이루어 내실 때에 주로 사용하시는 명칭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신실이 이루어내시는 일에 그 어떤 방해세력도 다 물리치시는 용사이신 여호와이신 것입니다.
그런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돌아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스가랴 시대의 상황은 이미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있습니다. 그리고 성전이 이미 재건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학개서에서 보면 하나님께 대한 우선순위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고로 학개서 1:3-4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편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학개 선지자의 말을 들은 백성들의 마음이 흥분이 되었다고 합니다. 학개 1: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사역를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흥분시켰다’라는 말은 ‘마음이 각성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그들이 회개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선지자 학개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미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있는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4절에 보면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와서 외쳐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않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곧 그들의 열조의 행위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성전도 짓고 제사도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늘 그들은 온전한 순종을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4-6절을 보면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그 내용이 바로 6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종 선지자들에게 명한 내 말과 내 전례들이 어찌 네 열조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 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다 하셨느니라 하라.”
(슥1:8 의 화석류 나무는 장막절에 장막을 지을 때 쓸수 있는 5가지 나무 중 하나로서 흰 꽃이 피고 나무 전체에서 향기가 나고 사랑과 아름다움을 상징하여 신부의 면류관으로도 사용됩니다. 도금양이라고도 불리며 히브리어는 하디스 라고 하고 높이는 5미터 정도이다.)
한편 열왕기하 17:13-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하고 또 나의 종 선지자들로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저희가 듣지 아니하고 그 목을 굳게 하기를 그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저희 열조의 목 같이 하여”라고 했습니다.
계속 1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 그 앞에서 제하시니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이 되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비록 바벨론에서 돌아왔지만 제대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 마음이 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3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요엘서 2:12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 니”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주께로 돌아온 자들에게 주님은 또다시 주께로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주께로 돌아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고 세상에 소망을 두고 외식하기 바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17절에 보면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라고 기도합니다.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인데 예수님이 그 안에서 주님으로 거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소홀했거나 말씀에 소홀했거나 예물드림에 소홀랬거나 순종함에 소홀핶던 부분은 없는지 점검해 보십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입술만이 아니라 참된 마음과 우리의 삶이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050818 안익선 목사/ 참조: 쉴만한 물가 & 손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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