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강해

스가랴 13장 강해(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 예수)

호걸영웅 2018. 7. 25. 02:13

스가랴 13장 강해(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 예수)

 

서론)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그 날에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날’은 선지자들이 계속하여 예언해 온 그 날 곧 주 예수의 오심과 죽음의 의 날입니다. 교회시대가 열리는 날입니다. 그 날에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날입니다.  

 

오늘은 그 날의 약속이 어떻게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게 되는가를 보고자 합니다.

 

본론)

 

일반적으로 씻는다고 하는 것은 더러움을 없애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씻는다는 것은 몸의 청결문제만이 아니라 제사에서 정성을 바칠 때에 예의적인 면에서도 중요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도 처지신명께 정성을 빌 때에 보면 목욕재계를 하였습니다.

 

그러면 구약에서는 씻는 것에 대하여 어떤 규례가 주어져 있습니까?

 민수기 8:5-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정결케 하라. 너는 이같이 하여 그들을 정결케 하되 곧 속죄의 물로 그들에게 뿌리고 그들로 그 전신을 삭도로 밀게 하고 그 의복을 빨게 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또 그들로 수송아지 하나를 번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그 소제물로 취하게 하고 그 외에 너는 또 수송아지 하나를 속죄 제물로 취하고”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대신하여 레위지파가 하나님께 대신 드려진바 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려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레위인들이 그 장자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인을 정결하게 하는데 속죄의 물을 뿌려서 정결하게 하고 또 수송아지의 번제물을 취하여 속죄 제물로 취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려지는 사람을 속죄의 물을 뿌림과 짐승의 피 뿌림이 함께 동반이 되어 집니다.

 

민수기 19장에서도 보면, 각종 부정하게 된 자들이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려서 정함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사람들이 목욕재계하고 재물을 드려도 죄를 영구히 또 완전히 씻을 길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유출 병이 있는 것처럼 계속하여 죄가 줄줄 새 나오는 사람인데 무엇으로 완전히 씻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장차 자신들의 죄와 더러움과 부정함을 온전히 씻어줄 그 날을 고대하였고 이는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에스겔 36:16-31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 고토에 거할 때에,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소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의 위에 쏟아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열방에 헤쳤더니, 그들의 이른바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찌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서 구원하고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또 나무의 실과와 밭의 소산을 풍성케 하여 너희로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열국에게 받지 않게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불선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을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보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 땅 곧 약속의 땅을 더럽혔는데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같이 더럽혔다고 합니다. 이러한 부정이란 우상숭배로 가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러나 잡혀간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구원하여 내시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더럽힌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하면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하게 하고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우상 섬김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히 그들을 물로 씻는 것이 아니라 새 영 곧 성령을 그 마음속에 넣어주시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47장에서는 성전 동문에서 물이 스미어 나오는데 그 물이 발목과 무릎과 허리와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어서 흐른다고 합니다.

 

 에스겔 47:1-5절을 보면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샘에서 시작한 성령의 강물이 가는 곳마다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에스겔 47:8-9절에 보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찌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47:8-9).

 

우리는 이 물이 단순히 우리 몸을 씻는 물이 아니라 성령임을 우리는 성령이 임하게 된 자들이기에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4:13-14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의 우물가에서 한 여인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판 우물을 마셔도 다시 목마르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37-39절을 보면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 나는 것은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일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에서 각종 죄와 더러움과 부정함을 씻어야 한다고 하니 율법적 규례를 따라 씻는 것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방법으로 지키기 위하여 장로들의 유전까지 보태어서 음식을 먹을 때에 반드시 손을 씻고 먹게 한 사람들이 바리새인들 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부정함과 더러움을 씻는 그 행위를 가지고 또 다른 자기 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씻지 않고 먹는 자들을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따집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아니하고 음식을 먹는 것은 장로들의 유전을 어긴 것이다-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어찌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러면서 고르반 사상을 책망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멀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신 후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하였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고 예언한 대로 예수님이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으로 오셨는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자기들이 평소에 지켜오던 씻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로 눈앞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터져 나오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그 생수를 버리고 자기들이 물을 보관할 웅덩이를 만든 것입니다.

 

예레미야 2:13절을 보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란 생수의 근원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그 웅덩이는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웅덩이를 만들어 그곳에 자기들이 마실 물을 길어 놓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각종 율법 지킴의 자기 의들을 채워 넣은 것입니다. 모세로부터 받은 것이니 그 웅덩이에 얼마나 오랫동안 모아둔 것이었겠습니까?

 

2-6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사람이 오히려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 예언할 때에 칼로 찌르리라.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이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 혹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날에, 즉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는 날에 우상의 이름은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예언자들도 정체가 다 드러나서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황홀경 상태에서 몸에 상처를 내면서 주술적인 짓을 한 것을 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인 것처럼 털옷을 입은 일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세상은 거짓 선지자들이 수도 없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날이란 진행 중입니다. 이미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렸지만 거짓 선지자들이 다 사라지기까지는 예수님의 재림이 남아 있습니다.

 

결론)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죄와 더러움을 씻는 영원한 샘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임을 알고 믿고 따르도록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예수 우리 구주와 그의 보내신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날마다 죄와 더러움을 씻는 보혈의 은혜가 넘쳐 나게 하여 주십니다. 이런 크고 놀라운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 드리며 전하십시다. 아멘!

 

 

072418 안익선 목사/ 참조:창원한결교회